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 출연한 주준영(송혜교)의 헤어스타일. 깔끔하면서도 청초해 보인다.
KBS
이제 마흔아홉. 구질구질한 게 싫다. 머리숱이 적어 매번 모자 쓰고 나가는 것도 불편하고 초라하다. 휑한 머리숱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칠 때마다 시리고 마음이 아리다. 아무렇지 않게 의연한 것처럼 버티면서도 속으로 삭여온 그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까?
'새해에는 인생을 바꿔보자. 깔끔하게 산뜻하게 즐겁게' 우선 집안청소를 했다. 미련 떨며 너저분하게 처박아두었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여기저기서 꺼내서 다 버렸다. 베란다도 거실도. 갑자기 숨은 1인치를 찾은 것처럼 넓고 시원해 보였다. 얼마나 뿌듯한지. 며칠은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남대문시장으로 선배랑 나섰다. 가발시장으로. 몇 군데를 찾아다닌 끝에 한 군데 들어갔다. 주인 말대로 여러 개를 써보고 그 중 맘에 드는 것 하나를 골라서 쓰고 집으로 들어왔다. 세 식구가 동시에 바라봤다. 아들 녀석은 배꼽 잡고 웃으며 벗으라고 성화였다.
딸은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었고, 남편은 "늬 엄마가 시집 한 번 더 가려나 보다" 했다. 식구들은 직장에 어떻게 나가려 하느냐며 걱정했다.
"괜찮아. 5일만 지나면 적응돼."한참 있다가 남편한테 말했다.
"여보, 내가 원했던 정답은 '내가 다음에 더 좋은 것으로 해줄게'였는데…."단골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짧게 치고 가발 머리도 다듬었다. 한결 나아 보였다. 며칠 후 주변 사람들의 말이 '진작 하지' 그랬느냐며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열흘이 지났다. 처음엔 좀 어색하기도 했고 고민스러웠다. 나의 정체성이 뭘까? 오랜 기간 힘들게 견뎌온 의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 후 살아온 날이 이십 수년, 앞으로 살아갈 날은? 보험비교에 의하면 여자의 평균수명은 81.5세라고 한다. 말 그대로 평균이니까 10년은 접고 20년 정도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이제 남은 20여 년은 나를 위해서 살아보자. 식구들로부터 벗어나자.나에게 홀로서기의 첫 번째 선물이 가발인 건 어떨까? 머리숱 적은 것이 창피해서라기보다는 겨울 찬바람에 안쓰럽고 한여름 땡볕에 처절한 게 이젠 싫다.
남은 20년, 신나게 살아볼 테다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팠었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싫고 측은히 바라보는 눈빛도 싫다. 작은 변화로 삶이 즐거울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여겨 실행에 옮긴 것이다.
다행히 성공인 듯싶다. 주변 지인들의 반응도 좋았다. 옷 입는 데도 자신이 있다. 자연스러워서 별로 표시가 안 난다고 했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얘기도 하고. 모두들 용기를 북돋워줬다. 얼굴에 생기도 돌았다. 이제 사람들 앞에 막 다가가고 싶다. 즐겁다.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전체적인 커트머리로 앞머리 살짝 내리고 뒷모습은 다소 파마기가 강하다. 그동안 봐왔던 내 모습 중에 제일 생기발랄한 모습이다. 사랑스럽다, 스스로도. 다른 사람은 파마기가 강하다고 다음엔 생머리를 해보라지만 지금의 내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 같다.
이제 파마를 안해도 되고 염색도 필요 없고 아침마다 드라이하며 머리 손질할 필요도 없다. 간단하게 손가락을 이용해 살짝 빗어만 주면 된다. 1석3조다. 게다가 얼마 전 쓴 기사로 인해 여성잡지사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도 했다. 사진도 찍고.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며칠 사이에 일어났다. 2009년 초반부터 왠지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다.
변화를 시도하길 잘했다. 거울을 자꾸 보고 싶다. 다음엔 어떤 헤어스타일을 골라볼까?
'그런데 찜질방 갈 때는 어떻게 하지?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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