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 위미중학교 교내 목향관에서는 제36회 졸업식이 열렸다. 이날 졸업식에는 전교생 164명과 교직원 20명 외에도 학무모를 포함한 수많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했다. 시골 학교의 졸업식답게 행사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온정이 감돌았다.
그런데 이날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이 학교를 방문한 손님들이 있었다. 한국방송공사(KBS) 기자협회장을 맡고 있는 민필규 기자와 홍보팀 조은주씨다.
지난 1월말 KBS 내에서는 이병순 '낙하산사장' 반대를 주장하다 파면 및 해직을 당했던 양승동 PD, 김현석 기자, 성재호 기자 등에 대한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제작거부투쟁이 있었다. 민필규 기자협회장은 김덕재 PD협회장과 더불어 비대위를 이끌면서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 투쟁을 통해 회사로부터 해당 직원에 대한 대폭적인 징계완화를 얻어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던 분주한 상황에서도 민필규 기장협회장이 시간을 쪼개 위미중학교 졸업식에 참여한 것은 이 학교에만 전해오는 독특한 장학금인 '현명근 기자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장학금의 주인공인 고 현명근 기자는 위미초등학교와 위미중학교를 졸업했고, 공채로 KBS에 입사해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99년 9월 14일 세계에서 세번째 높은 봉우리인 히말라야 카첸중카(해발 8586미터)를 오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사고는 그가 현장을 좀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100미터가 넘는 수직빙벽을 오르는 도중 발생했다. 당시 KBS는 22명의 취재진을 파견해서 뉴밀레니엄 기획 프로그램으로 히말라야 캉첸붕가봉 등반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민필규 기자협회장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한 조은주씨가 고 현명근 기자의 미망인이다. 현명근 기자와 조은주씨 사이에는 아들 한결이가 있는데, 지금 초등학교 4학년 다니고 있다.
현명근 기자 장학회가 만들어진 것은 당시 박선규 KBS 기자협회장(현 대통령실 언론2비서관)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 장학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때 나는 현명근 기자의 입장이 돼 생각해봤다. 아마도 망자의 입장에서 가장 슬픈 일은 함께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일일 것이다. 해서 그를 기릴 수 있는 추모 상징물을 만들기로 했다. 또 '현명근 장학금'을 만들기로 했다.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나타난 그의 청년정신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
그러나 일을 추진하기 시작하자 의외로 동료들 사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커졌다. "방송에 조금 더 폼 나게 나오려고 무리하다 숨진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저들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때 무척 화가 났다. 우리들 가운데 과연 누가 단지 방송에 좀더 멋지게 나오기 위해 1백 미터 수직 빙벽을 오를 사람이 있겠는가. 아니 좀더 나은 화면을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바로 눈앞에 심각한 위험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 박선규의 <미국, 왜 강한가> 중 일부
박선규 기자는 결국 자신의 친구인 (주)휴면링크 장남기 대표로부터 도움을 얻어 그간 위미중학교에 장학금 200만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기자협회의 뜻을 모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인지 박선규씨는 KBS 기자협회장을 사임한 이후에도 여전히 장학회장으로 남아 있다. 민필규 기자협회장은 이 대목에서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간 기자협회에서 장학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선규 선배가 친구 분에게 부탁해서 장학금을 마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얘기로는 경기가 안 좋아서 올해는 그 친구 분도 도움을 줄 형편이 못되나 봅니다. 직접 말씀은 안하시지만 제 눈치로는 올해 장학금은 박선규 선배가 자비로 감당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올라가면 지금부터라도 기자협회에서 기금을 마련해봐야죠."
당시 현명근 기자 장학회를 만든 박선규 기자는 지금 정권의 심장부인 청와대에 들어가 있고, 민필규 기자는 방송의 공영성을 사수하기 위해 정권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전현직 기자협회장의 엇갈린 입장이 서로를 대하기 불편하게 할 것만 같은데, 민필규 현 기자협회장은 이에 대해 의외로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 둘간 정파가 다르다고 해서 대화가 막혀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며칠 전 박 선배로부터 오히려 먼저 연락이 왔어요. 본인이 지금 청와대 안에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으니 위미중학교 졸업식에 대신 참석해달라는 거예요. 박선규 기자는 제가 평소에도 좋아하는 선배입니다."
이날 현명근 장학회에서 전달한 장학금 200만원은 졸업생 4명에게 각 30만원씩, 그리고 재학생 4명에게 각 20만원씩 수여되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민필규 기자와 조은주씨는 고 현명근 기자의 부모님을 뵙고 난 후 고인의 묘지를 참배하고 나서 서울로 돌아갔다.
고 현명근 기자는 내게 중학교 1년 선배다. 살아있었으면 아마도 지금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온몸을 바쳐 싸우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젠 남아 있는 기자들이 그를 제대로 추모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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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관과 기자협회장이 조율(?)한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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