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그 사람을 죽이고 싶나요

'합법적 살인'인 사형을 외치기에 앞서 살펴봐야 할 것들

등록 2009.03.01 14:53수정 2009.03.0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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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60.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인 죽음을 약속당한 이들, 즉 97년 이후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아직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들의 숫자이다. 그리고 지금, 97년 김영상 정권 말기 처형이 집행된 이후로 십 여 년이 흘러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된지도 1년이 넘게 흐른 이 때, 이들의 목숨이 다시 위태로워지고 있다. 9명의 희생자들을 낳은 연쇄살인, 일명 '강○○ 사건'에 분노한 한국 사회 때문이다.

강씨가 검거된 지는 한 달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인 9명의 두 배가 넘는 희생자를 낳은 2004년의 '유영철 사건'보다도 더한 분노와 열기다. 이로 인해 사형 집행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 사형제는 존속되어야 한다, 하는 등의 사형제 논란도 수면 위로 불거지고 있다.

이윽고 이는 얼마 전 법무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속되어야', '사형 집행 실시되어야'의 의견이 각각 64.1%가 나오는 데 한몫한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었는지, 아니면 정의 의식이 투철한 것이었는지, 여당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2일 "사형제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분노와 그런 국민의 여론에 따른 정부의 대응. 이번에는 이들 59명의 목숨을 지키기에 힘들 것 같다. 기어이 죽일 태세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잘 들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무얼 바라겠는가. 이러한 분노, 거의 광분의 분위기에서 사형 집행을 반대하고 더 나아가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그저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자들의 목소리로밖에 듣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우린 더욱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가에게 개인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준다는 것은, 그 개인이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신중한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일시적 사건과 그에 따른 감정적 잣대에 휘둘려 '연쇄살인범 강씨를 죽이고 싶은 분노'와 '국가가 합법적 살인을 할 수 있는 권리 부여'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실 우리 사회의 사형수들은 대부분 흉악범들이며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이성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범죄들이다. 때문에 사형에 대한 여론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들쑥날쑥 바뀌곤 한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사형수의 참회와 사랑으로써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가 개봉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을 때, 사형폐지에 대한 여론은 크게 움직였고, 영화 측에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사형폐지에 대한 뜻이 77.9%로 압도적으로 높게 집계되었다.

지금 사형에 찬성하는 64.1%라는 수치도 물론 감정적 기준이 많이 개입된 수치다. 사실 우린 지금 '사형제의 존속 필요성'과 '강씨에 대한 분노 해소 욕구'를 확실히 구분짓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네티즌들의 강씨 관련 기사 댓글만 봐도 그렇다. 아래는 네이버 네티즌들의 강씨에 대한 댓글이다.


wlsl32** 참다참다 더러운 저런 인간 첨보네요! 살려놔서 뭐합니까?! 사형시키세요! 아니! 고문시키세요! 이떄까지 지가했던 그대로!
inna3** 아직도 안디졌냐 악마야 저런 개.새.ㄲ.ㅣ 아직도 살아있냐 빨리 지옥에 떨어져라!
tls** 이 새낀 왜 안 죽고 싸 돌아다녀
77wnd** 사지를 찢어죽여도... 아니지 가운데까지해서 오지를 찢어죽여도 현잖은 인간말종, 살인마넘...

이러한 대중들의 분노에 맞추어 사형이 집행 되고 사형제가 결국 존속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에 따른 사회적 효과는 그다지 좋게 볼 수 없다. 사형이 범죄예방에 별다른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던 1998년부터 2005년까지의 살인사건 증가율은 10.2%로써, 집행을 했던 1990년부터 1997년까지의 증가율인 23.9%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형이란 국가가 시행하는 합법적 살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죽어도 되는 놈'과 '살려도 될 놈'을 국가가 결정짓게 된다면 그 사회적 영향은 어떨까? 죽음을 죽음으로 덮는 윤리적 모순이 생길뿐더러 오히려 사람들은 죽음을 쉽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죽음의 처벌이라는 폭력적 인식을 심어주는 셈이다.

오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실제로 미국에선 아동강간·살해범으로 사형된 사건의 진범이 87년 후 밝혀진 일도 있었다. 이렇게 극적인 일뿐만이 아니라도 오판의 사례는 충분히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 체계가 이러한 실수 없이 완벽히 형을 내리리라는 기대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사형 집행의 때가 아니다. 이것은 확실하다. 오히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만큼, 피해자 유족의 복지와 또 다른 살인범의 탄생을 막는 데에 주력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이렇게 '강씨를 죽이자'하고 외치고 이에 온 정신을 집중해 있을 때 또 다른 살인이 저질러지고 계획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실제로 군포연쇄살인사건 수사를 맡은 안산상록경찰서의 치안실적 평가는 경기도 꼴등이었다. 너무 그 사건에만 모든 힘을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런 틈새로 범죄는 얼마든지 일어난다.

정부는 여론의 흐름에 이리저리 흔들려 섣부른 사형제를 논하기보다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유족을 위한 복지, 그리고 또 다른 흉악 범죄를 막기 위한 더 나은 치안 프로그램과 안정적 사회망 구축을 위해 노력해 달라. 한 명의 사람을 더 죽인다고 해서 나아지는 결과는 없다.
#사형 #연쇄살인 #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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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거북목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아 참는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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