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중국신발 신다가 그냥들 버려요”

구두 밑창에서 세상을 읽는 구두수선공 김종삼씨

등록 2009.01.20 16:56수정 2009.01.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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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수선공 김종삼씨가 정성으로 구두를 닦고 있다.
구두수선공 김종삼씨가 정성으로 구두를 닦고 있다. 조찬현

구두수선공이 구두 밑창에서 비뚤어진 세월의 흔적을 찾아낸다. 구두 밑창의 발자취를 보고 마음을 읽어낸다. 손님의 건강까지 알아낸다. 육교 아래에서 묵묵히 앉아 일에 열중하는 구두수선공의 모습에서 진지한 삶이 엿보인다. 어긋난 가죽이나 닳아빠진 구두 밑창이 그의 손을 몇 번 거치자 새롭게 거듭난다.


15세에 맺은 인연... 구두사랑 35년

여수 서시장  입구의 '돈모수선화점'은 채 한 평도 안 된다. 실내 천정에는 다락이 있고 다락으로 오르는 사다리 곁에는 불을 밝히는 환한 백열전구가 한 개 있다.

이 가게에는 수선용 미싱과 공구, 수선에 필요한 갖가지 자재들이 온통 가게내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라인더는 제자리를 못 찾아 길에 나와 있다. 너무 비좁아 일할 공간이 없어 구두수선공은 육교 아래에서 일을 한다.

 구두수선점 ‘돈모수선화점’은 채 한 평도 안 된다.
구두수선점 ‘돈모수선화점’은 채 한 평도 안 된다. 조찬현

 실내 천정에는 다락이 있고 다락으로 오르는 사다리 곁에는 불을 밝히는 환한 백열전구가 한개 있다.
실내 천정에는 다락이 있고 다락으로 오르는 사다리 곁에는 불을 밝히는 환한 백열전구가 한개 있다. 조찬현

구두수선공이 그라인더에 구두 굽을 갈고 있다. 굽의 좌우를 살펴가며 세심하게 갈아낸다. 일에 열중한 그의 모습에 홀려서 나도 모르게 가던 발길을 멈췄다. 아주머니 한분이 수선이 맘에 딱 들고 친절하게 잘해준다며 부츠를 수선해간다.

구두와 사랑에 빠져 35년을 구두와 함께한 구두수선공은 김종삼(50)씨다. 15세 되던 해에 구두 만드는 양화점에서 구두와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 정착한 지는 10년, 그는 구두수선 전문가다. 구두밑창도 그가 직접 만든다. 고무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사포질하고, 구두칼로 오려내 본드 칠을 한다. 손놀림이 능수능란하다.


"사람들이 사는 게 힘이 드니까 수선이 많겠네요?"
"업이니까 하지 갈수록 수선이 없어요. 사람들이 힘들면 이 일도 마찬가지로 힘들어요. 싼 중국신발 신다가 그냥들 버려요."
"하루 수입은요?"
"먹고살기 빠듯해요. 단골이 많으니까 그나마 유지가 되요."

나보다 남을 위하는 똑소리 나는 사람


 징걸이, 구두칼, 집게, 구두약 등 구두수선에 필요한 갖가지 공구들
징걸이, 구두칼, 집게, 구두약 등 구두수선에 필요한 갖가지 공구들조찬현

 어긋난 가죽이나 닳아빠진 구두 밑창이 그의 손을 몇 번 거치자 새롭게 거듭난다.
어긋난 가죽이나 닳아빠진 구두 밑창이 그의 손을 몇 번 거치자 새롭게 거듭난다. 조찬현

이곳 단골인 임근홍(54)씨는 구두수선집 사장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나보다 남을 위하는 똑소리 나는 사람이라며 칭찬한다.

구두수선공 김씨는 신발이 잘 고쳐졌는데도 트집 잡아 가격을 깎는 손님들이 있는가 하면 고생했다며 덤으로 돈을 더 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신발에 관한 한 산전수전 다 겪어서일까. 그는 손님들의 신발만 보고도 몸 건강상태와 성격까지도 알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손님들에게 조언을 해주면 대부분 고맙다고 하지만, 고깝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당혹스럽다고 한다.

"꼭 이루었으면 하는 꿈이 있나요?"
"거창한 꿈은 없습니다. 경제가 어서 좋아져서 서민들이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살기가 힘들 때 날이 추워지면 가진 자들은 잘 못 느끼지만 서민들은 조금만 추워도 추위를 많이 느껴요."

한때 양화점 기술자와 자동차 행상을 하기도 했던 그는 홀로 산다. 돈 벌어서 결혼하려 했었는데 계획이 번번이 빗나갔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었는데 실패를 거듭한 것이다. 인연이 되면 언젠가 짝을 찾게 될 것이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좋다고 한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유로운 직업이라서 이 일을 평생 계속하겠단다.

그가 맨손으로 구두를 닦고 있다.

"장갑을 사용하시지 그래요."
"장갑을 끼고 하면 곱게 안 됩니다. 체온이 있어야 구두약이 골고루 스며듭니다."

손이 시려도 아랑곳 않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정성을 다한다.

맨손으로 구두를 닦는 그의 소박한 꿈이 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의 말마따나 경제가 좋아져서 서민들이 잘살았으면 좋겠다. 또한 장가를 가고 싶다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져 번쩍번쩍 광나는 인생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두수선공 #구두닦이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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