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55) 짧은 미니스커트

[우리 말에 마음쓰기 563]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기는'과 '놀이로 즐기는'

등록 2009.02.26 10:49수정 2009.02.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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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기는

.. 글쎄요. 역시 문학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기는 장르로서의 인식을 기반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 <FANTA STIQUE>(페이퍼하우스) 8호(2007.12.) 57쪽


'역시(亦是)'는 '아무래도'나 '무엇보다'로 고쳐 줍니다. "즐기는 장르(genre)로서의 인식(認識)을 기반(基盤)으로"는 "즐기는 갈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나 "즐기는 갈래라고 생각하며"로 손보고, "작업(作業)에 임(臨)하고"는 "일을 하고"나 "글을 쓰고"로 손봅니다.

 ┌[백과사전] :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   바탕으로 하는 문화 활동의 하나이다. 오락, 모임도 이를 가리킨다
 ├[국어사전] : x
 ├ entertainment
 │  1 [U.C] 환대, 대접(hospitality)
 │  2 주연, 연회(social party)
 │  3  오락(amusement), 기분 전환; 연예, 여흥
 │  4 (만화·모험 소설 등의) 읽을거리
 │  5 (의견 등을) 고려하는 것
 │
 ├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기는 장르로서
 │→ 놀이로서, 즐기는 갈래로
 │→ 놀이처럼 즐기는 갈래로
 │→ 놀이와 마찬가지로 즐기는 갈래로
 │→ 즐기는 갈래로
 └ …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엔터테인먼트'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해 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보기가 뜹니다. 회사이름으로도 책이름으로도 방송이름으로도 …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신문기사에도 자주 쓰이고 방송에도 자주 나오며 개인블로그나 까페에도 수없이 쓰입니다. '국어사전에 왜 이런 말이 안 실릴까?'가 궁금할 만큼 많이 쓰입니다.

생각해 보면, 굳이 국어사전에 안 실어도 될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들이 쓰는 온갖 말은, 우리가 쓸 만한 말이냐 아니냐를 벌써 떠났거든요. 아니, 우리가 써서 알맞느냐 알맞지 않느냐를 넘어섰습니다. 아니, 우리 땅과 사람을 포근히 껴안느냐 껴안지 못하느냐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영어이니까 쓰입니다. 영어이기 때문에 두루 쓰입니다. 새롭다고 하는 문화나 문물이나 문명에 이런 영어가 쓰입니다. 이런 말을 써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며, 멋이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써 온 말로는 모자라거나 안 들어맞는다고 여기거나 멋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말뜻을 헤아리며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가 아닙니다. 진작부터 겉치레와 겉꾸밈과 겉발림에 따라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로 탈바꿈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말느낌과 말씀씀이는 남 앞에 어떤 멋으로 드러낼까에 쏠려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같은 영어는 새삼스럽지 않고 놀랍지 않고 근심스럽지 않은 말씀씀이라고, 앞으로 온누리를 '영어 나라'로 만들어 가는 길 가운데 하나로 쓰이는 낱말이라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백과사전에도 실리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머잖아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실리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새로운 문화나 문물이나 문명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즐기다'와 '재미'와 '놀이' 같은 낱말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거나 펼쳐 보이는 일이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ㄴ.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

.. 딸은 고집이 세 보였는데,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이었죠. 화장도 도시풍으로 했고요 ..  <우리와 안녕하려면>(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07) 83쪽

'도시풍(-風)으로'는 '도시내기처럼'이나 '도시사람처럼'이나 '도시사람답게'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미니스커트(miniskirt) : 옷자락이 무릎 윗부분까지만 내려오는 아주 짧은
 │    길이의 서양식 치마. '깡동치마', '짧은 치마'로 순화
 │
 ├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
 │→ 아주 짧은 치마 차림
 │→ 아주 깡똥한 치마 차림
 └ …

'짧다'보다 센 말은 '짧디짧다'입니다. '짧디짧다'보다 센 말은 '깡똥하다'입니다. '깡똥하다'는 '강동하다'보다 센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강동하다'나 '깡똥하다' 같은 낱말은 거의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니스커트'는 '깡동치마'로 고쳐써야 한다고 하는데, '짧은치마'로만 다듬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 아주 짧은 짧은치마 (?)

보기글은 아이들이 읽는 책에 나옵니다. 아이들은 이와 같은 동화 글월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익힙니다. 어른들 글에 익숙해지고 길들고 배우게 됩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동화책 아닌 이 세상 어디에서나 '미니스커트'라는 말이 넘칩니다. 노래하는 젊은 여자는 으레 '짧은치마'가 아닌 '미니스커트' 차림입니다. 짧지 않은 치마를 입고 나와도 흔히 '스커트'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긴 치마를 입고 나오면 '긴치마'가 아닌 '롱스커트'라고 이야기합니다.

서양사람이 입는 옷이건 우리들이 입는 옷이건 치마면 치마입니다. 길이가 짧으면 '짧은치마'입니다. 길이가 짧은 바지는 '핫팬츠'가 아닌 '짧은바지'입니다.

 ┌ 아주 짧은 치마 차림이었죠
 └ 짧은치마 차림이었죠

말을 잊은 우리들입니다. 말과 함께 삶을 잊은 우리들입니다. 삶과 함께 사람을 잊고,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잊은 우리들입니다. 제모습을 잃고 제길을 놓치고 제자리를 버린 우리들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종잡지 못하고 떠돌고 맴돌고 헤매는 우리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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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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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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