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조작, 몸통들이 조사... 대국민 사기극"

[인터뷰] 체험학습 허용해 징계 받은 김인봉 장수중학교 교장

등록 2009.02.24 16:18수정 2009.02.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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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학업성취도 평가의 '성적 조작 의혹'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시민사회종교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고사 폐지, 학업성취도평가 무효, 성적조작 책임자 문책, 파면해임 교사 원상 복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자료 사진).
전국학업성취도 평가의 '성적 조작 의혹'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시민사회종교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고사 폐지, 학업성취도평가 무효, 성적조작 책임자 문책, 파면해임 교사 원상 복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자료 사진).유성호

"일제고사가 계속되는 한 성적 조작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결국 우리 교육은 다 망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학생들이 다 보고 있다. 그들이 일제고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나. 교육자로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김인봉 전북 장수중학교 교장은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김 교장은 "일제고사 이후 지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일제고사 결과 성적이 낮으면 낮은 만큼 사람들이 뭐라 하고, 이번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선생님들이 성적이나 조작하고 다닌다'고 비난하고 있다. 정말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

김 교장은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부끄럽다"는 말을 유독 많이 반복했다. 그는 작년 10월 일제고사 때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승인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15일 전북교육청으로부터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일제고사 때 서울 일부 학교는 운동부 학생들에게 시험을 못 보게 했다. 교장의 권한으로 체험학습을 허용한 사람은 징계를 받고, 운동부 학생들에게 또 다른 '체험학습'을 시킨 학교장들은 온전한 기묘한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교사 인사고과·급여에 영향 주는 한 성적 조작은 필연적"

김 교장은 이번 성적조작 파문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 중 하나였지만 "교육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일제고사 점수가 학교 등수를 결정하고, 교사 개인의 인사고과와 급여에 영향을 주면 성적 조작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일제고사를 당장 중단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장은 "이번 사태 책임자들은 징계를 받아도 공무원직을 떠난 게 아니기 때문에 곧 일선 학교 교장 등으로 복귀할 것"이라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징계를 하는 것 역시 성적 조작처럼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성적 조작 책임자들에 대한 수위 낮은 징계를 비난했다.

또 김 교장은 "이번 사태에서 임실교육청은 깃털에 불과하고 몸통은 도교육청이며, 그 위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다"며 "이 모든 과정을 학생들이 다 지켜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제발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 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김인봉 장수중학교장.
김인봉 장수중학교장.연합뉴스
- 임실교육청의 일제고사 성적 조작 파문을 어떻게 봤나.
"사실 처음 점수가 공개됐을 땐 놀랐다. 같은 농촌 지역 학교인데 왜 우리는 좋은 성적을 못 냈을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성적이 좋은 게 사실일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내가 농촌 지역 학교에서 16년 동안 있어 봤는데, 그런 높은 점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 일제고사와 관련해서 이렇게 전국적인 성적 조작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했나.
"일제고사 점수로 학교 등수를 매기고, 또 교사 개인의 인사고과와 급여에 영향을 주면 성적 조작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면, 더욱 치밀한 조작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사형제도가 있어도 흉악범죄를 없애지 못하듯, 일제고사 점수를 교사 인사고과와 학교 서열 매기기에 반영하면 성적조작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 앞으로도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한 성적 조작 사태가 계속 벌어질 것이란 말인가.
"조작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교육은 다 망가지게 된다. 지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학생들이 다 보고 있다. 그럼에도 책임자들은 조작을 계속 감추려 하고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와 교사를 어떻게 보겠나. 앞으로 학생들이 무슨 마음으로 일제고사를 응시하겠나. 교육의 신뢰라는 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노력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제고사를 자꾸 강행하려 하나."

- 그렇다면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일제고사 폐지가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 굳이 계속 강행하겠다고 하면 학교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별은 물론이고 개인별 성적 미공개를 약속해야 한다."

- 정직 처분을 받았지만 현직 교육자로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정말 지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일제고사 결과 성적이 낮으면 낮은 만큼 사람들이 뭐라 하고, 이번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선생님들이 성적이나 조작하고 다닌다'고 비난한다. 정말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누구든 성적 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처음엔 다들 조작을 안 한다고 하지만 인사고과와 성과급이 연결되면 누구도 조작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교육과학기술부도 일제고사 강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험을 강행하면 할수록 우리 교육은 그만큼 망가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교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증폭되고, 학교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릴 것이다."

"조작 사건 관련자들, 곧 교장으로 다시 올 것"

- 이번 사태 관련자들의 징계 수위도 벌써 구설에 올라 있다. 
"일제고사 문제로 전북에서 징계 받은 사람은 나 혼자다. 나는 분명히 법적으로 보장된 체험학습을 인정했을 뿐인데도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성적 조작 사건 관련자들에게 내려진 징계를 봐라. 

임실교육청 교육장은 사임했는데, 공무원직 자체를 떠난 게 아니다. 교육장직만 사임했을 뿐이다. 그는 곧 있으면 일선 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날 것이다. 담당 실무 장학사는 직위해제 됐는데, 한두 달 지나면 슬그머니 다시 교장으로 갈 것이다. 임실교육청 김모 학무과장은 머리카락 하나 안 다치고 우리 학교 이웃에 있는 장교중학교 교장으로 영전해 갔다. 성적 조작을 개인적 실수로 치부하고 가벼운 징계로 끝낼 것 같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보나. 
"사실 임실교육청은 하수인이고 깃털에 불과하다. 몸통은 도교육청이고 그 위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다. 자기들끼리 조사를 해봤자 말 바꾸기와 하급자에게 떠넘기기로 일관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징계가 가볍게 내려진다.

징계 받아 마땅한 임실교육청 김모 학무과장이 어떻게 교장으로 영전을 했겠나. 그들로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밖에 없다. 왜? 아랫사람들은 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몸통들이 조사를 하니 제대로 조사가 됐겠나. 결국 성적 조작처럼, 이번 사태 진상조사와 징계 과정은 대국민 사기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국회 폭력 사태에 대해 '학생들이 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는데, 난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일제고사를 둘러싼 모든 문제들을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교육을 하겠다는 말인가. 어떻게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하겠나."

- 서울은 물론이고 여러 지역 학교에서 운동부 학생들을 일제고사에서 제외시켰다. 
"일제고사의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공부 못하는 학생을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배제하고, 운동부 학생들을 배제했다. 그런 학생들의 학습 부진을 하나의 특성으로 보지 못하고 우열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바로 학교 아닌가.

모두 배제하면 그들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나. 그 아이들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지만, 모두 상처를 받는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 배제하고 소외시키면 훗날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 운동부 학생들 배제시킨 학교 당국자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당연하다. 당장 징계해야 한다."

- 요즘 언론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 전북교육청에서 압력은 없나.  
"전혀 없다. 현재 나는 뭐 '정직' 중이니 그냥 백수 교장일 뿐이다. 만약 압력이 있다면 당장 나부터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김인봉 #성적조작 #임실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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