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필(여성용 인디오 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축 처진 발걸음으로 제 몸에 반이나 될까 하는 그림자를 끌며 물건을 판다. 대구(광역시)도 울고 갈 이 땡볕에 손님 하나 보고 오는 정성을 감안해 뻥튀기 과자를 하나 구입했다. 주변 노천시장 띠앙기스(Tiangis)에서는 없는 물건 빼놓고 다 판다.
식료품과 민예품이 주를 이루지만 메즈칼이라고 하는 벌레를 넣어 만든 술도 여행자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다. 한번 맛만 보라는 제스처에 웃으며 거절했다. 대신 아이스크림을 구입하며 타는 목마름을 달래본다. 오아하까에서 자전거로 30여분도 채 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여느 멕시코 마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뚜레 나무(Arbol del Ture). 이 무명 마을을 먹여 살리는 유일한 관광자원이다. 나무 하나가 어떻게 마을을 먹여 살릴까? 그러나 이 위대한 나무 한 그루 보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오아하까를 자전거로 지나는 여행자라면 이 길 위에 뚜레 마을을 모른 척 지나치는 것은 그야말로 배고픈 식탁에서 점잔 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식 인정된 바는 전혀 없지만 현지인들에 말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인데 말이다. 100m짜리 침엽수림이 하늘을 가리는 로키산맥의 장관을 알고 있는 나로선 조용히 귀담아 들어줄 뿐이다.
일단 이 나무에 대한 신상조사부터 해보자. 1990년대 후반, 수령 2000년이라고 밝혀진 뚜레 나무는 결국 AD의 역사를 호흡한 장수나무다. 이름은 노간주나무의 일종인 '아훼훼떼(ahuehuete)'이다. 측백나뭇과의 상록 침엽 교목으로 보통은 산록의 양지에 나고 높이는 10m가량이다.
하지만 여기 뚜레 나무는 건조지대 한 가운데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보통의 4배가 넘는 42m다. 직경만 14m에 두께는 자그만치 50m로 이는 어린아이 50명이 팔을 이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 무게는, 놀라지 마시라. 어떻게 측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내 설명에 의하면 무려 636톤 하고도 107kg을 더해야 한다. 이런 엄청난 몸집 때문에 옆에 성당이 귀여워 보일 정도다.
이 나무 하나를 설명하기 위한 가이드만 수 명이 있어 여행자들을 호객하는 장면이 여간 우스꽝스럽지 않다. 확실히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이 나무는 이제 예술적 의미로 승화시키려는 가이드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한껏 포장된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 등이 엮여 생성된 자리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해석하는데 그것은 코끼리나 사자, 또 새나 개구리 등 주로 동물적인 의미부여로 오랜 역사로 다듬어진 역동성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공간의 한계에 이어 다시 한 번 나무의 수동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였으면 정이품을 넘어 지역 특산으로 홍보하기 위해 '명예 좌의정' 정도는 가뿐하게 수여받았을 이 뚜레 나무는 하지만 최근 몸살을 앓고 있다. 뿌리 깊은 곳에는 엄청난 물을 저장하고 있는데 이 물이 최근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수분을 확보하지 못해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물을 줄 때마다 수백 가구가 쓰는 물의 양과 맞먹는 수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문 지역에서 관리하는 게 쉽지가 않다. 더구나 도시가 발전하면서 그로 인해 파생되는 수질오염으로 맑은 지하수가 점점 고갈되어 간다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영양분도 제대로 공급을 받지 못해 영양제를 놓고, 급기야 죽은 가지를 잘라내는 수술까지도 감행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이 마을에서 뚜레 나무의 존재는 그래서 중대하다. 그런데 만약 이천 년을 넘게 살아온 나무가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연쇄파동의 피해가 우려된다.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주변 상가의 소득저하는 물론 나무와 주변 정원을 전담 관리하는 사람들은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뚜레 나무는 더 살아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살아있는 그 자체로 원주민들에겐 그들의 문화이자 신앙이고 또 역사이기 때문이다.
넉넉히 백 명은 그늘에 들어가 낮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정말정말 큰 나무를 보았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외양에 비해 보이지 않는 뿌리는 더 깊고 넓을 것이다. 또한 홀로 이렇게 거대한 삶을 살아온 뚜레 나무의 외로움은 다행히 그 존재를 알아주는 이들의 셔터 세례로 달랠 것이다.
늘푸른 나무처럼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믿음을 주는 인생, 무성한 나무처럼 열심히 땀흘린 누군가에게 쉼을 제공할 수 있는 인생,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어떤 환경에도 흔들림 없이 소신껏 살아갈 수 있는 인생, 뚜레 나무는 자신의 자리에서 많은 걸 보여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2000년 묵은 나무 안 보셨으면 말을 마세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