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공선붐'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기사.
아사히신문
2008년은 일본에 그 어느 해보다 우울한 소식이 많았던 한 해였다. 물론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 등 좋은 소식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키하바라 도오리마(通り魔, 묻지마 살인)를 비롯한 일련의 무차별 살인 사건과 대학생들의 고용취소 및 파견근로자(비정규직) 해고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지금까지 쌓였던 문제들이 2008년을 분기점으로 대폭발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아키하바라 도오리마 사건'을 분석하는 잡지의 특집기사가 연일 실리던 올해 여름, 일본 출판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코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의 소설 <게공선(蟹工船, 일본식 읽기로는 '가니코센')>이 출판계에서 예상을 뒤엎고 돌풍을 일으킨 것은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게공선>은 신쵸(新潮) 문고판으로 지금까지 50만부 이상(6, 7월에만 30만부)을 팔아치웠고, 일본의 대표적인 서점인 기노쿠니야 문고 부문 연간 판매실적에서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판매실적은 예년의 약 100배에 해당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게공선>이 가장 많이 팔린 6, 7월은 흥미롭게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해사건(6월 8일), 하치오지(八王子)살상사건(7월 22일)이 벌어진 달이기도 하다.
연말 일본은 엔고 현상과 세계경제위기 여파로 대기업들의 적자 소식과 연일 이어지는 대규모 감원사태로 충격에 휩싸여 있다. 특히, 도요타 자동차가 1941년 이래 처음으로 경상적자를 낼 것이라는 예상(1500억엔)과 소니의 대규모 구조조정(1만 6천명) 사태 등은 불안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일본 대학생들의 입사내정 취소 문제는 지난 11월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됐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는 11월 통계를 보면 3만6700명이 해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게공선 붐'이 사그라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고도성장 세대'에서 '취업빙하기 세대'로1970~1980년대 일본의 20대가 '고도성장 세대'라고 한다면, 1990~2000년대는 '취업빙하기 세대'(최근의 신조어로 젊은이들의 고용환경을 나타내는 말이다)로 불린다. 취업빙하기 세대의 의식은 2000년대 초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것을 잘 드러내는 것이 이른바 '게공선 붐'이다.
<게공선>은 1929년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줄여서 '나프')의 기관지였던 잡지 <센키(戦旗)>에 5, 6월 연재된 소설로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작자 코바야시 다키지는 세계 대공황이 일어난 해인 1929년 <게공선>에서 소비에트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들며 혹사당하고 학대당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렸다(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없다).
작품의 스토리를 조금 소개하자면, 캄차카 영해에서 게를 잡아 가공해서 통조림으로 만드는 게공선 '하카타마루'에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돈벌이를 위해 모여든 노동자들이 싼 임금을 받으며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노동자들은 게공선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 자본가들에게 부당한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기에 이른다.
인간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감독인 아사가와(浅川)는 노동자를 인간취급하지 않고 혹사시켜 한둘씩 쓰러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이러한 취급을 달게 받던 노동자들은 서로 불만을 조금씩 나누면서 투쟁을 하기에 이른다.
"이 단편은 '식민지에서 자본주의 침략사'의 한 페이지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는 식민지 조선이나 타이완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코바야시 다키치가 마르크스주의를 기조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썼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코바야시는 1932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지하로 잠입했으나, 1933년 2월 스파이의 밀고로 아카사카에서 특고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끝에 살해되기에 이른다. 한국에도 올해 8월 <게공선>(양희진역, 문파랑)이 신역(1987년 이귀원 역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이 출판되면서 '게공선 붐'의 여파가 미쳤다.
<게공선>은 '88만원 세대', '촛불 세대' 등으로 대표되는 동시대적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도 새롭게 읽히고 있다(고바야시 다키치와 동시대에 창작된 한국 프롤레타리아 문학에도 테마는 다르지만 주옥같은 작품들이 많다. 박영희, 최서해, 김기진, 임화, 한설야, 송영 등의 작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