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는 16나한, 밖에는 꽃살문

[소백산 동쪽의 작은 절 탐사 ②] 성혈사 나한전

등록 2009.01.08 14:34수정 2009.01.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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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안의 건축 구조와 그림.

 성혈사 나한전
성혈사 나한전이상기

성혈사 나한전(보물 제832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3층(후면은 2층)의 기단 위에 세워진 다포식 겹처마 건물로 기둥은 그랭이 공법을 사용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앞쪽 공간으로, 기둥과 창방 그리고 평방 위에 장여니 도리니 하는 것들이 짜임새 있게 결합되어 있다. 우리 같은 문외한들에게는 바깥으로 돌출된 용머리와 연꽃 봉오리만이 눈에 들어온다.


 나한전 내부 벽에 돌출된 용머리
나한전 내부 벽에 돌출된 용머리이상기
 나한전 내부 벽에 그려진 부처님
나한전 내부 벽에 그려진 부처님이상기

그리고 평방과 공포 사이 좁은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역시 부처님의 모습이다. 다른 곳은 대부분 다시 그리려는지 흰 칠을 했고 앞부분 두 군데만 옛 모습을 겨우 간직하고 있다. 지금 나한전은 보수 수리 중이라 여기저기 덮고 칠하고 고치고 하는 중이다.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되어 있다. 반자 청판에는 꽃잎이 6개인 연꽃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꽃술과 6개의 잎에는 범자가 보인다. 부연과 장여 도리 등에는 화문과 당초문 등이 그려져 있다. 단청의 기본 색조는 녹색과 황색 그리고 붉은 색이다. 나한전의 내부 단청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준다.

 나한전 우물 천정
나한전 우물 천정이상기

 범자문 연꽃
범자문 연꽃이상기

전체 공간의 1/3을 차지하는 불단에는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8 나한씩 모두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불단 위에 닫집은 없고 공포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용머리 장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법당 안이 조금은 휑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흰색의 부처님과 화려한 색으로 표현된 나한이 아주 잘 어울린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주 인상주의적이라고나 할까?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과 16나한

나한전에는 보통 석가모니부처를 주존불로 모신다. 좌우에 가섭과 아난 존자가 협시하고 그 옆으로 16나한을 봉안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 성혈사 나한전에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나한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나한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상기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도상으로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이라고 한다. 대좌와 광배 그리고 협시보살이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불상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얼굴은 둥글고, 눈, 코, 입은 작으면서도 단정하다. 목은 삼도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옷은 통견의(通肩衣)로 배 부분에 U자형 옷자락이 보인다.

손은 왼쪽 두 번째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싼 전형적인 지권인(智拳印)이다. 그런데 오른쪽 손 부분은 없어진 것을 보수하여 붙였다. 그래서인지 손목과 팔 부분에 붙인 자국이 보인다. 다리는 결가부좌를 했는데 양쪽 무릎 부분이 좀 깨졌다.


전체적으로 하얀 법신에 검은 머리를 해서인지 뚜렷한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표정이 순하고 원만하면서도 눈은 약간 날카롭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표현되었지만 부처님이 상대적으로 젊어 보인다. 이 비로자나불 좌상은 소백산 지역에 성행했던 화엄 사상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단 아래 석조 대좌가 들어 있는데 상당히 훼손되어있다고 한다.

 나한전 16나한상
나한전 16나한상이상기

비로자나불 좌상 좌우에 있는 16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성자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을 지켜 나간다. 당(唐)나라 현장(玄奘) 스님이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 에 16나한의 이름이 나온다.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囉惰闍), 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가락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墮闍), 소빈타(蘇頻陀), 낙거라(諾距羅), 발타라(跋陀羅), 가리가(迦理迦), 벌사라불다라(伐闍羅弗多羅), 술박가(戍博迦), 반탁가(半託迦), 나호라(囉怙羅), 나가서나(那迦犀那), 인게타(因揭陀), 벌나파사(伐那婆斯), 아시다(阿氏多),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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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이곳 나한전의 나한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 나한의 이름은 한자의 음가로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말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약간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소빈다, 나후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한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화려한 색의 법의를 걸쳤다. 단지 가락가벌차 존자와 나가서나 존자만이 머리를 기르고 있다.

법의의 색깔은 붉은색, 주황색, 파란색, 연두색의 네 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나한은 기도하고 명상하고 책을 읽고 선정에 든다.  전체적으로 아주 편안한 표정이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영주 성혈사 나한전 실측조사보고서(2007)>에 따르면 이들 16나한은 부산의 모 대학 여자 교수가 최근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운데 꽃살문에 그려진 연못 속의 세상

 가운데 칸의 연지수금 꽃살문
가운데 칸의 연지수금 꽃살문이상기

나한전은 정면 3칸으로, 각 칸에 한 쌍의 꽃살문을 달았다. 가운데 칸은 연지수금(蓮池水禽) 꽃살문이고 오른쪽 칸은 솟을 모란 꽃살문이며 왼쪽 칸은 솟을 꽃살문이다. 연지수금은 ‘연꽃이 핀 연못의 물새’라는 뜻이다. 이 가운데 칸의 꽃살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 첫 번째 해석은 이 그림이 종교성과 민화적인 예술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연꽃은 불교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여의주를 든 용은 반야용선으로 죽은 자를 극락정토로 인도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연잎을 타고 노를 젓는 동자(童子)다. 중간 아래 오른쪽에 나오는데 이것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동자승으로 보고 있다.

 동자(승)
동자(승)이상기
 물고기
물고기이상기

 물새
물새이상기
 게
이상기

민화적인 예술성은 그림의 기법이나 대상에서 찾아질 수 있다. 연꽃을 표현한 기법이 원근법이나 투시법을 무시하고 있다. 그림의 대상은 물고기, 물새, 연꽃, 연잎, 게, 개구리 등이다. 상단과 중하단에는 연지를 찾은 새들이 표현되어 있고 하단에는 이들의 먹이가 되는 어류들이 표현되어 있다. 어류 외에 게와 개구리가 보이는데 이들 역시 새에게는 좋은 먹이감이다. 살생과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계율과도 배치되는 모티브들이어서 의아하다. 이런 게 모두 민화적이다.

두 번째 해석은 이 그림이 이승에서의 부귀영화와 저승에서의 극락왕생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꽃과 함께 표현된 연밥은 많은 자식을 상징한다. 게는 갑각류의 으뜸으로 과거에서의 장원급제를 상징한다. 황새는 장수를 상징한다. 장수하고 벼슬하고 자식 많이 두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연지수금 꽃살문의 한쪽 면
연지수금 꽃살문의 한쪽 면이상기

또 다른 해석은 연꽃을 타고 동자가 이 세상에 온다. 그는 과거에 연(蓮: 連) 이어 급제한다. 연꽃에서 연꽃으로 뛰어오르는 개구리가 이를 상징한다. 그것도 장원급제(게)를 하고 아들 딸(물고기) 많이 낳아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리고는 가루다(새)의 안내를 받거나 또는 반야용선(용)을 타고 저 세상으로 향한다. 이들 해석 중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다. 모두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양쪽에 그려진 솟을 (모란)꽃살문

 솟을 모란꽃살문
솟을 모란꽃살문이상기

오른쪽 칸의 솟을 모란 꽃살문은 더 직설적으로 부귀영화를 표현한다. 모란이 바로 부귀영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보면 모란은 부귀영화를 나타낸다. 서양에서 꽃 중의 꽃이 장미라면, 동양에서는 꽃 중의 꽃이 모란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란꽃은 화려하면서도 귀함을 보여준다.

왼쪽 칸은 솟을 꽃살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살은 원형을 중심으로 그 안에 육변화(六辨花) 무늬를 표현하였다. 원형을 이루는 살대는 꽈배기 모양으로 도안하고 이들 살대의 교차점마다 중심을 향해 꽃을 그려 넣었다. 이를 통해 살대와 꽃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들 솟을 꽃살문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어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잘 맞는다.

 솟을 꽃살문
솟을 꽃살문이상기

나한전 꽃살문은 큰 틀에서 보면 좌우 대칭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솟을 꽃살문은 오른쪽에 모란이 표현되어 있어 비대칭을 이룬다. 그리고 가운데 연지수금 꽃살문도 양쪽 문에 표현된 내용이 미세하게나마 다르다. 이것은 자세히 관찰할 때만 찾아낼 수 있다. 오른쪽의 것에는 새, 용, 동자, 개구리가 더 들어 있다. 대칭 속의 비대칭, 해석의 다양성, 이게 바로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이 가진 매력이다.
#성혈사 나한전 #비로자나불좌상 #연지수금 꽃살문 #모란 꽃살문 #16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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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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