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사람 살 집을 돈벌이로 여기는지...

가난한 자들의 한숨을 먹고 크는 도시

등록 2009.02.12 11:51수정 2009.02.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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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사를 했다. 집을 중요한 재산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이사라고 하면 보통 좀 더 넓은 집이거나 좋은 조건으로 옮기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사실 이는 왜곡된 이미지일 뿐 대다수의 서민은 오른 임대비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보통이다. 은평구 응암동에 살다가 서대문구 남가좌동으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다시 이사를 한 우리 가족 또한 마찬가지 처지다.

 

이번에 우리를 받아준 곳은 은평구 수색동이다. 일산으로 가는 서울의 마지막 동네다. 응암동에 살 때는 집이 서울시립병원 옆 비탈이었다. 여름에는 땀이 나고, 겨울에는 눈이라도 오면 종종걸음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남가좌동에서는 집은 낡았지만 그나마 조금 덜 비탈진 곳이었다. 그 때 세 살배기인 아이와 함께였던 우리 부부는 그 작은 차이를 위안으로 삼으며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를 한 수색동은 응암동처럼 다시 집 바로 뒤에 등산로가 있는 비탈이다. 이사를 하는 날 이것 저것 처리를 하느라 비탈을 몇 차례 오르내렸더니 다리가 뻐근 거렸다. 게으른 탓에 운동을 안 한 이유도 있겠지만, 만만치 않은 경사도도 단단히 한 몫 했을 게다. 뭐 아래보다 공기도 좋고, 좋은 산책로도 있으니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 않았다.

 

 이번 이사는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살고 있던 남가좌동은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곳이다. 도시 재개발도 여러 가지 구분이 있는데, 그 중 계획에 따라 진행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 ‘뉴타운’ 지역이라고 한다. 남가좌동이 바로 소위 ‘가좌뉴타운’ 지역이다.

 

계약만료 다가오자 얼굴 싹 바꾼 집주인

 

2년 전 이사를 들어갈 때부터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시에는 재개발조합이 설립조차 되지 않은 상태여서 우리 부부는 ‘떡고물’을 바라보고 이사를 감행했다. 이주가 시작되면 세입자에게도 일정한 이주비가 나오는데 그걸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많지는 않은 돈이지만 워낙 가난한 우리 가족에게는 그 떡고물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주택임대차계약 상 2년 계약을 하면서도 집주인에게 가능하면 이주가 시작될 때까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뒀다. 주인도 그러자고 했다.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재개발조합도 설립되고 1년 안에 이주가 이루어진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데 계약만료가 다가오자 집주인이 당황스러운 얘기를 꺼냈다. 시골로 내려가 있던 집주인이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라며 집을 비우든지 세를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올려달라는 세도 턱없는 수준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우선 한숨부터 나왔다. 떡고물도 떡고물이려니와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 과연 다른 곳에 집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집주인과 협상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도 낡은데다 얘기도 붙이기 싫어 그만두기로 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버틴다고 꼭 유리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이사를 결심한 우리 가족을 받아줄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부동산값 하락으로 전세비도 내렸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들의 얘기일 뿐이다. 겨우 집을 얻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별개의 상황인 것이다. 은행이자가 바닥을 치면서 소액임대차의 경우 전세가 없어지고 월세로 전환을 많이 해 오히려 부담만 높아졌다. 많지 않은 수입에 상대적으로 높은 월세는 서민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서 겨우내 발품을 팔아 찾은 곳이 이번에 이사한 수색동이다.

 

 한숨은 돌렸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수색동 역시 ‘재건축’이 예정된 곳이다. 계약 때부터 중개업자는 2년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기상 떡고물도 바라볼 수 없는 집이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집이어서 우리 부부는 각오하기로 했다. 다음 이사에는 아예 서울을 떠나리라는 결심도 했다. 현재 우리 가족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우울한 위안도 들려온다. ‘용산참사’ 이후 정부가 재개발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조정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개발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참사’를 겪고서야 외양간 고치기 바쁜 이 사회가 그저 씁쓸할 뿐이다.

 

도시도 서울도 싫다, 그러나 가난해서 떠나는 건 더 싫다

 

아마 우리 가족과 같은 상황은 대다수 서민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풍경일 것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안전하고 평화롭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권리’라고 규정한 주거권은 한국에서는 그저 먼 얘기다. 품위는커녕 평화도 찾기 어렵다. 주거가 권리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개발업자나 부동산 투기꾼들의 돈벌이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보금자리’는 허울이다. 주거에 사람은 없고 돈만 남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가족과 같은 ‘이주 인생’들의 한숨은 그치기 어렵다. 용산참사와 같은 상황 또한 반복이 뻔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용산참사에 대해 ‘참사’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언론도 그렇고 시민사회의 대응도 MB의 공격적 정책과 경찰의 진압작전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다. 물론 이번 참사에 대해 MB와 경찰은 응당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검찰의 면죄부는 책임회피의 방어막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도시 개발과 관련한 이런 일들이 어디 MB정부에서만의 일이던가. 돈이 주거를 장악하고 난 이후로 줄곧 계속되어 왔고 예상되던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큰 교훈과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주거에서 돈을 떼어내는 일, 개발의 중심에 인간이 설 수 있도록 하는 논의가 시급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한숨을 먹이 삼아 성장하는 도시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말이다. 더구나 ‘삽질’에 목마른 MB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주거에 대한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점을 찾는 작업은 절실함 이상이다.

 

 지금 서울 곳곳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되어 있다. 그 속에서 한숨을 쉬는 서민들 또한 부지기수다. 근본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무작정 ‘MB탓’의 함정에서 나오지 못하는 한 우리 가족과 같은 이들은 이제 서울과 작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시가 좋다거나 서울을 떠나기 싫다는 식의 얘기가 아니다. 도시도 서울도 싫다. 그렇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내몰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우리 가족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 또한 개발의 혜택을 누려야 할 인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허창영씨는 현재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2.12 11:51ⓒ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허창영씨는 현재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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