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등본 떼면 북한, 나는 북한인일까 남한인일까

새터민 청소년의 바람직한 정체성은? … 제5회 우양탈북포럼 20일 열려

등록 2008.12.20 22:25수정 2008.12.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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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새터민'이다. 그 숫자는 1만 3천여명에 이른다. 이른바 보수진영이 '물타기'하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당위'를 입증하는 수치다. 최근 대북 삐라 살포 문제는 새터민들의 '정체성'을 남한 사회에 되묻는 '역삐라'로 주목해야 한다.

새터민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우양재단(정의승 이사장)이 2004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우양탈북포럼이 20일 오전 10시부터 연세대 원일한 홀 1층에서 열렸다. 주제는 '새터민 청소년의 바람직한 정체성 형성을 위한 민간의 노력', 올해도 새터민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역시 학계나 민간단체 전문가 이야기보다는 새터민 사례 발표가 관심을 끌었다. 새터민 대학생 3명이 포럼에 참석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픈'했다. 가장 나이 어린 학생은 '애로사항'을 중심으로 남한 사회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보다 일곱 살 많은 학생은 '통일인적자원'으로 새터민을 규정했다. 전체로서의 새터민보다 자신의 '몫'을 강조한 학생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3인3색이었다.

 20일 연세대 원일한 홀에서 열린 제5회 우양탈북포럼
20일 연세대 원일한 홀에서 열린 제5회 우양탈북포럼이정환

A대학교 4학년 김미경씨 "남한 문화 강요당하는 느낌"

"남한과 서구의 문화는 접할 기회가 많은 반면, 북한 문화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으며, 접하게 되더라도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북한 문화의 이해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남한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강요받는 듯한 느낌이랄까."

김미경(25·여·가명)씨가 새터민 청년으로서 바람직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남한 사람들의 '눈'이었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그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자신들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는 '마음의 창'에 '벽'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장학금이나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 "모든 곳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아직도 자신들을 도움을 줘야만 하는 존재나 남한 사람들 어깨를 무겁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면서 "이런 부정적인 마인드와 시선이 우리의 자신감마저 박탈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마인드'를 결연이나 멘토링 등 이른바 '정서적 지원'을 통해서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아직 결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남한 분들이 자원봉사나 자선의 대상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강해 친구나 가족처럼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서 "동격인 존재로서 만남을 이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B대학교 3학년 이철수씨 "남한인이자 북한인, 통일인적자원"


 박정란 서울대 연구원
박정란 서울대 연구원이정환
"북한 이탈 주민들은 미래의 남북통일과 교류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통일인적자원으로서 북한을 가장 잘 아는 남한인이며, 남한을 제일 잘 아는 북한인이다. 이들을 통일인적자원으로서 철저히 계획적으로 준비시켜야 할 사회적 책임을 논할 필요가 있다."

김미경씨가 새터민의 바람직한 정체성 형성에 물음표를 던졌다면,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철수(32·남·가명)씨는 "남북을 가장 잘 아는 통일인적자원"이란 말로 새터민의 정체성에 '느낌표'를 찍었다. 따라서 새터민들이 처음 머무르는 하나원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었다.

이씨는 "현 직업훈련 프로그램들이 새터민들의 적성과 미래지향적 전망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는가를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이런 점에서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하나원 교육기간의 1년 연장안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다만 닫힌 공간으로 교육생들에게 가둬 놓는 느낌을 주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씨는 향후 난민 대처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원의 발전적 단계도 거론했다. 그는 "세계인구 이동 미래 예측을 보면 2015년에 수백만명의 북한인이 남한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으면 폭동과 같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하나원이 난민 수용을 위한 모체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씨는 이를 위해 "하나원은 준비된 새터민을 통한 새터민 교육, '리더 새터민'을 사전에 준비시키는 일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지금 현재 남북 상황을 볼 때, 북한에서 갑작스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새터민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새터민 당사자들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대학교 4학년 박미숙씨 "새터민 경험, 하나님이 주신 축복"

 박상영 셋넷학교 교사
박상영 셋넷학교 교사이정환
"외형적인 모습은 남한 사회 구성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호적등본을 떼면 북한으로 나온다. 나는 북한 사람인가, 남한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교회 전도사님께 새터민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더니, 애써 벗어나려 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의 나로 편하게 살아가려 한다."

새터민 전체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이철수씨와 달리 "2002년 11월 홀로 대한민국에 입국해 정착생활을 시작했다"는 박미숙(30·여·가명)씨는 새터민으로 산 6년, 그 중에서도 특히 "눈물겨웠던 대학교 4년"을 돌아보며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먼저 "초창기 남한 대학생이라면 부모님들 직업도 좋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 자녀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서 "솔직히 특별전형이란 입시제도와 등록금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의 대학교 생활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며 시작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물론 학업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박씨는 "특히 영어로 인한 어려움이 가장 컸고 낯선 교육환경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전했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소개했다. 그는 "생계지원금 36만원은 아주 귀한 생활비였지만, 기본 생활비를 빼면 점심 사먹을 돈도 없었던 적도 있었다"면서 "그럴 때는 언제까지 이렇게 쪼들리고 살아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씨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됐다"면서 "새터민 대학생들이 최대한 정부 혜택을 활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여 남한 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마무리했다.

 정의승 우양재단 이사장
정의승 우양재단 이사장이정환
이날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민간 전문가들 역시 3명이었다. 먼저 엄영수 새터민자립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한국사회에서의 새터민 청소년의 바람직한 정체성'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새터민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을 소개했다.

엄 사무국장은 "새터민들이 남한에 오기 전에 평균 2.5년 정도 제3국에 거주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육의 공백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지내면서 발생하는 공포나 불안 등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이런 새터민들의 바람직한 정체성 형성을 위해서는 학교, 구청, 경찰서, 민간 단체 등이 유기적인 협조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정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새터민들 입국 추이가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맞게 정부가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최근 여성 입국자 비율이 78%에 이를 정도로 여성 새터민이 급증하고 있는데, 정부가 여기에 따라가지 못해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며 "여성 새터민 증가가 빈곤 가정 증가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셋넷학교'의 박상영 대표교사는 적극적인 마음 자세에 '방점'을 찍었다. 박 대표교사는 "대학을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가지 못하는 어려운 남한 친구들도 많다는 현실을 새터민들이 알아야 한다"면서 "새터민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탓하며 은둔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길'이 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을 주최한 우양재단의 정의승 이사장도 남한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새터민의 바람직한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이사장은 "남한 출생 학생들도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적응하지 못해 탈락하거나 엄청난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새터민 청소년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가 남한 친구들에게도 있다는 걸 수용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은 박윤숙 세계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발표자 외에도 많은 새터민 대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30분 동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제5회 우양탈북포럼은 오마이뉴스와 연세대학교 교목실에서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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