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살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해서, 우울증으로 악플에 의한 스트레스로, 성적비관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쓰러지고 있다. '1997년 10만 명당 13명, 사망 순위 세계 8위. 2007년 10만 명당 31.5명, 사망 순위 세계 4위' 이것이 바로 입에 담기 민망한, 우리나라 자살 현황이다.
2009년에도 경기침체라는 악재 때문인지 자살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자살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비롯해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 문제를 놓고 '자살예방마을'을 만들어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등대 같은 역할을 하는 스님이 안성에 있다고 하여 지난 12일, 한달음에 그를 찾았다.
묵언마을의 지개야 스님. 그에겐 경상도에서 방금 올라온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꽃피듯 환하게 웃는 웃음이 그걸 말해준다. 이런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자살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주변에서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 하지예. 그래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묵언마을에 오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사연을 들어주는 거 아임니까. 마 그렇게 하다보면 속이 확 뚫린다 아잉교."
이것이 지개야 스님의 제일 큰 상담 노하우.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다. 어떤 때는 상담하러 온 사람보다 스님이 더 많이 울기도 한다니 더 말해서 무엇할까.
"속에 쌓인 화를 풀어 주지 않으면 극단적인 방식(자살, 질병, 범죄)으로 분출하게 되뿔지요. 그 모든 충격을 사회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거고요. 이거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문제 아니겠습니꺼. 그 화를 어딘가에 털어내야 본인도 살고 나라도 살지요. 화를 입으로 털어내도록 하는 거, 그게 바로 묵언마을에서 처음 하는 일이지요."
특별한 것도 없는데, '아하' 무릎을 치게 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살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은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그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다. 자살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어렵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자살 예방 노하우
그렇게 지개야 스님을 만나, 자신의 화를 털어 놓고 나면 바로 이어서 묵언수행에 들어간다. 3일 동안 묵언수행을 하다보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면서 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스님은 설명한다. 그리고 난 뒤, 다시 스님과 대화를 하면 좀 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고, 점차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특별한 것도 없다. 스님의 치유 방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만나게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하겠다.
지개야 스님의 이런 노력으로 생을 얻은 사람은, 한강 물에 뛰어 들려다가 묵언마을에 찾아와 문제를 해결하고는 자살을 철회했다는 중년 남성, 장애가 있는 아들과 동반자살을 하려다가 마지막으로 들른 묵언마을에서 힘을 얻어 삶을 다시 찾은 주부, 결혼에 네 번이나 실패해서 자살을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중년 남성 등 다양하다.
스님에 의하면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전화와 방문을 통해 상담을 했으며, 그 중 30여 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함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연을 모아, 최근 지개야 스님이 낸 책 <묵언마을의 차 한 잔을>은 묵언마을의 성과를 엮은 작은 열매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삶의 의지가 꺾인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을 지피고 있지만, 불가 입문 전 사회에서 지개야 스님의 행보도 범상치 않았다. '안동 축협 근무, 경상북도 도의원, 여의도 국회 비서관, 수억 벌어들여 자수성가.' 이것이 사회에서 얻은 지개야 스님의 이력이다.
한때 잘 나가던 것을 접고, 출가와 함께 '묵언마을'을 만든 것은 무슨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다. 2004년 신문에서 '2003년 통계에 의하면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한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순전히 '자살하려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자'는 마음에서였다.
내 말을 줄이고 남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런데 왜, 절 이름이 묵언마을일까. "아파하는 사람이면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여기에 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기에 가면 종교의 벽이 없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엔 교회 목사와 장로, 그리고 가톨릭의 신부와 수녀 등도 있다.
"종교가 없어도 사람은 살지만, 종교는 사람 없인 살 수 없는 기지요. 사람을 위한 종교, 지금 여기에서 사람을 살리는 종교가 진짜배기 종교 아이겠능교.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가 아이라 전 인류를 위한 종교가 참 종교지요."
말이 넘쳐나는 시대,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해대는 시대, 남의 말을 좀처럼 잘 듣지 않으려는 시대.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말을 줄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묵언마을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할 것이다. 더불어서 "자살을 줄이기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아파하는 이웃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라는 지개야 스님의 처방이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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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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