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밥상, 값이 왜 천차만별이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 알뜰살뜰 상차리기

등록 2009.02.09 22:20수정 2009.02.0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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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류 나물 5가지를 산다고 치면 나물값은 5천원~8천원선
나물류나물 5가지를 산다고 치면 나물값은 5천원~8천원선 이종찬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
"보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
"보름날 '다리'를 밟으면 다리가 튼튼해진다"
"보름날 새벽에 부럼(밤, 잣, 호두, 땅콩)을 깨물면 부스럼이 사라진다"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달 음력 15일은 보름 중 '가장 큰 보름'이라는 정월 대보름이다. 우리 민족은 해마다 일 년 중 가장 큰 달이 뜨는 이 날이 되면 액운을 쫓아내고 복을 받기 위해 오곡밥에 여러 가지 나물로 복쌈을 싸먹는다. 이와 함께 지신밝기, 줄다리기, 연 날리기, 강강수월래,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펼친다.

보름날 풍습도 갖가지다.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새벽에 부럼을 깨무는가 하면 다른 사람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며 더위를 팔기도 한다. 일년 내내 좋은 소식만 들려오라는 뜻에서 귀밝이술도 마시고, 집에서 키우는 소에게도 밥과 나물을 차려준다. 하지만 개는 서럽다. 보름날 밥을 주면 마른다 하여 달 뜨는 저녁에 밥을 주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를 올리기도 하고, 약밥이나 나물을 까마귀에게 던져주기도 하며,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얻어 먹기도 한다. 1960년대 허리춤께, 나그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마을사람들은 '보름날 성이 다른 세 집 오곡밥을 얻어먹으면 그해 운수가 좋다' 하여, 여러 집에서 오곡밥을 얻어먹곤 했다.

하지만 긴 불황 탓에 '밝고 또 밝아야 할' 정월 대보름이 되어도 오곡밥과 마른 나물, 여러 가지 보름 풍속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남의 잔치 구경하듯' 그냥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들도 꽤 많다. 보름 부럼 깨무는 데 쓰이는 견과류 등이 지난해보다 껑충 뛰어올라 보름 상차림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견과류 호두 10개 3천원, '땅콩 반 되 2천원', '잣 4/1되 3천 원'
견과류호두 10개 3천원, '땅콩 반 되 2천원', '잣 4/1되 3천 원' 이종찬

잡곡류 4인 가족 기준으로 오곡을 사서 한 끼를 해먹으려면 3천원 정도 든다
잡곡류4인 가족 기준으로 오곡을 사서 한 끼를 해먹으려면 3천원 정도 든다 이종찬

견과류는 오르고, 나물류는 내리고...  

서울 농수산물공사가 최근 올해 정월대보름(9일) 상차림에 들어가는 주요 농산물 가격을 조사한 결과 견과류는 크게 오르고 나물류는 지난해와 같거나 조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오곡밥에 쓰이는 찹쌀, 팥, 밤, 콩, 조, 수수 등 잡곡류는 수수만 크게 오른 반면 나머지 곡류는 가격이 약간 내림세를 보였다. 


농수산물 공사는 "품목별로는 잣은 작황 부진으로 인해 오름세가 두드러졌으며, 밤은 간식시장이 넓어지면서 수요가 늘었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수입산 위주로 장터에서 팔리고 있는 땅콩과 호두는 수입국 현지 생산량 감소와 환율 상승에 따라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에 따르면 나물류 중 건고구마순과 수입산 건고사리는 환율이 올랐으나 수입량이 안정돼 있어 오르내림 폭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국산 위주로 팔리는 건취나물은 작황이 아주 좋아 지난해보다 가격이 오히려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국산 건고사리는 생산량이 적어 지난해보다 2배 가량 올랐다.


공사 관계자는 "국산 찹쌀과 팥은 경기침체로 인해 소비가 줄어 지난해보다 내림세를 보였으며, 수수는 국내 생산량 감소와 환율 상승으로 인해 국산, 수입산 모두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견과류와 잡곡류가 많이 팔리는 정월대보름이 지나가고 나면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겠지만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랑구 면목동 동원시장에서 국산 호두(10개 한 봉지 3천원)와 땅콩(반 되 한 봉지 2천원)을 팔고 있는 김아무개(43)씨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호두와 땅콩이 평소에 비해 3~4배 가량 많이 팔리고 있어 살맛이 난다"며,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누가 호두와 땅콩을 지금처럼 사겠느냐. 업종을 바꾸거나 잡곡류와 채소 등을 겸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물 6가지 나물을 조리해서 파는 가게
나물6가지 나물을 조리해서 파는 가게 이종찬

오곡 오곡밥을 지어 먹기 좋게 잡곡과 콩 10~12가지를 섞어 물에 깨끗하게 씻어 파는 가게도 곳곳에 있었다
오곡오곡밥을 지어 먹기 좋게 잡곡과 콩 10~12가지를 섞어 물에 깨끗하게 씻어 파는 가게도 곳곳에 있었다 이종찬

오곡밥 오곡밥을 지어 파는 가게도 있었다
오곡밥오곡밥을 지어 파는 가게도 있었다 이종찬

4인 가족 기준 정월대보름 상차림 비용은 1만5천원~2만원선

정월대보름 앞날인 8일(일) 오후 5시께 재래시장인 동원시장을 찾았다. 지금 팔리고 있는 견과류와 잡곡류, 나물류 등 실제 가격을 알아보고, 오곡밥을 해먹기 위해서였다. 그날 찾은 동원시장은 지난 설 대목장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는 손님들은 가격만 물어볼 뿐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나물가게를 찾았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국산 피마자 2천원, 국산 묵나물 2천원, 국산 시레기 1천원, 국산 토란대 1천원, 국산 고구마순 1천원, 국산 도라지 2천원, 국산 고사리 2천원, 다래순 2천원, 취나물 2천원, 피마자 2천원이었다. 그중 나물 5가지를 산다고 치면 나물값은 5천원~8천원선. 

하지만 다른 나물가게로 가자 값이 달랐다. 나물류 가격이 한 가지에 3천 원 하는 곳도 있었고, 1천5백원~3천원 하는 곳도 있었다. 나물류를 팔고 있는 박아무개(56)씨에게 "왜 이렇게 나물값이 천차만별이냐?"고 묻자 "사람 얼굴은 왜 저마다 다르냐"라며, 생산지와 품질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입산 나물류는 5백원~1천원선.  

땅콩과 호두, 잣 등 견과류를 팔고 있는 가게 앞에 서자 호두 한 봉지(10개)에 3천원이라고 씌어져 있다. 그 옆에 '땅콩 반 되 2천원', '잣 4/1되 3천 원'이라고 붙어 있다. 하지만 견과류 또한 가게마다 5백원에서 1천원 정도 가격이 들쭉날쭉했다. 견과류 3가지를 한꺼번에 산다고 치면 7~8천원선.    

찹쌀, 팥, 조, 수수, 콩 등 잡곡류를 팔고 있는 가게로 가자 김아무개(71, 여)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한다. 나그네가 잡곡류를 살 때마다 가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김 아무개 할머니는 "잡곡류는 양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4인 가족 기준으로 오곡을 사서 한 끼를 해먹으려면 3천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나물 맛깔스럽게 무친 5가지 나물
나물맛깔스럽게 무친 5가지 나물 이종찬

보름 밥상 오곡밥과 마른 나물이 만나면?
보름 밥상오곡밥과 마른 나물이 만나면? 이종찬

'이명박 보릿고개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6가지 나물을 조리해서 파는 가게도 더러 눈에 띠었다. 가격은 4인 가족 기준 5천원. 이 가게 이아무개(68)씨는 "요즈음 사람들 바쁜데 나물을 일일이 사서 언제 무쳐 먹나"라며, "5천원만 들이면 6가지 나물을 맛나게 먹을 수 있지만 나물가게에서 나물을 사면 아무리 싸게 사더라도 6~7천원은 들여야 하고 양념값까지 합치면 1만원은 들 것"이라고 말했다.

오곡밥을 지어 먹기 좋게 잡곡과 콩 10~12가지를 섞어 물에 깨끗하게 씻어 파는 가게도 곳곳에 있었다. 여러 가지 잡곡에 쌀과 찹쌀이 섞인 것은 반 되에 3천원, 잡곡만 섞여 있는 것은 반 되에 2천원. 그 곁에는 아예 오곡밥을 지어 파는 가게도 있었다. 4인 가족 기준 5천원, 2인 가족 기준 3천원.

그날, 나그네는 잡곡만 있는 것을 2천원 주고 샀다. 그리고 시금치를 한 봉지(4인 분) 5백원 주고 샀다. 나머지 나물류는 가까이 있는 누나 집에서 조금 얻어먹기로 하고, 귀밝이술로 쓰기 위해 막걸리 1병을 1천2백원에 샀다. 나그네가 동원시장에서 올 정월대보름 상차림으로 쓴 돈은 고작 3천7백원.

하지만 나물과 부럼용 견과류까지 골고루 샀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만원을 훨씬 넘겨야 했을 것이다. 긴 불황에 지갑이 얇아져 늘 불안하기만 한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가 알려주는 알뜰살뜰한 정월대보름 상차리기. 어때요?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명박 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신밟기 흥겨운 지신밟기
지신밟기흥겨운 지신밟기이종찬

보름달 휘영청 떠오른 기축년 보름달
보름달휘영청 떠오른 기축년 보름달이종찬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정월대보름 #동원시장 #오곡밥 #부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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