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불교신자들이 제1차 세계불교대회가 열린 항저우시 링인사(靈隱寺)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 링인사는 중국불교 선종십찰(禪宗十刹)중에 하나다
백찬홍
서브프라임 위기로 미국경제가 침몰하면서 예상보다 일찍 중국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세계 규모의 불교행사를 연이어 개최하면서 불교마저 중화주의의 패권 하에 놓이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불교협회는 올 1월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올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중국 장쑤 성 우시(無錫)와 대만 양국에서 제2차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하고 세계 50여 개국 1200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 규모 행사는 가톨릭처럼 범지구적 기구가 없는 세계 불교계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세계적 규모의 불교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개방화와 경제발전으로 인한 사회양극화와 혼란, 공산주의 사상의 지도적 역할 상실 등으로 야기될 수 있는 체제이완을 방지하고 세계불교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중국정부는 사회통합의 대안으로 불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위한 지원과 육성을 강화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통일전선부(통전부)는 외래종교류(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와 본국종교류(불교, 도교, 유교 등)로 분류하고 외국 세력이 종교를 이용해 침투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철저한 관리를 천명하고 자국종교라고 분류된 불교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느슨한 정책을 펴면서 포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19세기말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인식하에, 자치(自治)·자양(自養)·자전(自傳)을 원칙으로 하는 3자정책을 통해 외국 선교사들의 전도활동을 금지하고 가톨릭 주교도 바티칸과의 관계악화를 무릅쓰고 정부가 직접 임명하면서 서구 기독교의 침투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불교, 중국사회 빈부격차와 혼란으로 인한 사회통합 대안으로 떠올라중국 당국의 방조와 암묵적인 지원으로 현재 중국 내 불교신자는 최소 2억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최소 몇 년 내에 4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세계불교신자가 3~4억 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국제사회에서 중국불교의 위상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감안해 지난 2006년 4월 항주에서 열린 제1차 세계불교포럼 때 1천억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35개국 1천여 명의 대표단을 초청했고 이 행사를 주관한 항저우 시는 공항 입국 심사대에 세계불교포럼 전용통로를 개설하고 공항택시 시트에 세계불교포럼 홍보문안을 새겨 넣는 등 대대적인 준비를 하기도 했다.
또한 2005년 자신들이 세운 제11대 판첸 라마를 참석시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본명이 기알첸 노르부인 판첸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한 후 해외에서 티베트 분리 자치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고사작전의 일환으로 중국정부가 옹립한 인물이다.
판첸라마는 티벳불교전통에서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후 환생자(후임자)를 찾고 후임자가 성숙할 때까지 스승으로서 실권을 갖는 존재다. 중국 정부가 항저우 불교포럼에서 어용 판첸라마를 참석시킨 것은 달라이라마 사후 티벳사회를 장악하고 독립운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에 망명한 달라이라마와 대다수 티베트인들은 기알첸이 환생자의 지정권한이 없는 중국정부의 꼭두각시라며 자신들이 지정한 판첸라마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10대 판첸 라마가 입적한 후 1995년 비밀작업을 통해 티벳 현지에서 당시 여섯 살의 치에키 니마를 판첸 라마로 지정했으나 중국 정부는 발표 3일만에 치에키를 비롯한 가족, 조사단원을 연금해 현재까지 행방불명상태다.
이후 중국정부는 1995년 12월 공산당원의 아들인 여섯 살의 기알첸을 판첸 라마의 환생자라고 공표하고 기알첸에게 10여 년간 수도인 북경에서 티벳 불교와 역사, 사상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왔다.
기알첸은 제1차 불교포럼에 참석한 후 자신이 출생한 티벳 고향마을과 인근 지역을 방문하면서 달라이라마를 반역자라고 비난하는 등 중국정부의 입장을 두둔하고 2008년 2월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어 세계 3대불교 전통의 하나인 티벳사회에 나서고 있다.
중국 불교, 국제불교대회 등을 통해 세계불교계의 패권 노려 중국 정부는 1차대회에 한국·일본·태국 등 주요 불교국가 대표가 참석하고 판첸라마 등을 통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평가하고 대만정부와 협의해 2차대회는 중국과 대만간의 경제와 문화 통합을 위해 개막식은 중국에서 폐막식은 대만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불교가 양국의 공통유산인데다 중국과 관계가 불편했던 민진당 출신의 천수이볜 전 총통 시절과 달리 국민당 출신의 마잉주 총통이 친중국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마 총통은 2010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달라이 라마의 정례 방문을 부정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2차 불교포럼에 대해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중국 종교사무국과 중국불교협회는 포럼에 대비해 2008년 11월초부터 상하이 국제연구대학에서 대회를 준비하는 승려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영어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11월말에는 중국과 대만, 홍콩 등 전 세계 중국계 주요사찰 240여 개소에서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타종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한국·일본·대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북방불교(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잡고 종국적으로는 화교를 기반으로 세계불교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불교계는 이를 위해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는 자신들에게서 사라진 선불교 수행전통을 전수받고 일본을 통해서는 발전된 불교의 학문적 성과를 얻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단을 보내기도 했다.
앞으로 중국 당국과 불교계가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면 세계 종교계는 급격한 지각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화교를 포함해 수억 명의 신자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 불교가 중국정부의 막대한 자금과 인력지원으로 성장한다면 로마교황청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불교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국과 일본 불교계는 아직까지 뚜렷한 대응이 없는 편이다. 중국 측이 매 2년마다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하겠다고 선언하고 불교가 신흥종교처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정체국면을 맞이한 한국과 일본 불교가 더 이상 중국과 상대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한때 동아시아 불교의 종주국으로 한국, 일본에 선종·화엄종·천태종 등을 전해준 중국불교의 부상은 거대한 용의 부활에 견줄 수 있다.
앞으로 한국 불교가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 불교의 고유한 전통과 사상을 체계화하고 전문기관을 설립해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전문포교사를 해외에 적극 파송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숭산스님이 홀로 그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불교계 전체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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