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요, 어떻게 선생님이 되셨어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게 된 첫날, 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앞 줄에 앉은 아이 한 명이 이렇게 질문했다. 아이 얼굴을 보아하니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냐고?'
순간, 난 당황스러웠다. 대부분의 만남에선 첫인상이 중요한데, 그 '첫만남'에 그런 질문을 들은 나는 '혹시 아이들은 내가 맘에 들지 않는 건가'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질문을 한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때까지도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주빗거리며 대답했다.
"아니요, 어떻게 선생님처럼 어린 사람이 우리를 가르치냐고요. 또, 남자잖아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난 왜 그 아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보통 초등학교 현장에선 남성교사가 저학년 담임을 맡는 일은 거의 전무하다 싶을 뿐만 아니라, 남교사가 존재하더라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가 스물아홉살인 나를 보며 그런 말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선생님처럼 젊은 남자 선생님은 아마도 처음 보나보구나? 그래도 선생님이 가르쳐서 싫은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오히려 좋은걸요!"
귀엽게 대답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처음의 오해가 좀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이가 한 말이 그 후로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당연히 여자분인줄 알고 있는 아이들이 그 친구 말고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뭔가 내가 어렸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초등학교'란 이곳에서 '나'란 존재는 어떠한 것일까?
초등학교에서 남성교사로 지낸다는 것은...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남교사로서 초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나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초등학교라는 공간, 직업을 가진 나에게는 작업환경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곳은 실제로 남성에게도 섬세함과 꼼꼼함을 요구한다.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수행해야 하는 일 자체가 사람의 스타일을 변화시키게끔 만들었던 것 같다.
주기적으로 일기검사를 하며 코멘트를 남겨준다거나 교실 환경을 꾸민다거나 하는 일은 전에는 거의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런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고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혹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귀찮아하면, 바로 좋지 않는 결과로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초창기엔 어깨에 무거운 짐을 맨 듯했다.
물론 이런 직업적 특성이 남교사에게는 어려움이겠지만 대부분의 주변 여교사에게는 꼭 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는 듯했다. 그것을 어려워하는 것은 나같은 남교사, 그것도 경력이 몇 년 안 된 저경력교사들이었다.
남교사로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같이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는 같은 학년이 보통 5~6반으로 구성돼 있는데, 남교사는 한 학년에 고작 1명 뿐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학년 선생님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때때로 소통이 단절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아무래도 남성과 여성은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의 참여도도 그만큼 적었던 것 같다.
특히 남성으로서 교단에 서면서 느낀 고민같은 것을 털어 놓을 상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주변인들은 '다른 학년 선생님들과 충분히 관계를 가질 수 있지 않냐'고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학년 업무 위주로 일과가 진행되기 때문에 타학년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히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많아지는데, 우리 학년에 남교사는 나 혼자 뿐인지라 소외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모든 남교사가 느끼겠지만 관리자분들(교장, 교감)은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교사에게 맡긴다. 대부분의 남교사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힘이 세다고 해서 '당연히' 힘을 쓰는 일을 해야한다고 여기는 것은 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힘을 쓰는 일이 100이라고 하면 학교 내 교사의 90%를 차지하는(서울 통계) 여교사들은 열외로 하고 고작 10%정도인 남교사들이 그 100을 다 도맡는 것이다. 사실 힘쓰는 일이라고 해도 조금씩 분담을 하면 일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초등학교에 남교사가 필요한 이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난 남교사가 초등학교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유는 내가 남성이기 때문은 전혀 아니다. 학습지도나 아이들을 세심하게 다루는 것 등에 대해선 여교사보다 남교사가 부족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야외활동(체육)을 한다거나 계속해서 여성화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성역할을 분명하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남교사 비율이 어느 정도는 돼야 한다.
많은 여교사들이 야외활동을 꺼려하는 것은 예전부터 문제가 된 사실이다. 일부 여교사들이 강한 햇빛이나 땀이 나는 것 때문에 야외활동을 꺼려한다. 그래서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거나 대충 넘기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몸을 부딪히고 함께 뛰면서 땀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아이들과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도 되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남성과 여성의 문화차이를 알려줄 수 있다는 면에서도 어느 정도의 남교사는 필요하다. 여교사 속에서만 생활한 남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와 같은 상급 학교로 진학해서 느끼는 성에 관한 이해도는 남교사 속에서도 생활한 남학생들과는 엄연히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성역할에 대한 교육은 다른 이론 교육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고 이런 여건이 뒷받침 되어질 때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아직까지 난 학기초에 나에게 호기심을 가졌던 아이의 말을 잊지 못한다. 학기말이 된 지금에 와서는 그 아이의 바람을 어느 정도 이루어 주었는지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나와 같은 남교사를 못 만날지도 모르는 그 아이에게 내가 남교사의 존재를 잘 각인시켜 줬는지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정말로 아이들이 입에서 "남자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2009.02.10 14:1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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