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권우성
청와대가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는 이른바 '이메일 지침'을 경찰에 내렸다가 이 같은 사실이 민주당 김유정 의원과 <오마이뉴스>에 의해 공개되자 그런 '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건 사실이라며 하루 만에 인정을 했다. 청와대는 '용산참사'로 발생한 부정적인 여론에 물을 타려다 그만 자신들이 물을 먹고만 셈이다.
일단 잡아떼고 보자는 식의 청와대 거짓말도 한심스럽지만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권력기관인 청와대가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구체적인 진상조사나 별다른 해명이 없다는 것이다.
가관인 것은 청와대가 '이메일 지침'을 '사신(私信)' 운운하면서 청와대 행정관의 개인행동으로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공무원'이 '공적인 일'을 경찰청 '공무원'에게 지시하는 것을 어떻게 '개인적인 편지'로 볼 수 있는지 청와대의 인식이 참 순진하고 너그럽기 그지없다.
'공무원'이 '공적인 일'을 '공무원'에게 지시한 게 사신?불현듯 몇 년 전 한 연예인이 음주운전을 해 물의를 일으킨 일이 떠오른다. 그 당시 그 연예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해괴한 변명을 한 적이 있다. 청와대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앞뒤가 안 맞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음주운전을 한 연예인은 아직까지 공중파 복귀를 못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해당 행정관에게 '구두경고', 즉 한 번 타이르고 계속 근무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청와대 '이메일 지침' 논란이 문제인 것은 청와대가 군사정권 시절에 '언론보도지침'을 내리던 것과 비슷한 반민주적인 구태를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더 큰 문제는 무슨 일이 터지면 국민들의 알권리는 깡그리 무시한 채 거짓말과 변명만 늘어놓고,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안하무인으로 버티기만 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메일 지침' 내용을 곰곰 생각해보면 청와대가 국민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청와대를 무서워해야 할 판이다.
먼저 '촛불을 확산하려는 반정부단체'라는 문구를 한 번 보자. 그동안 야당, 시민단체, 진보언론들이 촛불을 옹호해 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어 왔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반정부세력이 되거나 반정부세력의 선동에 놀아난 한심한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촛불과 반정부세력과 연관시키는 청와대의 인식은 촛불을 드는 누구나 반정부세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서운 것이다.
또한 밝혀진 '이메일 지침' 내용에는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문구도 나온다.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을 '여론 조작'용 도구로 사용한 청와대가 참으로 잔인하고 무섭다.
청와대는 국민의 '목숨'보다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나아가 극악무도한 살인마를 인터넷 '댓글알바'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