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골짜기.무슨 소원 그리 많아 저 많은 돌탑을 세웠을까.
강기희
계곡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중간중간 폭포를 만난 계곡은 숨구멍처럼 작은 물 웅덩이를 남겨놓았다. 웅덩이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던 물이 세상 구경을 하며 한숨 돌리는 곳이고, 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겐 생명수와 같다.
딱따구리가 고목을 쪼는 소리를 들으며 백담사에 도착하면 먼 길을 걸어 절집을 왜 찾았는지 그 이유를 잊게 된다. 부처님 만나면 꺼내놓으려던 세속의 심란함들은 어찌 했을까. 그것도 무거웠던 것인지 골짜기를 오르면서 하나둘 버렸다.
그래서였나. 칼바람 속에서도 땀은 났지만 백담사로 오르는 길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마음이 비워지니 무거웠던 발걸음조차 날개를 단 듯 가벼웠다. 누군가 말했다. 굳이 백담사를 가려면 반드시 겨울에 가야한다고. 미욱한 나는 눈길을 걸어 백담사에 도착한 이후에야 그 말 끝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다.
정작 마음을 닦아야 할 이는 따로 있는데...이마에 난 땀을 두어 차례 닦을 쯤이면 일주문이 나타난다. '내설악백담사'라 쓰여진 일주문을 지나면 백담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선 여행자의 눈에 돌로 만든 다리 하나가 들어온다. 곧게 뻗은 다리를 건너면 금강문이 나오고 법당인 극락보전이 나온다.
일직선상에 놓인 다리와 금강문 그리고 법당인 극락보전. 한치의 오차도 없어 보이는, 어쩐지 다리를 건너기가 꺼려졌다. 1990년 전까지만 해도 백담사 법당으로 가려면 허술하게 놓인 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 시절, 작은 비에도 나무 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러면 물이 잦을 때까지 며칠씩 기다려 개울을 건넜다. 다리가 생기면서 기다림은 사라졌다. 그 여유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다리엔 '수심교'라 쓰여져있다. '마음을 닦는 다리'라는 뜻일 게다. 뜻은 좋다. 부처님을 만나기 위한 일인데 삿된 마음을 품고 갈 수야 없지 않던가. 하지만 피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이 다리의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전두환이라는 전직 대통령이 내설악 깊숙히 자리잡은 백담사와 맺은 인연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에게 권력을 내어준 그는 상왕정치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로 맺은 악업을 끊고자 하는 6공화국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버림 받았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는 결국 그해 139억이 전 재산이라며 국가에 헌납했다. 그리곤 도망치듯 백담사로 숨어들었다. 1988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인 11월 2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