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의 20퍼센트
.. 처음으로 마의 20퍼센트 대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187쪽
‘20퍼센트 대(臺)’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20퍼센트 금’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한편, ‘20퍼센트 대’란 ‘20∼29퍼센트’를 가리키니, ‘30퍼센트’로 다듬어도 됩니다. “넘어선 것이다”는 “넘어섰다”나 “넘어서고 말았다”로 손보고, “환호성(歡呼聲)을 질렀다”는 “기뻐서 소리를 쳤다”나 “기쁜 나머지 이야 하고 외쳤다”로 손봅니다.
┌ 마(魔)
│ (1) 일이 잘되지 아니하게 헤살을 부리는 요사스러운 장애물
│ - 마가 끼다 / 마가 들다 / 형의 사업은 무슨 마가 끼었는지
│ (2) 궂은일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나 때를 이르는 말
│ - 마의 건널목 / 마의 금요일 / 마의 삼각주
│ (3) 극복해 내기 어려운 장벽
│ - 마라톤에서 마의 2시간 5분 벽을 깰 날이 머지않았다
│ (4) = 마귀(魔鬼)
│ (5) [불교] = 악마
│
├ 마의 20퍼센트
│→ 끔찍한 20퍼센트
│→ 지긋지긋한 20퍼센트
│→ 까마득해 보이던 20퍼센트
│→ 넘지 못할 듯하던 20퍼센트
│→ 하늘처럼 높아만 보이던 20퍼센트
└ …
여러 가지 운동경기 가운데 마라톤이나 헤엄치기, 또는 달리기처럼, 시간에 따라서 이기고 짐이 갈리는 자리에서 으레 “마의 몇 분”이나 “마의 몇 시간 몇 분”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마의 9초”라든지 “마의 두 시간”이라든지 하면서.
저 또한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기에 그러려니 해 왔고, 퍽 오랫동안 곧잘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투가 말썽거리라고는, 이 말투를 씻어내야 한다고는, 이 말투를 왜 쓰고 있는가는, 이 말투가 어쩌다가 나 같은 어린이 입에까지 스며들었는가는, 이 말투가 아니면 내 생각을 펼쳐 보일 수 없는가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생각할 까닭이 없었을 테지요. 그무렵에는. 그냥저냥 들은 대로 말하고 본 대로 말할 뿐이었을 테지요.
┌ 꿈만 같은 20퍼센트
├ 꿈처럼 보이는 20퍼센트
├ 꿈에서나 이룰까 싶은 20퍼센트
├ 꿈에서도 이루기 힘든 20퍼센트
└ …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마찬가지라고 느끼는데, 우리가 집에서 나서 자라는 동안, 또 학교를 다니는 동안, 머리속에 지식을 집어넣도록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한테 들려주거나 알려주는 지식이 참말 옳은지, 참말 값이 있는지, 참말 뜻이 있는지를 곰곰이 되새기도록 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듣는 수많은 말이 ‘나도 저 말을 배워서 넉넉히 쓸 만한가’를 스스로 돌아보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배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까닭을 묻지 말고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통령 인기조사와 같다고 할까요. 몇 되지도 않는 대통령 이름을 죽 적어 놓고서, 이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도록 하는 인기투표 말입지요. 그분들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무슨 검은짓을 일삼았는지는 따지지 않고 그저 이름만 죽 늘어놓은 다음 ‘인기투표에서 표를 많이 받으면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게끔 우리 눈을 홀리듯, 갖가지 지식이 우리 넋과 얼을 홀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듣고 배우고 쓰게 되는 말도, 그 말이 참으로 우리가 앞으로도 쓸 만한지 아닌지를 가리도록 하지 않아요. 그저 ‘다들 그렇게 쓰니 너도 똑같이 따라서 써’ 하고만 집어넣을 뿐입니다.
지식도 쑤셔넣고 말도 쑤셔넣는 셈입니다. 지식을 쑤셔넣으니 우리 스스로 우리 보람을 찾으면서 기쁘게 땀흘릴 만한 일자리가 아니라, 오로지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찾아나서는 일자리가 되고 맙니다.
몸과 마음으로 함께 아름다움을 찾자는 지식이 아니니, 나와 내 이웃 모두를 사랑과 믿음으로 감싸면서 서로서로 즐거운 길을 걷자는 지식이 아니니, 나날이 대학졸업자가 늘지만 세상은 뒷걸음질입니다. 배운 이가 늘고 똑똑한 이가 늘지만, 자꾸만 세상은 어두워집니다. 편이 갈립니다. 계급이 나뉩니다. 돈에 따라 죽고 죽입니다. 자리에 따라 거드름과 콧대만 늘어납니다.
┌ 마의 2시간 5분 벽 → 깨기 힘든 2시간 5분 벽
├ 마의 건널목 → 궂은일이 생기는 건널목
├ 마의 금요일 → 얄궂은 금요일
└ 마의 삼각주 → 얄궂은 삼각주 / 궂은일이 잦은 삼각주
깨기 어려운 한국 사회인지 모릅니다. 넘기 벅찬 한국 문화인지 모릅니다. 무너뜨리기 어려운 한국 정치인지 모릅니다. 흔들리지 않는 한국 경제인지 모릅니다. 얄궂은 한국 교육인지 모릅니다. 모두들 높다란 울타리를 아주 단단하게 세워서, 그예 기득권만 움켜쥐면서 탱자탱자 지내면 된다고 여기는지 모릅니다. 즐거움을 나누면서 함께 웃고 우는 세상이 아니라, 집구석에서 혼자 용두질을 하듯 돈방석에 앉아 금송아지 쓰다듬고픈 마음만 무럭무럭 자라는 세상이 아니랴 싶습니다.
어수선한 세상이니 말이 어수선합니다. 제 밥그릇만 챙기는 세상이니 제멋대로 마구잡이로 써갈기는 글만 나돕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8.12.19 17:1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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