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도 없이 철거되고 있는 북가좌동. 이제 우리 동네는 사진 뒤편에 보이는 마포구 성산동 아파트 단지처럼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송주민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우리 가족에게도 뉴타운 소식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뉴타운 지정 전, 부채를 갚기 위해 9천만원 이하의 헐값에 집(연립주택 25평)을 내놔봤지만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 체념하던 중, 북가좌동에 뉴타운이 들어선다는 말이 들려왔고 땅값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1억·2억…, 억 단위로 숫자가 바뀌더니 '뉴타운 열풍'이 정점이던 지난해 우리집 땅값은 3억이 넘을 정도로 올라 있었다.
빚 때문에 쪼들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은 미련 없이 집을 팔기로 했다. 새 아파트를 얻으려면 최소 1억~2억의 추가부담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개인용달 일을 하며 최저생계비 정도 되는 월급을 받고 있고, 나는 학자금 대출 빚만 1천만원 가량이 있는 등 여전히 팍팍했지만, 집을 팔아 부채를 갚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별다른 의식 없이 '뉴타운은 횡재'라고 여기며 지내던 중, 뉴타운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을 접하면서 알게 된 뉴타운의 실체는 그동안 무심코 받아들였던 재개발에 대한 인식을 모두 쏟아버리게 했다.
우리 가족은 뉴타운으로 인해 다소나마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으나, 나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에서는 빚을 갚게 해줬지만 양심에는 부끄러움을 안겨준, '뉴타운'은 나에게 있어 모순된 이중성으로 점철된 곳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한 채, 우리 가족은 북가좌동을 떠나 낯선 타지에 둥지를 틀 예정이다. 이사 짐을 꾸릴 준비를 하는 요즘, 부쩍 옛날 생각이 많이 나 마음이 뒤숭숭하다.
금전적인 소득과 세입자 보상 문제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오던 뉴타운, 이로 인해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동네에서의 추억들이 떠날 때가 되자 자주 머릿속을 맴돈다. 특히나 철거로 인해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골목길과 놀이터, 자주 가던 슈퍼마켓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마저 무너져 내리는 듯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억의 끝자락을 놓고 싶지 않아서일까. 얼마 전부터 나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의 '구보씨'가 된 것 마냥 하릴없이 동네를 서성이곤 한다. 청승 떠는 모습을 지켜봐 줄 사람도, 함께 골목길을 거닐며 스러져가는 추억을 이야기할 이웃도 없는 텅 빈 유령마을이 된 동네의 모습이 씁쓸하긴 하지만, 몇 년 뒤 이 곳을 찾았을 때 고층 아파트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을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의 서성거림조차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보씨'가 되어 동네 곳곳을 누빈다.
떠난 엄마 생각에 눈물 뿌리던 집 앞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