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2.18 13:32수정 2009.02.18 13:32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달려갈 때였습니다. 이틀동안 내린 촉촉한 단비 덕분에 날은 오랜만에 상쾌했습니다.
비는 건조하고 텁텁한 공기를 말끔히 씻어냈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밤낮없이 뿜어대는 자동차 때문에 겨울에도 편히 잠들지 못한 가로수의 검은 때까지 살포시 씻겨주었습니다. 철마산 능선과 징매이고개 너머에서 둥실 떠오른 해는 산안개를 밀어내며 환히 빛났고, 골프장 개발 위협에 처해있는 계양산도 오랜만에 맑은 모습을 띠었습니다. 힘을 살짝 주어도 쉽게 부서질 것 같은 낙엽들도 봄기운을 머금은 빗방울에 스스르 녹아 있었습니다.
고개 너머 요란한 아침을 열고 있는 계산역과 고층아파트 숲을 빠져나와 서운공원으로 건너갈 때는, 얼어붙었던 서부간선천이 녹아 오랜만에 출렁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빗물이 흘러든 서부간선천의 물위로 주변에 우뚝 솟은 아파트가 묘하게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 사이클경기장이 있는 서운공원을 가로질러 봉화로를 따라 나아가다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택지개발로 그리고 경인운하 건설로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는 들과 마주했습니다. 봄비에 녹은 논은 오랜만에 목을 축여 생기가 돌았습니다. 봄이 오면 이 논에 다시 볍씨가 뿌려지고 벼가 자랄 것입니다. 하지만 땅과 흙, 쌀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 탐욕스런 땅투기와 파괴적인 개발을 일삼는 무리들은 이 논마저 언제 빼앗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빼앗기고 사라지는 들에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논과 밭에 고약한 두엄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엄은 지치고 병든 땅을 되살리고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생명의 기운을 아낌없이 전해줄 것입니다. 따스한 봄비를 맞고 피어오르는 두엄 무더기의 하얀 연기처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2.18 13:32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포토] 빼앗긴 들녘을 되살리는 고약한 두엄 냄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