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의 악마화는 공포정치를 부른다

질서와 안전의 대가는 침묵과 순종... 선정적 보도 자제해야

등록 2009.02.10 10:24수정 2009.02.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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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권우성

또 다시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 사건이 터졌다. 유영철, 정남규, 작년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과 고시원 방화 사건에 이어, 미디어들은 다시 한 번 '인면수심', '영혼없는 괴물' 같은 자극적인 표현들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것 같은,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보도들은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 2004년 유영철 사건 이후, 대형 범죄 사건의 보도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존재한다. 일단 범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이루어지고, 이 범죄자가 진단 테스트에서 몇 점을 맞은 사이코패스라는 추가보도가 꼬리표처럼 덧붙여진다. 그리고 이 사이코패스가 어떤 이들인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이들이 외양만으로는 구별되지 않으며 "가면을 쓴 채 우리 곁에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뒤따른다.

그 덕분인지, 법의학자 사이에서나 사용될 만한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어느새 온 국민의 필수 상식어휘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되는 연례행사를 보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미디어들이 살인사건의 원인이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사이코패스 개념은, 과연 믿을 만한 걸까? 아니 그보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등장한 걸까? 그나저나 '양의 탈을 쓴 괴물'이라는 사이코패스가 너무 무서운데, 이 공포는 누가 책임지는 거지?

사이코패스, 정신의학 쪽에서도 합의된 개념 아냐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 자체가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개념이 아니란 점이다. 국내에 소개된 '사이코패스' 개념은 로버트 헤어(Robert Hare) 박사와 동료들이 발전시킨 개념을 근간으로 하는데, 사실 이 개념은 그 자의적 성격 때문에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헤어 박사의 사이코패스 개념은 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개인의 인성 및 행동에 점수를 매겨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 과정에서 상담자의 주관이 상당한 영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종종 상담자의 기분 나쁜 감정을 상담 대상에게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시킨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이나 심지어는 "사이코패스는 한마디로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다"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 맞서 헤어 박사 등이 PCL이나 PCL-R과 같은 사이코패스 측정 도구들(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이코패스 식별 테스트가 바로 이 PCL-R이다)을 발전시켰지만, 이 도구들의 정확성 및 신뢰가능성 역시 아직 논란거리다.


일반적으로 이 테스트는 재범률 예측에 있어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결과가 상당히 차이가 나고, 여성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기가 어려운 등 '미국의 남성 범죄자'라는 특수한 문화에 최적화된 도구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모호한 정의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39번 국도변에서 군포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를 살해 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39번 국도변에서 군포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를 살해 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권우성

게다가 여러 사회학자나 사회심리학자들 역시 '사이코패스' 개념이 가진 모호성과 환원론적 특성에 문제제기하고 있다. 호주에서의 사이코패스 개념 형성사를 연구한 데이비드 매컬럼(David McCallum)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정신병'에도 '정신박약'에도 해당하지 않는 '도덕박약(moral imbecile)'을 식별해 내기 위해 발명된 개념이라고 말한다. 20세기 초 지능검사의 발달이 정신박약을 식별하는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이 지능검사로 변별해 낼 수 없는 '도덕박약'을 구별해내기 위해 사이코패스 및 '반사회적 성격장애'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이들을 지칭하는 도덕박약 개념이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상당히 모호하다는 데 있다. 특히 사이코패스가 연쇄살인자들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헤어 박사의 주장처럼 전 인구의 1%나 되는 '선량한 얼굴을 한 포식자(predator)'라면, 이들의 어떤 행동과 태도를 비도덕적 행위이자 비도덕적·반사회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지는 그 자체로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의 모든 행동을 '성격'으로 환원하여 설명한다는 비판 역시 제기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사이코패스를 둘러싼 미디어들의 접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미디어들은 평소 성실했던 강씨의 모습을 '겉과 속이 다른'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식의 접근은 또 다른 사이코패스 살인사건으로 묘사된 조승희 사건에서도 발견된다.

오늘날 특정 작가가 쓴 문학 작품에서 그 작가의 '성격구조'를 읽어내는 비평가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에 딱 좋지만, 미디어는 조승희가 쓴 습작들을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문제는 그것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다층적인 성격구조나 정체성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번 '사이코패스'로 판별되면, 그가 보였던 과거의 모든 행동은 사이코패스의 증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재해석된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사이코패스 담론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폐쇄적인 담론이다.  

범죄자의 악마화... 그 귀결은?

사이코패스 개념과 담론이 가진 이러한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어째서 사이코패스 개념을 모든 걸 설명해주는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이 개념에 의존하면 범죄의 원인과 경과, 대책 등을 손쉽고 선정적으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범죄학자 로버트 라이너(Robert Reiner)는 오늘날 미디어들의 범죄 재현이 범죄자를 악마화(demonize)하고 범죄를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범죄자들이 다양한 사회적 모순을 반영하는 "끔찍하지만 비극적인 인물"로 재현되었다면, 오늘날 범죄자들은 설명도 이해도 불가능한 "순수 악"이나 "근본 악"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사실 범죄는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각종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징후이며, 그만큼 이해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주도하는 사이코패스 담론은, 이 복잡한 문제들을 제쳐둔 채 범죄자의 불안정한 성격구조라는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러한 접근이 가진 문제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 작년 10월에 있었던 고시원 방화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은 배제된 하층계급의 구성원이 자신의 사회적 불만을 같은 하층계급에게 터뜨린, 사회모순을 반영한 범죄의 전형이었지만, 미디어에서는 이를 '묻지마 살인'이라 이름붙이고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임을 강조하는 선정적 보도에 열을 올렸다. 이러한 평면적 접근 속에서 범죄를 둘러싼 사회 문제와 이에 대한 대책은 사라지고, 이제 위험한 잠재적 사이코패스들을 사전에 '식별'해내고 이들을 격리하여 범죄를 '사전예방'하는 것만이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하게 된다. 

공포의 정치와 통제의 문화

 중앙일보에 실린 강모씨 사진.
중앙일보에 실린 강모씨 사진.중앙닷컴캡처

문제는 범죄에 대한 이러한 평면화된 접근이 범죄사회학자 데이빗 갈란드가 '통제의 문화(culture of control)'라 이름붙인 새로운 통제구조의 강화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갈란드에 따르면,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사회는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보다는 '위험한 집단'인 사회적 주변인들에 대한 격리와 통제를, 범죄자의 교정보다는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식별과 격리를 선호하는 '배제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의 문화는, 범죄자를 치료도 재활도 불가능한 '괴물'로 재현하고 사회적 주변인들에 의한 범죄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자 및 주변인들에 대한 더 강력한 처벌을 내놓는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도록 만드는 '공포의 정치'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미국 사회에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던 사이코패스 담론이 다시금 활발히 등장한 것도, 그리고 이들을 다룬 범죄 드라마와 영화들이 히트를 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제 사회로의 이행 시기와 맞물려 있다. 혹시 식별도 치료도 쉽지 않은 사이코패스가 우리의 이웃에 산재해 있다는 사이코패스 담론이, 이러한 통제의 문화를 강화하기 위한 공포의 정치에 좋은 소재거리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이번 사건에 대해 정부와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책들은 이러한 의구심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범죄가 발생하자 경찰은 종합대책으로 CCTV 설치 확대, 검문검색 강화, 유전자 정보 활용을 위한 유전자법과 중범죄자 얼굴공개에 관한 법률 제정 추진을 발표했고, 한나라당은 감형이나 사면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제' 도입과 강력범죄자 신상 공개 등을 법제화하겠다고 공포했다.

게다가 실질적인 폐지 상태였던 사형제 부활 논의까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안전'의 가치를 최우선에 놓고 이를 위해 여타의 가치들은 포기할 수 있다는 이러한 행보는, 지난 1970~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우파들이 60년대 사회운동 세력들에 맞서 "법과 질서(Law&Order)"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사회 통제를 강화해나갔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러한 행태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1990년대 초반 우리 역시 "범죄와의 전쟁"이란 이름하에 체제저항세력과 잠재적 범죄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기묘하게 결합했던 운동권과 조직폭력배의 쌍이, 오늘날에는 촛불세력과 사이코패스 간의 결합으로 바뀔 것 같다는 점 정도랄까?

그래서 안전의 대가는?

물론 안전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가치이며, 개인의 삶의 영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복잡한 질문에, 범죄자나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실정법의 강력한 집행이라는 단순한 답을 들이댈 때 발생한다.

이럴 때 사람들의 범죄에 대한 공포와 안전에 대한 욕망은 현존 사회체제 및 법질서에 대한 맹목적 옹호와 사회통제의 강화를 위해 활용된다.(우리는 철거민들이 야기했다는 "안전에의 위협"이, 어떻게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지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오늘날 사이코패스에 대한 미디어의 담론들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인 공포에 노출시켜 은밀히 공포를 재생산하고 통제를 강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영국 대처 수상의 억압적 통제 정책을 은유했다는 앨런 무어의 만화 <브이 포 벤데타>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그들은 질서와 안전을 약속했고, 그 대가는 침묵과 순종이었다."

2009년 한국의 사이코패스 담론이 수렴해가는 궁극적인 지점이 혹시 여기인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국민의 1%는 사이코패스", "혹시 우리 이웃도 사이코패스?"같은 제목을 달고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기사들이 왠지 예사롭지 않은 건 이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보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진보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이코패스 #강호순 사건 #공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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