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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교통사고 후 처음 의식을 회복한 뒤 나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여 재활이고 뭐고 살아서 숨 쉬는 것 자체가 싫었다.
생활의 근거지인 전주지역 대학병원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원을 해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어 더욱 삶이 초췌해진데다 낯선 병원 응급실에 늘 쪼그리고 앉아 나를 위해 기도하고 간호하는 아내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전적으로 병원과 아내에게 의지해 생활해야 하는 자신이 더욱 미안하고 미웠다. 육신은 물론 흔들리는 영혼을 치료하기 위해 택한 것이 일요일이면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배려였다고 깨닫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영혼의 재활은 신체 재활을 더욱 빠르게 했다
그런 와중에 처음엔 몰랐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입원과 퇴원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병원마다 제각각 입원가능 일수를 정해놓고 입퇴원을 결정하는 재활병원들의 횡포(?)로 또 병원을 퇴원하여 서울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 병원에 입원하며 또 다시 낯선 환경에 긴장하여 나를 담당한 교수 이름이 마침 외삼촌 성함과 같음을 교수님께 밝히고 나와의 연관성을 애써 찾으려 노력한 것도 마음이 안정된 때문인지 모른다. 금세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배가 거의 매일 있다시피 하는 병실에서 마침내 나는 어릴 적 신앙을 되찾는 ‘영혼의 재활’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신체도 매우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서울의 낯선 신촌세브란스 병원 생활 중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하였지만 어느 날 예배 중에 “나의 하나님 아버지가 이병원의 원장이신데 내가 무엇이 두렵고 불안하냐”하는 강한 믿음까지 생겼다.
그랬다. 그 순간부터 내내 불안하고 초조하던 내 마음에 평온과 완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재활에 대한 강한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옆에서 나를 24시간 간호하던 아내에 대해 더욱 사랑스런 마음이 움텄다. 또 내 사랑하는 딸 형서에 대한 걱정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각들을 바로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재활의 주치의는 하나님이란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재활욕을 더욱 불태우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영혼의 재활을 끝내고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신촌세브란스를 퇴원해 그간 엄마아빠와 떨어져 1년여를 이모네 집에서 살던 사랑하는 딸 형서를 앰불런스에 태우고 생활의 근거지인 전주로 다시 내려오니 실로 1년 만에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격을 맛보았다.
전주의 집에서 가까운 재활병원에서 난 계속 입원생활을 하고 딸 형서와 와이프는 집에서 생활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비관 대신 영혼의 재활을 시작하면 신체적 재활도 능동적으로 바뀐다
만 1년을 옆에서 24시간 간호하던 아내와 떨어져 혼자 각종 치료 스케줄을 챙기며 독자적인 생활을 하면서 현재의 내 위치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게 되고 효과적인 재활을 위해 온 신경을 쓰는 말 그대로 본격적인 재활이 시작된 것이다.
영혼의 재활을 완전하게 끝낸 나는 각 치료사들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며 이건 내 재활의 주치의이신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내리시는 명령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했고 매일 땀이 비 오듯 쏟아질 정도로 운동에 열중했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다 내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일념에서였다. 샤워 후 그날 입은 옷을 손으로 세탁 하는 동작도 처음엔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세탁 할 수밖에 없었다. 경추와 뇌출혈로 밸런스와 코디기능이 망가진 내 몸 상태로는 쭈그리고 앉아 세탁을 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 포기하지 앉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니 점차 조금씩 나아졌다. 일과시간에 온전히 운동을 하고 저녁식사 후 샤워와 세탁을 마치고는 노트북을 가져다가 성경을 쓰며 마비가 되다시피 했던 왼손에 대한 재활도 하였다. 그러면서 오랜 병원생활로 사회와 벌어진 간극을 메우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효과적인 재활을 위한 자료를 찾았다.
그랬다. 사고 후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져있던 내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로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도 영혼의 재활을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 본격적인 재활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마치 반사적으로 이뤄지게 되는 것을 체험했다.
이 땅의 140만 재활 환우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죽음을 경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 초라한 존재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거라는 게 보잘 것 없는 일들뿐이다.
그러니 힘들고 외로운 처지에 놓인 재활 환우와 그 보호자들에게 가장 힘주어 권하고 싶은 것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비롯되는 영혼의 재활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몸이 좀 불편하고 안 하고보다는 영혼의 장애가 더 큰 장애인 것이다.
효과적인 몸의 재활을 위해 영혼의 재활을 하라는 게 아니라 영혼의 재활이 몸의 재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을 필자는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권하는 바이다.
실제로 2005년 교통사고 후 2개월 반 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지독한 절망과 체념으로 삶에 대한 의욕이 없던 필자가 하나님을 다시금 마음에 받아들이고 '영혼의 재활'을 거치니 재활욕이 불타올라 능동적으로 효과적인 재활에 온 힘을 다하게 됐다.
영혼의 재활은 신체의 재활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 이렇게 내 재활경험을 글로 쓰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음을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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