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omb! bomb! bom!의 한 장면국가인권위원회 제작 <세번 째 시선> 중 김곡, 김선 감독의 영화 bomb! bomb! bomb!
김민아
마선과 밴드부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한 죄로 졸지에 마선의 애인이 되어버린 마택은 칠판에 쓰여진 "용의자 김마택은 자수하라"는 친구들의 심판 앞에 어떤 대응도 못한다. 다만 마선을 따돌리지 않아서 벌어지는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택은 밴드연습 중 자꾸 틀리는 드럼과 베이스를 마선이 드럼 박자를 자꾸 "까여서(놓쳐서)" 그렇다며 선배들 앞에서 마선을 말로 “까고” 마선과 마택을 대질심문하며 너는 어느 쪽인가를 묻는 친구들 앞에서 “내가 저런 새끼랑 사귈 것 같아, 가서 니 애인 ○○나 핥어”라며 나는 호모새끼가 아님을 역설한다.
아이들은 영화 중간 중간, "아 더러워", "으, 역겨워", "근데 둘이 진짜 사귀는 거야? 뭐야", "마선이 진짜 저 새끼 애인이야?"를 연발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적어도 마선이나 마택에서 감정 이입할꺼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들은 너무 쉽게, 아무 이유 없이 마선과 마택을 괴롭히던 친구들처럼 굴었다.
"근데 왜 더럽다고 생각해?" 이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유 없이 나를 못살게 굴거나, 혹은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대응하지 못해 인권 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지를 써보자고 했다. 한참을 생각하거나 쉽게 쓰지 못하다가 어렵게 쓴 몇 몇 사례.
# HOT 멤버였던 문희준을 닮았다고 애들이 놀렸다. 처음에는 두어 명만 놀렸는데 애들이 하도 놀리니까 어느새 반에서 나는 문희준이 돼있었다. "재수없다", "병신이다"라고 놀리기도 했다. 말도 제대로 못해보고 집에 오면 울기만 했다. # 2학년 선배 중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들이 있는데, 그 선배가 날 이뻐한다고 소문이 났던가보다. 쉬는 시간에 복도로 불러내서 무릎을 때리기도 하고,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꼬리치지 말라고 했다. 죽여버린다면서. 우리는 늘 "너는 어느 편인가"를 묻는다. "고향이 어디신가요?", "학교는?", "몇 학번이세요?"(모든 사람이 대학을 나왔을 거라는 전제가 깔린 질문), "어느 부대에 계셨나요?", "몇 살이세요?", "결혼하셨어요?" 등. 구분하고 무리 짓고 편먹고 따하고.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대부분 안다. 어떤 사람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편견을 가졌다고 하면 그 편견은 직접적인 대상과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라기보다 누군가로부터 학습 받는 경우가 더 많다(A의 이야기에 따르면 B는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자상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더라).
과거 우리는 접한 적도 없으면서 한센인을 ‘문둥이’로 부르고 부과된 형(刑)을 죄 값으로 치른 전과자를 ‘사회의 암적 존재’로 부른다. 장애인을 비하한 ‘절름발이 행정’,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인간 백정’이 그렇다. 누군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렇게 ‘따라할’ 뿐이다.
<Bomb! Bomb! Bomb!>은 동성애를 다룬 영화로 소개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성소수자 영화로 보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친구들이 “호모새끼”, “개새끼”라고 놀리는 마선이 동성애자임을 보여주는 어떤 ‘증거’도 없다. 친구들은 마선의 애인이 수시로 바뀐다고 몰아붙이며 애인이 누구인지를 대라고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마선은 말이 없고, 마선의 애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마선이 “호모새끼”라는 친구들의 굳건한 믿음만 있을 뿐이다. 성찰하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쉽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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