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태식지리산 피아골 산장지기
성하훈
함태식 선생이 올 봄 지리산을 내려오게 된다. 이사장이 바뀌면서 지리산국립공원측이 올 봄까지 피아골 산장을 비워주길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공단은 늦어도 4월 초까지는 내려와 달라며 하산 기한을 전달한 상태다. 건강이 쇠약해진 여든 노인이 조난 구조 등을 맡아야 할 산장에서 계속 머무르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공단의 판단인 듯 했다.
38년 지리산 생활 정리를 앞두고 있는 함태식 선생을 지난 11일 지리산 피아골산장에서 만났다. 함태식 선생은 40여년 가까이 모든 삶을 바쳐 온 지리산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1호 산장지기로 반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산을 앞두고 그간 소회를 듣고 싶어 왔다"는 말에 그는 투정부리듯 "내려가라니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솔직히 흔쾌히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산사람으로서 영광스럽게 산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죽어도 지리산에서 죽고 싶은데, 나가라니 착잡한 심정이야. 반평생을 지리산서 살았으니 마지막도 여기서 보내고 싶어. 마땅히 갈 곳도 없는 데 말이야. 말년에 거지처럼 살게 될 까봐 걱정이 돼."혹한의 추위, 산장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쓸쓸하고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오랜 세월을 이렇게 살아서인지 문제없다"고 했다.
- 그래도 혼자 계시다가 사고라도 나시면 큰일이잖아요?"뭐 그래서 내려가라는 것 같아. 하기는 내가 문을 잠가놓고 자니까 죽어도 모를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내가 산 속에서만 살다보니 도시에서는 잠시도 못 살아. 자식들이 인천에 사는데 공기가 나빠서 그런지 하루만 있어도 도무지 못 견디겠어. 내려가면 아랫마을이나 지리산 자락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럴 공간도 없고 많이 고민되기는 해."
지리산 속에서만 오래 산 사람이 산을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심산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누군들 수 십 년 살아온 산에서 뼈를 묻고 싶지, 떠나고 싶겠는가. 여든 나이지만 정정해 보이는 것도 지리산의 자연과 맑은 공기 덕분인 듯했다.
- 선생님이 처음 지리산에 들어오신 게 몇 년이었죠?"1971년이었지. 내가 구례 사람이잖아. 67년에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고 몇 년 있다 산장이 만들어지면서 관리하러 들어온 거지."
- 지리산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내가 연하반이라 불렸던 지리산악회에서 활동했어. 당시 우종수 선생이란 분이 회장이었고 내가 부회장이었지. 그때 이화여대 김헌규 교수라는 분이 세계국립공원대회에 옵서버로 참석하고 와서 우리나라서도 국립공원을 만들어야 된다 생각한 거야. 그래서 지리산악회가 같이 나섰지. 한라산·설악산 제치고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가 되는데 우리 노력이 컸거든. 그러다가 71년 노고단에 무인산장이 만들어지고 올라왔는데, 너무 산장이 엉망이지 뭐야. 오물만 잔뜩 쌓여있고. 그래서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자청했어. 그때부터 시작된 게 지금까지 온 것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 구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