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나는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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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마다 나름대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는 기도라는 용어를 거의 독점하듯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기도'(祈禱) 역시 무속이나 다른 종교에서 빌려온 용어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지 않으려면 기도의 본질에 더한층 다가서야 할 것입니다.
다른 종교인들의 기도도 다르지 않겠지만, 기독교인들의 기도 역시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세상의 욕망을 아뢰는데 한정됩니다. 어린 아이의 눈에 제 먹을 것만 들어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때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욕망의 통보'로 끝이 납니다.
물론 신앙심이 차츰 깊어지면 기도의 내용과 수준이 달라집니다. 이전의 일방적인 자기 통보의 수준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터득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자기중심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소리에 경청할 줄 알게 됩니다. 어느 정도 기도의 본령(本領)에 올라 선 단계입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깊이 있는 기도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고집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더욱이 그때의 기도가 행함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이론이나 상상이 아닌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조성기가 엮은 <나는 소망합니다>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기도의 본질에 다가서고 깨우칠 수 있는 133편의 기도문을 담고 있습니다. 그저 강자의 등을 타고 제 욕망을 소원 성취하기 위해 통보하는 기도문이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칼에는 칼로 맞서고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아뢰는 기도문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오히려 굴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비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기도문이요, 예수가 그렇게 했듯이 세상에 난무하는 폭력과 다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달라는 기도문이요, 세상에서 겪은 쓰디쓴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주님을 느끼게 해 달라는 기도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 속에서 가져 온 기도문들이 아닙니다. 이론이나 상상 속에 머문 기도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일상에서 겪은 괴로움과 패배와 생명의 위협 속에서 건져 올린 살아 있는 기도문입니다. 뭔가 타는 목마름으로 갈증하고 있는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시원한 생수 한 모금과도 같은 참된 정수입니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기도문은 타고르의 <기탄잘리>에서 인용한 '더 나은 기도' 였습니다. 그 기도가 내 마음을 끌어당겼던 것은 다른 기도문들과 달리 현재 내가 직면한 삶의 문제를 정확하게 비춰주고 있었고,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을 선명하게 밝혀 주었기 때문입니다.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위험 속에서 겁을 내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고통에서도 견딜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싸움터에서 동지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스스로 싸워서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근심하며 공포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고 기도하게 하소서성공하여 기쁠 때만 주님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기보다는실패하여 슬프고 괴로울 때에도 내 손목을 잡고 계시는 주님을 느끼게 하소서(41쪽)그 밖에도 이 책에는 갑신정변의 여파를 피해 상해 중서서원에 들어가 수학하면서 방탕한 삶을 살던 윤치호가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문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된 후 1982년 성탄절 무렵에 드린 기도문, 1962년에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여 농촌 지도자 양성에 힘을 쓴 김용기의 기도문 등 위대한 성인과 위인들이 삶 속에서 길어 올린 감동적인 기도문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 기도문들을 엄선하여 엮은 이 책의 기도문들을 통해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도라는 말 자체가 세상 속에서 무의미하게 비쳐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한층 기도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 고단한 영혼을 어루만지는 마음의 기도문 133편
조성기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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