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워낭소리, 그리고 지울 수 없는 기억

등록 2009.02.13 10:39수정 2009.02.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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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엽

ⓒ 오도엽

 

잊고 싶은 기억이 있는가 하면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도 있다. 잊으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일도 있다. 기억하면 행복해지는 일도 있고, 떠오르는 순간 살갗이 바르르 떨리며 소름이 끼치는 일도 있다. 지워졌다고 믿으며 수십 년을 잊고 살았는데 어느 한순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오늘의 내 삶에 오롯이 자리를 잡기도 하는 게 기억이다.

 

오백일이 넘는 기나긴 시간을 비정규직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싸워야 했던 이랜드일반노동조합. 홈에버가 홈플러스에 인수되면서 기나긴 싸움은 종지부를 찍었다. 몇몇 간부들의 ‘아름다운 희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점점이 사라져가고 있다.

 

사라진 걸까? 끝난 걸까?

 

2009년 2월 12일, 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5번 출구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리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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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엽

ⓒ 오도엽

 

뉴스 거리도 되지 않고 특별히 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랜드 투쟁에 미련이 남거나 궁금한 무엇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비가 쏟아질 듯 우중충한 날, 그저 막걸리에 부침개나 부쳐 먹으며 한영애의 '목포의 눈물'이나 들으며 옛 추억에 잠기면 행복할 그런 날. 내가 지하철 7호선을 왜 탔는지 모른다.

 

가산디지털단지역은 특히 내가 가기 두려워하던 곳이다. 천일이 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에 너무 아파하고 너무 많이 울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우려고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고 가슴 한가운데 돌덩이가 자리잡아 사라지기는커녕 바위처럼 커져 가위눌리게 하는 곳. 비가 오려니 날궂이를 하는 건지 이곳으로 끌려왔다.

 

며칠 전 이랜드 해고노동자 복직투쟁 2월 집중집회를 한다는 문자를 받을 때만 해도 탁상달력에 동그라미를 치지 않았다. 어젯밤 꿈속에서, 지난 주말에 봤던 영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소가 나타났다. 잠을 깨고도 워낭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는지 딸랑딸랑 거려 컴퓨터를 켤 수가 없었다.

 

홀린 듯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섰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그때 가산디지털단지역 5번 출구가 떠올랐다. 자주 갔던 기륭전자는 5번 출구가 아니었는데, 왜 5번이 떠오르지? 그때만 해도 이랜드 문자 메시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5번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딛고서야 이랜드를 떠올렸고, 사라진 걸까? 끝난 걸까? 의문을 가졌다. 어쩌면 어제 본 할아버지가 <워낭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지금은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을 하는 이남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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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엽

ⓒ 오도엽

 

출구를 빠져나오자 자신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했을 이랜드 해고자 이남신과 홍윤경이 반갑게 맞이한다. 동우화인켐, 강남성모병원, 한솔교육…….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는 얼굴들이 모여 있다. 한두 시간씩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도 한 사람들인데, 어느 사업장이었는지가 퍼뜩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도 그럴 만하다. 비정규직이나 투쟁사업장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낀 거지만 사업장이 다르고 살아온 길이 달라도 그들의 사연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투쟁을 하면서 이미 사업장의 벽을 뛰어넘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름도 사라졌을 것이다. 노동자이고 비정규직이고 해고자이고 대한민국의 얼굴들이다.

 

앰프가 설치되고 피켓들이 줄을 지어 사람보다 먼저 자리 잡았다. 때에 전 이랜드일반노조의 깃발이 오른쪽에 우뚝 섰다. 왼쪽에는 유난히도 하얀 홈플러스테스코 노동조합의 깃발이 마주 보며 일어선다. 한 깃발 아래 모였다가 홈에버의 매각으로 딴 집을 차렸지만 이랜드일반노조의 벗이 되어 새 옷을 입고 나들이를 왔다. 홈플러스로 가면서 이랜드 쪽으로는 소변도 보기 싫었을 텐데, 그래도 벗이 있기에 궂은 날인데도 찾아온 것이다. 투쟁은 기억에서 지울 수 있어도 그때 만난 사람을 어찌 지울 수 있겠는가?

 

마이크를 잡은 이남신의 목소리가 비장하게 흘러나오자 꿈길에서 빠져나왔다.

 

오백일이 넘는 파업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이랜드 가족에게 남겼다. 조합원만이 아니라 비조합원 직원들도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구사대로 동원된 일이 너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박성수 회장은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한 번이라도 사과를 한 적이 있는가.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시간에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직원들을 위해 기도 한 번 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책임을 졌다. 1억이 넘는 벌금도 냈다.

 

뭐 이런 말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평생을 싸우더라도 박성수 회장의 무릎을 꿇게 하겠다.

 

또한 간곡히 말했다.

 

악질이고 강성이라는 이남신과 홍윤경은 어떤 희생도 받을 수 있다. 이랜드에 노동조합만을 인정한다면. 4년 동안 단체협약을 해지한 상태로 있는 게 말이 되냐며. 노동조합이 보기 싫으면 노사협의회에서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이야기 좀 하자고. 정말 일단락 짓고 싶다고.

 

이건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의 대표로 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의 자격으로 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저 진실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귀가 달렸다면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한 말이었다.

 

아침부터 울리던 내 머릿속 워낭은 이랜드 노동자의 목소리였나 보다. 이랜드, 아직 기억이라는 단어의 울타리에 가둘 수 없다. 소가 죽은 뒤에도 처마 끝에 달려 달그랑거리는 <워낭소리>의 워낭처럼 말이다.

 

경제가 어렵다 한다. 실업자가 늘어난다 한다.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해지고 그 고통의 첫 바람을 맞아야 할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워낭소리>는 독립영화의 기록을 깨고 있다. 목을 움츠리고 있지 말고 미친바람에 가슴을 활짝 펴고 맞서야 할 때가 아닐까. 비정규직이, 해고자가, 그리고 소외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리는 워낭소리를 들으며, 함께 하는 마음으로.

2009.02.13 10:39ⓒ 2009 OhmyNews
#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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