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을 노려라!"... 고수익 알바의 유혹

경기 한파 닥친 대학가, '다단계주의보' 발령

등록 2009.02.27 11:53수정 2009.02.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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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A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B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좋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겠다"며 교육을 한번 받아보라는 것이다. B를 따라나선 A는 C업체의 세미나실에서 '상위사업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네트워크마케팅(다단계판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옆에는 A와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3~4명씩 원탁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 비슷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A는 자신을 띄워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결국 C업체의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해 물건까지 구매했다.

대학가에 '다단계주의보'가 발령됐다. 신학기를 맞아 사회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의 다단계판매로 인한 피해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단계판매업체는 주로 "고수익 보장 아르바이트", "전공을 살린 실무 경험", "병역특례 취업" 등 대학생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조건을 내세워 판매원을 모집한다.

특히 올해는 경기 침체와 고용 악화로 취업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이를 노린 다단계판매업체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기관이 피해 예방을 위한 홍보 할동에 나섰다.

"고수익 보장 아르바이트", "병역특례 취업" 등 감언이설로 유혹

 2006년 7월, 한 대학생 다단계 업체에 학생들이 모여 있던 모습.
2006년 7월, 한 대학생 다단계 업체에 학생들이 모여 있던 모습. 최상진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전체 대학생의 14.7%가 다단계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다단계판매업자들은 매년 대학 입학철에 들뜨기 쉬운 신입생이나 사회 경험과 경제활동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연·학연 등의 연고를 이용해 달콤한 말로 이들을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경험이 적은 대학생이 다단계활동을 할 경우 금전적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가치관을 왜곡하며 개인간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등 많은 후유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현행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엔 미성년자의 다단계판매 활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있지만, 성인인 대학생의 다단계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대학생 본인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피해 유형은 친구가 아르바이트, 병역특례, 취직 등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다단계판매 교육을 받고 판매원으로 가입한 후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판매원들은 가입 후 통상 200~300만원 상당의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천안에 사는 대학생 D는 친구로부터 병역특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상경했으나 그 친구가 데리고 간 곳은 병역특례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단계판매업체 E사였다. 그러나 D는 이 회사에서 빠르면 한 달, 오래 걸리면 3년 안에 1000만 원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교육을 받고 판매원으로 가입해 물건을 구매하게 됐다.

이런 식의 교육을 받을 때는 보통 기존 판매원들과 합숙을 하며 회원 가입을 강요받게 된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F는 친구 G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에 놀러왔다가 G의 권유로 네트워크마케팅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F는 순간 속았다는 느낌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고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 하루 종일 강의를 들었고, 결국 그날 숙박까지 함께 하게 됐다. 다음날 아침 F는 고향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또다시 인상이 험한 상위판매원이 못 가게 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교육장에서 H업체의 직급체계와 후원수당에 관한 교육을 받게 됐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판매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반드시 다단계판매업체가 판매하는 물건을 사야 한다. 그러나 뒤늦게 그 물품을 반품하려고 해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금전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I는 J의 권유로 K다단계판매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약 200여 만원에 달하는 물건을 구매했다. I는 곧 금전적인 부담을 느껴 반품하려고 했지만, 반품절차를 잘 몰라 J에게 반품을 부탁했다. 그러나 자신의 후원수당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J는 '반품이 무조건 안 된다'며 거절했고, I가 구매한 물건의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I는 다음날 K업체에 반품을 요청했지만, 물건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재판매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반품을 거절당했다.

심지어 물건 구입비가 없다고 하면 학자금 대출 명목으로 사채업자를 통해 돈을 마련하게 했고,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대학생 L은 군 제대 후 용돈을 벌기 위해 친구 M의 소개로 N다단계판매업체 판매원으로 가입했다. L은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으로 물건을 구입하여 직급을 유지하고 수당을 지급받아 왔다. 그러나 하위판매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직급이 낮아져 수당지급도 줄었고 이를 불안해 한 L은 결국 신용카드 결제를 계속하다가 카드 금액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교육·합숙 강요 때 탈퇴의사 확실히 밝혀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불법 다단계판매 피해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5일부터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공정위는 교육인적자원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등 교육기관을 비롯해 한국직접판매협회, 공제조합 등에 홍보자료를 보내고, 행정안전부에도 이 내용을 반상회보에 게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정위는 "대학생들이 다단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수익 보장 아르바이트' 등의 일자리 제공 유인이 있을 때, 해당 회사가 등록된 다단계판매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등록업체는 공제조합을 통한 피해 보상이 가능하며 관할 시·도나 공제조합을 통해 등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등록된 업체일 경우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공제번호를 발급하거나 공제번호통지서를 교부한다.

공정위는 또 "교육·합숙을 강요했을 때 탈퇴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휴대폰 등으로 지인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빠져나와야 한다"며 "가급적 제품을 사용하거나 멸실 또는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반품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업체가 환불을 해주지 않았을 때는 공제조합을 통해 피해보상에 대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특히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사용 등 무리한 자금 마련은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하며, 미등록 다단계판매는 불법이므로 절대 가입하지 말고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관할 시·도에 신고해야 한다고 공정위는 강조했다.

 학년별 다단계판매 접촉경험 (자료 : 공정위 제공)
학년별 다단계판매 접촉경험 (자료 : 공정위 제공)최경준
이제 막 사회 경험을 시작하는 대학교 1학년생이 다단계판매업체의 주 타깃이 되고 있고, 특히 피해를 본 학생 10명 중 9명이 관련기관에 신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지난해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에 거주하는 대학생 11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들의 다단계판매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대학생 중 13%가 다단계판매와 접촉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촉경로는 친구를 통한 접촉이 45%로 가장 높았고, 선배(33.3%), 후배(2.1%), 기타(19.4%) 순이었다.

특히 학년별로는 대학교 1학년때 다단계판매 접촉경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입권유 방법으로는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 소개'가 61.4%로 가장 높았고, 투자기회 알선(15.2%), 좋은 제품 구입기회 제공(14.5%), 병역특례 일자리 소개(0.7%), 기타(8.3%) 순이다.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받은 대학생 중 17.5%는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하여 물건을 구매했다. 또한 가입 대학생 중 24.6%가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하면서 가입비나 물건의 구입을 강요당했다. 가입 대학생 중 31.8%는 다단계판매업자나 상위 다단계판매원으로부터 강요에 의한 합숙이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강요에 의한 합숙이나 교육을 받았던 대학생 중 92.3%는 경찰 등 관련기관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신고를 하지 못한 사유는  '절차를 몰라서'가 34.1%로 가장 높았고, '두 번 다시 생각하기가 싫어서'(31.7%), '권유자가 다단계판매업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봐'(24.4%), '보복이 두려워서'(9.8%) 등 때문이었다.

물건 구입비용은 용돈으로 지불한 경우가 57.4%로 가장 높았지만, 학자금 대출(17%)이나 신용카드(17%), 등록금(8.5%)으로 마련한 학생도 적지 않았다. 물건을 구매한 대학생 중 24.6%는 물건 구입비용을 갚지 못해 금융채무불이행(신용불량) 상태에 빠진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는 "대학교 1학년 때 다단계판매 접촉경험이 가장 높았던 것을 고려해 매년 학기초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다단계판매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및 다단계판매로 인한 피해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단계판매 #대학 신입생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고액 아르바이트 #병역특례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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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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