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보내 온 <우유급식 희망여부 조사서>
이윤기
"본교에서 급식을 실시함에 있어 학생들에게 우유 급식을 일괄적으로 실시하여 왔으나, 우유 급식을 기피하거나 개인적인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우유급식이 곤란한 경우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 2009학년부터 우유 급식 희망여부를 조사하여 실시하고자 하오니 다음 내용을 보시고 「우유급식 희망 조사서」를 작성하시어 2009. 3. 6(목)까지 담임선생님께 제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학교 우유급식 희망여부 조사 안내 중에서)
우유 급식 희망여부 조사서에는 우유 급식 희망여부와 희망하지 않는 사유를 적어낼 수 있고, 사유를 적어내면 1일 급식비 1300원 중에서 우유급식비 300원을 뺀 나머지 금액만 급식비로 징수하겠다고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큰 아이 6년, 작은 아이 5년 모두 11년 동안 우유는 먹지도 않으면서 꼬박꼬박 우유 값을 냈는데 마지막 1년은 공식적으로 우유 급식에서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일 급식비 1300원 중 원치 않는 우유 급식비 300원 제외연초에 일부 초등학교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우유 강제 급식'을 고발하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썼습니다. 1월 2일, 첫 기사로
'우리 애 우유 안 먹을 권리를 허하라'는 기사가 나가고, 7일에는 우유 무상급식 예산 증액 문제를 다룬 두 번째 기사
'우유 급식 확대가 능사가 아니다'를 올렸습니다.
2월 5일에는 세 번째로 권정호 경남도 교육감에게 드리는 글
'우유 아무리 몸에 좋아도 급식 선택권 필요'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제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세 번의 기사가 나가는 동안 여러 가지 사회적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우유에 대한 찬반이 엇갈린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하였고, 아직도 우유 강제급식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비난하는 댓글도 수두룩하였습니다. 교육청에서는 학교를 통해서 글 쓴 학부모가 누구인지 확인을 하기도 하더군요. 겨울방학동안 연수를 받으시던 담임선생님이 <오마이뉴스>에 나온 기사 때문에 깜짝 놀라서 연락을 해오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도 초등학교 우유 강제 급식 관행을 바꾸는 일을 정식 활동과제로 정하고 교육청에 공문도 보내고 교육감 면담도 신청하였습니다. 교육감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교육청으로부터 강제 급식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우유급식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학부모와 학생의 희망을 조사하여 특이 체질이나 아토피 질환자 등 희망하지 않는 학생에게 강제로 우유급식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만, 귀 단체에서 지적한 사례와 같은 유사한 일이 향후에는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펼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경남도 교육청에서 보내 온 공문 중에서)
저희 단체에서는 교육청 담당자와 협의를 통해, "3월 개학 전에 일선 초등학교에 우유 강제 급식을 중단하고, 희망자에 한하여 급식을 하도록 일선학교에 공문을 보내도록 요청"하였으며, 모니터링 결과도 공개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경남도 교육청과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운영위원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급식운영 계획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사항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운영계획, 방과 후 학교 운영계획, 학교예산안 등과 함께 운영위원회에서 심의를 하였습니다.
우유 강제급식 관행,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바꿀 수 있어요제 아이 학교에서는 운영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우유급식관련 학부모 설문조사를 하였더군요. 전교생 410명 중 392명의 학부모가 응답한 설문 조사결과를 보면, 전체의 5%는 우유급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불과 5%가 우유 급식에 반대하고 있으니 그냥 일괄 급식을 하자"는 의견과 "우유 급식을 원하지 않는 5%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누어 긴 시간 토론이 진행 되었습니다.
오랜 의논 끝에 "우유가 건강에 좋고 나쁜 것과 상관 없이 학부모와 아이들의 우유 급식에 대한 선택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새 학기부터 학년 초에 우유 급식 여부를 묻는 선호도 조사를 하고, 우유 급식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급식비에서 우유 값을 빼고 납부할 수 있도록 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보궐 선거로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처음으로 학교현장으로부터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내게 되었습니다.
2월 중순에 개최된 학교운영위원회 결의사항이 반영되어 「우유 급식 희망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 6년, 작은 아이 5년 동안 먹지도 않는 우유 급식비를 울며겨자먹기로 부담했는데, 두 아이 합쳐 초등학교 12년만에 억울하게 우유 급식비를 내는 관행을 깨뜨리게 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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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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