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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달이 휘영청 밝다. 언제부턴가 기름진 땅덩이에 길이 훤히 열리고, 길을 달리기 위해 짐승들이 하나둘 출발선상에 모여 있다. 서로 말들을 안 해서 그렇지 저마다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하다. 돼지, 개, 양, 소, 말이 오늘의 주인공들이다.
윷놀이에서 도는 돼지, 개는 글자 그대로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이라 전해오고 있다. 이 짐승들은 지금부터 주인의 어령소리를 시작으로 열심히 뛰고, 규칙을 잘 지키고, 서로 협동하여 빠르고 무사하게 우주 전체를 한 바퀴 돌아와야 한다.
우주(윷판)엔 29개의 동그라미가 있다. 동그라미는 하늘을, 죽 뻗은 직선은 대지 즉 땅을 상징한다. 우주 속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도 들어있다. 여기엔 지름길(모를 치면)도 있고 잘못하면 오던 길을 되돌아와야 할 X길(back도)도 있다. 우주를 무사히 돌아오자면 윷판을 잘 놓고 짐승들을 편안히 몰아야 한다. 성깔머리가 조금씩 다른 짐승들을 잘 다독이고, 체구와 속도감을 조절해야만 목적지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얼씨구, 지화자 좋다!” 정월대보름맞이 윷놀이가 한창이다. 윷가락이 땅에 떨어져 숨을 고를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 간다. ‘두두-둑’ 윷가락이 멍석바닥에 내려와 치고 때리고 엎어지고 자빠지니, 도가 벌러덩 뒤집혀 모가 되고, 개가 자빠져 윷이 나온다. 그때마다 시골 앞마당이 들썩대고 논배미가 덩실거린다.
치고 잡고, 던지고 잡히고, 업고 또 업고, 엎치락뒤치락, 이리 돌고 저리 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동 나고 두 동 나고, 석 동 나고 넉 동 나니 ‘얼씨구 지화자 좋다’ 만세 삼창이다. 한 자리에 모여 불러보는 ‘얼씨구’ 소리에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고향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멍석 깔고 찰떡을 쳐댄다. 쌀이 모여 밥이 되고 밥이 합쳐 떡이 되듯 마음을 합쳐 본다. ‘철썩, 철썩’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소리다.
아줌마들은 아침부터 돼지머리 삶고 빈대떡 부쳐내고, 지지고 볶느라 정신이 없다. 어딜 가나 먹고 노는 사람 따로, 일하는 사람 따로, 잔심부름하는 사람 따로 있게 마련, 이래서 세상은 살맛이 난다.
척사대회는 농사철이 되기 전, 동네 사람들의 화합과 호흡을 함께하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비는 행사이다. 윷가락이 상징하듯 짐승들의 체구와 속도감을 조절하여 넉 동이 날 때까지 말판을 잘 놓고 다스려야 풍년을 기약할 수 있다.
열심히 뛰고, 규칙을 잘 지키고, 서로 협동하여 ‘지화자 좋다’를 외치고 떠들며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온다고나 할까. 그러자면 적당한 밀어붙이기와 경쟁심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후의 영광은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협동과 인내심으로 짐승들을 끝까지 몰고 가는 현명한 사람들만의 몫이 될 것이다.
윷이 흰 배를 깔고 벌떡 나자빠질 때마다 워낭소리 더욱 정답고, 모가 ‘어흥’하고 엎드릴 때마다 말발굽 소리 온 동네를 흔들어댄다. 보름달 둥글기가 완벽하다. 올 기축년은 누가 뭐래도 풍년이 틀림없으렷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북집네오넷코리아, 웰촌 농촌공사 알콩달콩사는이야기,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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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0 17:1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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