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18일, 오마이뉴스에 기자회원으로 가입하고 첫 번째 기사를 올렸다.
제주도 농어촌 마을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때라 신문구독조차도 선택의 폭이 좁았다. 도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나 이른바 조중동 중에서 선택해야 했었다.
친구에게 "여기는 H신문도 안들어온다"며 하소연을 했더니만 <오마이뉴스>를 권한다. 친구의 권유대로 며칠 <오마이뉴스> 눈팅을 하는 사이 '사는 이야기'라는 코너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정도의 이야기라면 나도 할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 기사는 보기 좋게 생나무, 두번째 기사가 잉걸로 채택이 되었다.
소소한 삶의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던 어느 날, 잡다한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주변에서 가장 흔한 것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의 소재로 '들꽃'에 대한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좋아지는 만큼 들꽃을 전하는 매체인 사진담기에 대한 공부와 그들에 대한 자료조사는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 들꽃에 대한 사랑도 깊어졌고, 그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조금 서운한 정도라고나 할까?
들꽃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모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간 책을 출판하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오마이뉴스>와 인연이 되어 출판한 책은 모두 5권, 베스트셀러는 없었지만 출판으로 인해 출판사가 손해보는 일은 없었다. 책 중 일부는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고 출판 때마다 인세까지 받았으니 <오마이뉴스> 덕분에 내 꿈의 일부를 이뤘고,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5년여 동안 내가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는 위와 같다.
거기에다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된 이후 <오마이뉴스>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는 행운도 누렸으니 그 상금까지 치면 2천만원이 훌쩍 넘는다.
지금도 원고료 총액을 보면 깜짝 놀란다. 그리고 청구 가능한 원고료를 보면 조금 허탈(?)하기도 하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원고료를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형차까지는 아니더라도 중형차는 사고도 남을 만큼의 원고료 덕분에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가급적이면 '청구가능한 원고료'를 차곡차곡 모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곳에 원고료가 쌓여갈 때의 뿌듯함, 그러나 서울 생활은 이런 뿌듯함을 오래 간직하게 호의를 베풀지는 않는다.
이젠 고료가 문제가 아니라, 뉴스게릴라의 존재성이 문제
이 고민은 오래 되었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원고료를 보고 글을 올린다는 것은 손해보는 일이다. 기사화되었을 때 최고의 원고료는 5만 원, 종이신문에 실리면 6만 원이다. 여타의 인터넷 매체에 비하면 후한 고료지만 일반 고료에 비하면 적은 액수다. 거기에다가 가끔씩은 자존심을 접어야 할 때도 있다. 자기가 생각하던 기사의 배치 이하일 때도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기자회원들의 경우 대체로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 서운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에 내 기사 배치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오마이뉴스>는 고료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흔적을 남기는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인 홈피를 넘어서서 세상과 소통하며 내 삶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면서 '뉴스게릴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사는 이야기' 섹션에 글을 많이 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신변잡기식으로 쓰지는 않는다. 개인의 살아가는 이야기지만 정치, 경제, 사회 제반 영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게릴라'의 존재성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의 일부이며, 자신의 시각을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공유하면서 때로는 공감을 얻기도 하고, 비판을 당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향해 '이것이 나의 존재성'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뉴스게릴라의 존재성이다.
내 삶의 꿈을 구체화 시켜준 <오마이뉴스>
서울생활 3년을 거의 꽉 채우고 있다.
서울생활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삶의 현장과 괴리된 글들이 시골생활하면서 쓰는 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글쓰기와 사진담기는 그 이전과 비교하면 몇 배 힘들었지만 독자들은 냉정했다.
지금 나는 삶의 현장과 글쓰기와 사진담기가 괴리되지 않은 삶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풀어놓았던 글, 독자들과의 소통은 나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독자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삶을 꿈꿔왔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는 <오마이뉴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간 참으로 많은 분들과 교류했다.
때론 서운하게 헤어진 분들도 있고, 만나지 못한 분들도 있고, 만나야 할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인연들이 내겐 재산이다. 간혹 이전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들이 뜸한 발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무 오래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만큼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장수 뉴스게릴라가 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살을 깎는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중형차를 사고도 남을 원고료는 어디로 갔지?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원고료 총액, 어디로 갔는지 다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중 일부는 남을 위한 좋은 일에 사용했고, 가끔씩은 기사를 쓰기 위한 도구를 구입하는 일에 쓰기도 했다. 그리고 제법 적립했다 싶을 때에는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기도 했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신용불량이라는 극한 상황에 가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아내에게 "야, 원고료가 중형차를 사고도 남을 만큼이었네?"하니 "이제부턴 차곡차곡 모아서 당신하고 싶은 거 해" 한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원고료에 얽매이지 않고, 기사가 어디에 걸리나 열받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원고료를 모아 꼭 필요한 것을 마련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뭘 마련할 거냐고 물으신다면 뉴스게릴라의 필수장비인 카메라장비를 제대로 마련해 보고 싶다.
뉴스게릴라에게도 카메라와 렌즈 같은 것 지원해줄 수 있을 정도의 <오마이뉴스>로 만드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내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뉴스게릴라' 모두의 힘이 모아져야 되는 일이니 꿈꾸지 못할 일도 아닌 듯하다.
적립된 원고료는 바닥을 기어도 여전히 난 <오마이뉴스>가 있어 좋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
2009.02.12 17:5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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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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