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을 위한 동화] 일회용 라이터 특별기고

우리가 살면서 가장 비애를 느낄 때는 부속물로 취급될 때다

등록 2009.01.14 15:07수정 2009.01.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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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견물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불꽃을 볼 수 있지만 먼 옛날에는 우린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 사실 지금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릴 필요로 하는 데가 많다.

 

아마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가 우리 불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장 편리하게 이용되는 불꽃은 단연 우리 가스라이터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우리 앞에 꼭 붙는 수식어가 있다. 일회용이다. 사실 우릴 한 번 쓰고 버리는 사람은 없다. 거의 반영구적으로 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를 일회용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한테 꼭 필요하면서도 괄시받는 이유는 있다. 우리가 주로 쓰이는 곳이 담뱃불 붙이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일회용이다 보니 사람들은 우릴 가스레인지 불꽃이나 횃불과 같은 불꽃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

 

나를 비롯해 내 주위의 친구들을 보더라도 처음 구입한 라이터를 갖고 가스를 완전히 소진할 때까지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기도 하고 때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처박혀 있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우리 곁을 항상 쫒아 다니는 일회용이라는 낙인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은 둘째 치더라도 일회용이기 때문에 잃어버려도 다시 사면된다는 도덕 불감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참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제대로 평가를 못받는 것이 우리 가스라이터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비애를 느낄 때는 부속물로 취급될 때다. 주로 담뱃불 붙이는데 사용되다보니 담배를 끊을 때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함께 버려진다. 분명히 독자적인 존재가치를 지녔음에도 종속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활보하기 전에는 성냥이라고 하는 불꽃이 있었다. 그런데 성냥에는 일회용이라는 수식어가 없다. 성냥은 자신의 몸을 불태워 불을 지피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론 감상에 젖기도 한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렸지만, 낱개로 포장된 성냥은 한 때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잘 나갔다고 한다.

 

담뱃불 붙이는 것은 물론이고 아궁이에 불 넣을 때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장 부러운 것은 성냥이 집들이와 같이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좋은 선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확 타오르는 불길처럼 부자되라는 의미에서 선물로 보낸 것이다.

 

지금 만약 가스라이터를 집들이 선물로 주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다. 이외에도 성냥이 다방에서 게임용이나 식당의 이쑤시개로 사용된 것은 참 특이한 행보다. 그러나 성냥보다 우수한 기능과 많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일회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대받고 있다.

 

우린 과거 성냥이 명성을 누리던 것만큼의 영광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니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은 없지만, 제발 일회용이라고 마구잡이로 대하는 것만이라도 자제해 주면 좋겠다. 특히 우리도 불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일회용이라 하더라도 작은 불꽃 하나가 재앙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친구는 뜨거운 여름날 차안에 며칠간 방치됐다가 스스로 폭발해 자동차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릴 무시한다. 이런 참혹한 일이 발생해도 사람들은 잠시 주춤하다가 일회용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곧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회용은 종이컵과 접시, 숟가락, 나무젓가락, 도시락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친구들은 내가 볼 때 모두 완벽한 외모와 기능을 가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회용이라 폄하한다. 사람들이 가장 급할 때, 그리고 가장 필요할 때 우리 일회용을 쓰면서도 버릴 때는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는다.

 

우리는 때론 불붙이는 거 외에 병따개로도 이용되는 번거로움을 마다 않는다. 병따개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데 사람들은 우릴 병따개로 이용한다. 이것 또한 일회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만일 철로 입혀졌거나 화려한 문양이 있는 명품 라이터라면 도저히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우릴 일회용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덧붙이는 글 | ?

2009.01.14 15:0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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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동화 #일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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