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권우성
또 다시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 사건이 터졌다. 유영철, 정남규, 작년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과 고시원 방화 사건에 이어, 미디어들은 다시 한 번 '인면수심', '영혼없는 괴물' 같은 자극적인 표현들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것 같은,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보도들은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 2004년 유영철 사건 이후, 대형 범죄 사건의 보도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존재한다. 일단 범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이루어지고, 이 범죄자가 진단 테스트에서 몇 점을 맞은 사이코패스라는 추가보도가 꼬리표처럼 덧붙여진다. 그리고 이 사이코패스가 어떤 이들인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이들이 외양만으로는 구별되지 않으며 "가면을 쓴 채 우리 곁에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뒤따른다.
그 덕분인지, 법의학자 사이에서나 사용될 만한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어느새 온 국민의 필수 상식어휘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되는 연례행사를 보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미디어들이 살인사건의 원인이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사이코패스 개념은, 과연 믿을 만한 걸까? 아니 그보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등장한 걸까? 그나저나 '양의 탈을 쓴 괴물'이라는 사이코패스가 너무 무서운데, 이 공포는 누가 책임지는 거지?
사이코패스, 정신의학 쪽에서도 합의된 개념 아냐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 자체가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개념이 아니란 점이다. 국내에 소개된 '사이코패스' 개념은 로버트 헤어(Robert Hare) 박사와 동료들이 발전시킨 개념을 근간으로 하는데, 사실 이 개념은 그 자의적 성격 때문에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헤어 박사의 사이코패스 개념은 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개인의 인성 및 행동에 점수를 매겨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 과정에서 상담자의 주관이 상당한 영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종종 상담자의 기분 나쁜 감정을 상담 대상에게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시킨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이나 심지어는 "사이코패스는 한마디로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다"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 맞서 헤어 박사 등이 PCL이나 PCL-R과 같은 사이코패스 측정 도구들(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이코패스 식별 테스트가 바로 이 PCL-R이다)을 발전시켰지만, 이 도구들의 정확성 및 신뢰가능성 역시 아직 논란거리다.
일반적으로 이 테스트는 재범률 예측에 있어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결과가 상당히 차이가 나고, 여성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기가 어려운 등 '미국의 남성 범죄자'라는 특수한 문화에 최적화된 도구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모호한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