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분명 외모적으로 월등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미추'를 떠나 분명 유달리 내 눈에 예쁜 사람이 있고, 나 같은 외모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한 장면)
미녀는괴로워
'왠지 끌리는 외모와 왠지 싫은 외모?'
요즘 들어서 많이 느낀 것이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이른바 '외모궁합(?)'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싶다. 단순히 '잘생겼다 못 생겼다'를 떠나 사람마다 선호하는 외모가 있고 거기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다 잘생겼다(예쁘다)고 해도 내가 볼 때는 아닌 것 같고, 특출난 외모가 아님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단순한 '미추(美醜)'의 차이를 떠난 개개인의 시각차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경향은 어릴 때보다는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학창시절에는 단순히 연예인처럼 예쁜 이성이 미인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분명 내 눈과 머리를 반응케 하는 나만의 미인이 따로 존재했다.
물론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이게 가슴으로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좀 골치 아파지는 것 같다. 눈과 머리에 입력된 여성은 편의상 쉽게 잊어버릴 수 있지만 심장 쪽으로 내려가는 경우에는 온몸에 흔적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누구에게나 자신이 유달리 선호하는 외모의 상대는 있으며, 또한 이러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상의 미남-미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져있다면 거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슬플 것 같다. 물론 그 슬픈 사람들 중에는 나도 포함된다.
나에게 친절한 외모와 나에게 불친절한 외모? 나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이제까지 겪어온 바에 의하면 사람들 중에는 유독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과 반대 경우가 존재했다. 이같은 경향은 동성보다는 이성이 많았다. 동성 사이에도 이런 게 있을 수는 있겠으나 아무래도 같은 성끼리는 외모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친절했던 이성 중에는 큰 눈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얼굴을 가진 여성들이 유독 많았다.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외모는 조화(?)에 따라 다소 딱딱해 보이기도 하고, 굉장히 부드러워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친절했던 여성들은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뭔가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스타일들이었다. 병원간호사도, 레스토랑 종업원도, 아르바이트 나온 대학생까지도 이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뭐 하나를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것은 물론 길거리까지 따라나와 안내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연락처를 알려주며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전화하라는 사람까지 있었다.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여성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몇 번 전화통화를 한 뒤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예감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둥글둥글한 외모에 약간은 사나워 보이는 눈매 그리고 작은 코, 이제까지 나에게 유독 불친절했던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징크스는 깨지라고 있는 거야…' 난 스스로를 애써 위안하며 최대한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친절함은 분위기 자체를 썩 편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난 그녀와 식사를 하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고, 그녀 역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만족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서로 시계 보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 뒤로는 누구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식사시간을 생각하면 '째각째각'하던 시계초침 소리 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녀와의 지루했던 식사자리에서 난 종종 카운터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웬 예쁜 종업원이 다소곳하게 서 있었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종종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냥 눈이 가는 곳에 그녀가 있었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식사비를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에 섰다. 또다시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소개팅녀와 달리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 편한 눈길이었다. 잠시 후 우리 둘은 동시에 한마디를 했다. "우리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는 오랜 친구처럼 "푸하하" 같이 웃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나와 같은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난 그녀를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냥 뭔가 말은 걸어야겠고,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학교, 사회 등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며 '우리가 어디서 봤을까(?)'에 대해 잠시동안 끼어 맞추기를 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결론을 냈고 난 "다음에 혹시 마주치면 아는 척 해요"라고 말하며 나왔고, 그녀 역시 생긋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