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온 남자, 체첸에서 시체 태우다

[서평] 안드레이 쿠르코프 소설 <펭귄의 실종>

등록 2009.01.11 17:13수정 2009.01.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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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의 실종>겉표지
<펭귄의 실종>겉표지솔출판사
<펭귄의 실종>겉표지 ⓒ 솔출판사

재작년 소개된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우울>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해 화제의 도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 작가의 소설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추운 날씨를 그리워하다 우울증에 걸린 귀여운 펭귄 미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결론도 화제였다. 미샤를 데리고 사는 빅토르는 부고 기사를 쓰며 연명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부고 기사였다. 무슨 뜻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살 지령을 숨긴 것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 빅토르는 꽤 당황했었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마피아 등과 엮이면서 인생의 혼란은 극도에 달했다. 그래서 빅토르는 미샤를 대신해서 남극으로 떠났다. 비겁한 행동이었지만, 도망치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는 결말이었다.

 

최근에 소개된 <펭귄의 실종>은 빅토르가 남극에 도착한 이후의 일을 담고 있다. 빅토르는 남극에서 미샤를 생각한다. 언제나 미샤를 남극에 보내주겠다고 다짐했던 그였기에 그 마음은 밝지만은 않다. 함께 살았던 수양딸 같은 소냐와 보모 니나도 떠오른다. 그립게 때문일까? 결국 빅토르는 남극 생활을 접고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보니 상황이 많이 변했다. 다들 빅토르가 죽었다고 생각하던 가운데 니나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더군다나 펭귄 미샤가 없다. '실종'된 것이다. 미샤의 실종을 안 빅토르는 죄책감을 느낀다. 누가 보면 동물 하나 없어졌다고 왜 그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가 각별했기에 그런 것이다. 빅토르는 미샤를 찾아내 이번에는 반드시 남극으로 보내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미샤를 찾기 시작하는데 그 여정이 만만치 않다. 모스크바, 체첸 등을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펭귄의 실종>은 <펭귄의 우울>만큼이나 뭔가 비현실적인 구성을 갖고 있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펭귄'이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부분을 모스크바와 키예프를 비롯한 구 소비에트 지역의 생생한 묘사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그곳의 삶을 조명하는데 그 솜씨가 녹록치 않다. 정밀한 묘사는 키예프의 거리 곳곳과 모스크바의 싸늘한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빅토르는 펭귄을 찾기 위해 키예프에서 모스크바로 간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모스크바의 많은 모습들이 묘사되는 것이다. 압권은 분쟁 지역인 '체첸'이다. 빅토르는 주변의 황당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들여 체첸으로 간다. 미샤가 그곳으로 팔려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빅토르는 브로커를 통해 비밀스럽게 그곳에 가서 위장취업을 하는데 하필이면 그 일이 시체를 태우는 일이다. 그곳에 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군인들이 대다수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일을 부탁하는데 때로는 살아 있는 사람을 태우려 하기도 한다. 왜 그러는 것인가? 분쟁이라는 단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장면들은 소설 속에서 자주 나온다. 덕분에 체첸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빅토르는 펭귄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빅토르만큼이나 뭔가를 찾고 싶어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그들의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언뜻 보면 엉뚱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들여다보면 구 소비에트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담고 있는 <펭귄의 실종>, 소설의 맛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9.01.11 17:13ⓒ 2009 OhmyNews

펭귄의 실종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양민종 옮김,
솔출판사, 2008


#펭귄의 실종 #우크라이나 #모스크바 #서평 #체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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