뉴타운으로 횡재했지만, 키스의 추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우리 동네'를 배회하다

등록 2008.12.20 21:57수정 2008.12.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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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타운 개발으로 인한 철거가 한창인 북가좌동(가재울뉴타운3구역) 모습.
뉴타운 개발으로 인한 철거가 한창인 북가좌동(가재울뉴타운3구역) 모습.송주민



며칠 뒤면, 우리 가족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을 떠난다. 내가 14살 때부터 거주했던 곳, 12년의 세월을 함께한 '우리 동네'다. 이미 주변 이웃들은 다들 동네를 떠났고, 텅빈 동네를 지키던 우리도 오는 27일이면 낯선 타지로 이주한다. 뉴타운 개발로 철거가 본격화되면서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굴착기삽이 흩뿌려놓은 석재가 동네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광경을 보면 빨리 이 곳을 떠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고백하건대, 우리 집은 뉴타운 수혜자다. 서울 서북부 변두리에 위치한 북가좌동. 낡은 주택들만 빽빽해 '현대식' 볼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이 곳은 지난 2003년 가재울뉴타운3구역으로 지정된 후, 일순간에 금싸라기 땅으로 돌변했다. '강부자'의 전유물인 줄만 알았던 부동산 불로소득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지다니,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팍팍한 삶을 이어가던 동네 이웃들은 나날이 오르는 땅값에 환호했다.

떠날 때 되니 생각나는 북가좌동에서의 추억들

 흔적도 없이 철거되고 있는 북가좌동. 이제 우리 동네는 사진 뒤편에 보이는 마포구 성산동 아파트 단지처럼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흔적도 없이 철거되고 있는 북가좌동. 이제 우리 동네는 사진 뒤편에 보이는 마포구 성산동 아파트 단지처럼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송주민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우리 가족에게도 뉴타운 소식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뉴타운 지정 전, 부채를 갚기 위해 9천만원 이하의 헐값에 집(연립주택 25평)을 내놔봤지만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 체념하던 중, 북가좌동에 뉴타운이 들어선다는 말이 들려왔고 땅값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1억·2억…, 억 단위로 숫자가 바뀌더니 '뉴타운 열풍'이 정점이던 지난해 우리집 땅값은 3억이 넘을 정도로 올라 있었다.


빚 때문에 쪼들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은 미련 없이 집을 팔기로 했다. 새 아파트를 얻으려면 최소 1억~2억의 추가부담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개인용달 일을 하며 최저생계비 정도 되는 월급을 받고 있고, 나는 학자금 대출 빚만 1천만원 가량이 있는 등 여전히 팍팍했지만, 집을 팔아 부채를 갚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별다른 의식 없이 '뉴타운은 횡재'라고 여기며 지내던 중, 뉴타운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을 접하면서 알게 된 뉴타운의 실체는 그동안 무심코 받아들였던 재개발에 대한 인식을 모두 쏟아버리게 했다.


우리 가족은 뉴타운으로 인해 다소나마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으나, 나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에서는 빚을 갚게 해줬지만 양심에는 부끄러움을 안겨준, '뉴타운'은 나에게 있어 모순된 이중성으로 점철된 곳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한 채, 우리 가족은 북가좌동을 떠나 낯선 타지에 둥지를 틀 예정이다. 이사 짐을 꾸릴 준비를 하는 요즘, 부쩍 옛날 생각이 많이 나 마음이 뒤숭숭하다.

금전적인 소득과 세입자 보상 문제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오던 뉴타운, 이로 인해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동네에서의 추억들이 떠날 때가 되자 자주 머릿속을 맴돈다. 특히나 철거로 인해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골목길과 놀이터, 자주 가던 슈퍼마켓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마저 무너져 내리는 듯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억의 끝자락을 놓고 싶지 않아서일까. 얼마 전부터 나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의 '구보씨'가 된 것 마냥 하릴없이 동네를 서성이곤 한다. 청승 떠는 모습을 지켜봐 줄 사람도, 함께 골목길을 거닐며 스러져가는 추억을 이야기할 이웃도 없는 텅 빈 유령마을이 된 동네의 모습이 씁쓸하긴 하지만, 몇 년 뒤 이 곳을 찾았을 때 고층 아파트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을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의 서성거림조차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보씨'가 되어 동네 곳곳을 누빈다.

떠난 엄마 생각에 눈물 뿌리던 집 앞 골목길

 어린 시절, 떠난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뛰쳐나와 눈물을 쏟곤 했던 집 뒤편의 골목길. 이제 이곳엔 가로등도 없고, 버드나무도 사라졌다.
어린 시절, 떠난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뛰쳐나와 눈물을 쏟곤 했던 집 뒤편의 골목길. 이제 이곳엔 가로등도 없고, 버드나무도 사라졌다. 송주민

집을 나와 연립주택 뒤쪽으로 가면, 길 따란 골목길이 나를 맞이한다. 끝자락까지 걸어가면, '골목길의 골목길'처럼 보이는 좁은 모퉁이가 나온다. 지금은 이사 간 이웃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더미와 깨진 유리조각이 너부러져 있는 지저분한 곳이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은은한 주황빛 가로등과 버드나무 잎사귀가 흩날리던 운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골목은 나의 어린 시절 눈물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북가좌동으로 이사 온 것은 12년 전,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난 뒤였다. 당시 북가좌동에는 할머니 홀로 살고 있었고, 갈 곳 없던 우리 가족은 할머니 댁으로 들어와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중1이던 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따뜻하게 우리를 맞던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이 무척 좋았으나, 엄마는 싫었나 보다. 북가좌동으로 이사 오는 차 안에서부터 엄마의 표정은 언짢아 보였는데, 얼마 안 가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다.

나와 내 동생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난 엄마, 당시에는 왜 그런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 형제가 싫었던 건지, 아버지가 미웠는지, 아니면 할머니가 불편했는지, 여러 추측을 해봤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이가 좀 찬 다음, 우연히 보게 된 부모님의 이혼서류에는 '경제적 문제'라는 사유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한 잔 하고 온 날이면 우리 형제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되뇌었다. 할머니도 우리 형제가 안쓰러웠는지, "한창 에미 사랑 받으며 자랄 나이에…"란 말을 짧게 건네며 우리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이런 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나는 슬픈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집 뒤편 골목길로 뛰쳐나와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뿌렸다.

인적 없는 좁은 골목길, 주황빛 가로등 밑에 앉아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잎사귀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그렇게 예쁘고 착하고 눈물 많던 엄마는 왜 우리 곁을 떠났을까. 내가 본 아버지는 우리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는데, 가난이 그렇게도 싫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우리 형제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다니, 엄마에게 우리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나…. 14살 소년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26살의 청년이 된 소년은 오랜만에 골목을 찾아 당시를 회고한다. 이제 이곳엔 가로등도 없고, 버드나무도 사라졌다. 대문짝과 창문틀이 뜯겨버린 주변 가옥에는 '철거'라고 적힌 빨간색 글귀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린 시절 흘렸던 눈물도 부서져 가는 골목길 담벼락과 함께 사라져버린 듯하다. 이제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겠는데, 왠지 아쉽다.

짜릿한 그녀와의 추억 깃든 놀이터도 사라져가고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집 근처의 놀이터.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집 근처의 놀이터.송주민
골목길을 돌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들어서면, 미끄럼틀과 철봉, 의자만이 놓여있는 자그마한 놀이터가 보인다. 항상 동네 꼬마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하던 이곳은 이제 아무런 인적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놀이터에 들어서니, 불현듯 누군가가 떠오른다. 스무 살 무렵 풋풋한 사랑을 나눴던 한 여자아이가 머릿속을 맴돈다.

꼬마들이 집으로 들어가고, 인기척이 사라질 저녁 즈음이 되면, 그녀와 나는 종종 놀이터 의자에 앉아 사랑을 속삭였다. 1시간, 2시간… 심지어 5시간 가량을 놀이터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막차 시간이 다가올 무렵이면,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애써 털고 일어나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내곤 했다.

뜨거운 프렌치키스, 그 가슴 떨림의 순간도 이 놀이터와 함께 했다. 대책 없는 사랑의 늪에 나를 마구잡이로 몰아넣었던 그녀와 마주 보고 키스를 하는 순간이 오다니. 고요한 놀이터에는 그녀와 나의 터질 것 같은 심장박동소리만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 후로 나는 이토록 가슴 뛰었던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순수했던 사랑의 감정이 해가 갈수록 현실적 냉소로 바뀔 때마다, 스무 살의 나와 스무 살의 그녀, 그리고 그 당시의 놀이터가 그리워지곤 했다. 그녀는 몇 년 전 홀연히 나의 곁을 떠났고, 이제 추억만이 남은 놀이터마저 나를 떠나려 한다. 나는 항상 왜 떠나보내기만 하는 건지, 괜히 서글퍼진다.

 낡은 가옥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던 언덕길 '달동네' 주택가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고, 포크레인의 굉음소리만 들려오는 공간으로 변했다.
낡은 가옥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던 언덕길 '달동네' 주택가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고, 포크레인의 굉음소리만 들려오는 공간으로 변했다. 송주민

놀이터를 나와, 왼편에 보이는 가파른 비탈길을 타고 올라갔다. 어릴 적부터 '달동네'라 불러온 낡은 주택가가 나와야 하거늘, 모진 콘크리트 조각만 사방팔방에 널려 있다. 험한 언덕에 빽빽이 들어서있던 수백 채의 가옥은 풍비박산이 났다. 옆에는 굴착기가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삽을 휘두르고 있다. 안 그래도 볼품없던 곳이 더 흉측해져 버렸다.

혹시나 아직도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굴착기 체인 소리에 가슴 졸이는 이웃들이 있지는 않을까. 얼마 전 만난 남가좌동 세입자들을 떠올리니 왠지 걱정이 된다. 개정된 법 내용을 몰라 이주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떠난 어르신들이 있는 건 아닌지, 또 염려가 된다.

다시 등장하는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면, 수능 시험이 끝났을 무렵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호프집이 보인다. 친구와 나는 이 집 구석자리에 앉아 "이제 어른이다"를 외치며 안주 없이 술을 들이붓곤 했다. 얼마 안 가 나는 비틀대며 일어나 뒷골목에서 토악질을 해댔는데, 등을 두드리던 친구는 혀가 완전히 꼬인 목소리로 "한 잔 더 해야지, 벌써 왜 이래"라며 투덜대곤 했다. 이 집 옆에도 굴착기가 들어서 있다. 곧 있으면 여기도 철거될 모양인가 보다.

번지르르한 고층 아파트 들어서겠지만

 북가좌동과 남가좌동이 접한 지점서 만난 80대 할머니.
북가좌동과 남가좌동이 접한 지점서 만난 80대 할머니.송주민
생각 없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구부정하게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80대 할머니가 나를 쳐다본다. 남아있는 이웃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이 곳은 아직 주민들이 반쯤은 남아있는 가재울4구역과의 접경지역 즈음이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40년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자녀 다섯을 키우고 교육시킨 정든 동네였단다. 

"다들 뉴타운 됐다고 기뻐하길래 나도 좋았지. 그래도 막상 동네가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휑하구먼. 여긴 살기 좋았는데, 시장도 가깝고, 알고 살던 이웃도 많았고…. 자넨 젊어서 모르겠지만, 이런 건 돈 몇 푼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여. 늙은 나이에 또 어딜 가나."

할머니의 긴 한탄 소리에도, 이제 '우리 동네' 북가좌동은 추억의 뒷자락 속으로 사라진다. 한두 구역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 전체가 완전히 철거된다. 대신 그 자리에는 번지르르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은 북가좌동 가재울뉴타운3구역을 재개발한 '래미안가재울'을 내년 상반기에 분양한다. 뉴타운 중 가장 큰 규모인 3304가구 중 707가구를 일반분양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점점 잿더미로 변하고 있는 동네를 보고 있자니, 할머니처럼 나도 가슴 한편이 휑하다. 30년간 이곳에서 세 들어 살았던 이웃에게도, 추가부담금을 낼 여력이 없어 동네를 떠난 이웃에게도, 몇 년 뒤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여력 있는 이웃에게도, 그때 그 시절의 북가좌동은 다시 찾을 수 없는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동네를 떠올리면, 고급 아파트와 잘 정비된 길이 그려지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속 그리움의 강에 작은 여울이 생길 때마다 찾고 싶을 '우리 동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알싸한 느낌이 코끝을 감싼다. 초라하고 낡은 동네였지만, 훗날 태어날 내 자식에게 '아버지가 어릴 적 꿈을 키운 곳이야'라고 소개하면서 함께 거닐어보고 싶은 곳이고, 어린 시절 하염없이 눈물을 뿌렸던 골목길에서, 이제는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엄마 품에 안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 없이 울어보고 싶은데, 이제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 되겠다. 더 이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 청승 그만 떨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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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북가좌동 #뉴타운 #가재울 뉴타운 #가재울뉴타운3구역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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