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57) 활동

[우리 말에 마음쓰기 503] ‘먹이 활동’, ‘변호사 활동’ 다듬기

등록 2008.12.21 13:47수정 2008.12.21 13:47
0
원고료로 응원

 

ㄱ. 먹이 활동을 하는 철새

 

.. 먹이 활동을 하는 철새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이태수-숲속 그늘 자리》(고인돌,2008) 110쪽

 

 “철새들에게 방해(妨害)가 되는 일”이라면 “철새들을 성가시게 구는 일”이나 “철새들을 괴롭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활동(活東) : ‘올챙이’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

 ├ 활동(活動)

 │  (1) 몸을 움직여 행동함

 │   - 다리를 다쳐서 활동이 어렵다 / 활동에 편한 양복이 날로 인기를 더해 /

 │     병의 완쾌를 위해서는 당분간 활동을 자제해야

 │  (2)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힘씀

 │   - 봉사 활동 / 정치 활동 / 사회 활동 / 활동 경력 / 활동 무대가 넓다

 │  (3) 동물이나 식물이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행동이나 작용을 활발히 함

 │   - 내분비 활동의 조절 / 호랑이는 밤이 되자 활동을 시작했다

 │  (4) 화산이 마그마 따위를 분출함

 │   - 휴화산이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 활동(滑動) :미끄러져 움직임

 │

 ├ 먹이 활동을 하는 철새들

 │→ 먹이를 찾는 철새들

 │→ 먹이를 잡는 철새들

 └ …

 

 한의사들이 약을 지을 때, 우리가 익히 아는 이름으로 약감을 모아서 짓지 않습니다. 죄다 한문으로 지은 이름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양의사들이 약을 지을 때,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나라밖 말을 섞어서 이야기를 하고 약방문을 씁니다. 우리들이 알아들을 만한 이름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면, 의사로서 권위가 떨어지기 때문일는지요. 무엇이 약감이 되는 줄 알게 되거나 병이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의사 찾는 손님이 떨어지기 때문일는지요.

 

 올챙이를 약으로 쓴다고 하면, 그저 ‘올챙이’일 뿐입니다. ‘活東’으로 적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대목은 없습니다.

 

 ┌ 다리를 다쳐서 활동이 어렵다 →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기 어렵다

 ├ 활동에 편한 양복이 → 움직일 때 조이지 않는 양복이

 └ 당분간 활동을 자제해야 → 한동안 돌아다니지 말아야

 

 국어사전에 실린 두 번째 ‘활동’은 ‘움직임’을 뜻한다고 합니다. 움직이니까 움직인다고 하고, 일을 하니까 일한다고 하며, 무언가를 하니 한다고 할 뿐이지만, 이런 여러 가지 모습을 가리키면서 꼭 ‘活動’한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 밤이 되자 활동을 시작했다 → 밤이 되자 슬슬 돌아다닌다

 └ 휴화산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 쉬는화산이 다시 불을 뿜고 있다

 

 ‘봉사 활동’이 아닌 ‘봉사를 할’ 뿐입니다. ‘정치 활동’이 아닌 ‘정치를 하’거나 ‘정치일을 할’ 뿐입니다. ‘사회 활동’이 아닌 ‘사회에서 힘쓰’거나 ‘사회에 몸담’습니다. ‘활동 경력’이 아닌 ‘일한 발자취’나 ‘여태껏 해 온 일’이에요.

 

 ┌ 활동한다 (?)

 ├ 활동(滑動)한다 (?)

 └ 미끄러져 움직인다 (o)

 

 마지막으로 ‘滑動’을 생각합니다. ‘滑動’이라는 한자를 넣었다면서, “나는 눈길에서 활동한다”고 적어 놓는다고 할 때에, 이 글을 알아들을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입으로 말한들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넣어도 못 알아듣습니다. 이런 말은 군더더기말조차 아닌 쓰레기말입니다.

 

 국어사전에는 군더더기말도 덜어내야 하고, 쓰레기말도 털어내야 합니다. 꼭 알맞춤한 말을 골라서 싣고, 우리가 익히거나 배워서 올바르게 써야 할 말을 실어야 합니다.

 

 

ㄴ. 변호사 활동

 

.. 스스로 그 시험의 첫 번째 합격자가 된 그는 지금도 교토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  《고바야시 데루유키/여영학 옮김-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2008) 14쪽

 

 “그 시험의 첫 번째 합격자(合格者)가 된”은 “그 시험에서 첫 번째 합격자가 된”이나 “그 시험에 첫 번째로 붙은 사람이 된”이나 “그 시험에 첫 번째로 붙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

 │→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

 │→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 변호사로 뛰고 있다

 │→ 변호사로 있다

 └ …

 

 이 자리에서는 으레 “변호사의 활동을 하고”처럼 적습니다만, 토씨 ‘-의’를 붙이지 않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다만,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었다면, “변호사 활동”이 아닌 “변호사 일”로 적을 수 있었어요. “변호사 일을 하는” 삶이란, “변호사로 뛰는” 삶입니다. 변호사라는 일에 몸바친 삶이며, 변호사로 보내는 삶이자, 변호사로 사람들을 만나는 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8.12.21 13:4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4. 4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5. 5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