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변호사
이종호
"동의대 사건으로 경찰이 사망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학생들이 시위·농성에 이른 과정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생긴 일로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보위)에서 판단한 것이다. 민보위 결정과 법원 판결은 모순되지 않는다."
동의대 사건 때 학생들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변호사는 지난 5일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이뤄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 변호사는 당시 사고 현장에 진입한 전경들 중에 화염병을 집어던진 대학생 윤OO씨의 친구도 있었음을 소개하면서 "신분만 다를 뿐이었지, 학생·전경 모두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다. 언뜻 가해자와 피해자로 비칠지 몰라도 권위주의 시대의 폭압 속에서 똑같이 희생을 치러다"고 회고했다.
문 변호사는 "학생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은 맞지만 경찰이 진압 수칙만 잘 지켰더라면 끔찍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월이 더 흐르기 전에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 1989년 동의대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민보위의 결정을 재심의하려는 법안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2002년 민보위의 결정이 올바르다고 보나?"학생들의 시위·농성을 통해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한 것은 분명하다.
비록 그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여러 명 사망하고 부상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 일 때문에 사건 자체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민보위 결정은 법원의 과거 판결을 뒤집고 당시 학생들의 행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민보위 결정과 법원 판결은 모순되지 않는다. 경찰이 사망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학생들이 시위·농성에 이른 과정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생긴 일로 판단한 것이다.
누군가 7층 바닥에 석유를 뿌렸고, 화염병으로 인해 불이 났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고와 무관한 학생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농성을 한 게 아니냐? 대다수 학생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법안은 민보위의 기능을 오해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 '오해'라는 게 무슨 뜻인가?"이런 비유를 하고 싶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유공자를 지정할 때,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주의 활동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가를 내리는 것과 조국 독립에 기여한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지금도 이를 싸잡아서 '빨갱이가 무슨 유공자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분도 있다. 이런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좌익이건 우익이건 조국의 독립에 기여한 것은 맞지 않나? 동의대 사건도 민주화 운동의 성격이 있는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고 학생들의 폭력성 부분은 별개로 판단하자는 얘기다."
"다친 전경 중에 화염병 던진 대학생 친구도 있었다"- '당시 학생들이 민주화운동 유공자라면 경찰은 뭐가 되냐'는 비판이 많다."이 문제를 경찰과 학생의 대립으로 보는 게 안타깝다. 신분만 다를 뿐이었지, 학생·전경 모두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다. 언뜻 가해자와 피해자로 비칠지 몰라도 권위주의 시대의 폭압 속에서 똑같이 희생을 치른 것 아니냐?
심지어 도서관에 진입했다가 부상한 전경들 중에는 동의대생이 한 명 있었는데, 7층에서 화염병을 던진 학생 윤OO씨의 친구였다고 한다. 그 전경은 도서관 구조를 잘 아는 터라 출구를 재빨리 찾아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다른 전경들은 그렇지 못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냐?
경찰들은 상부에서 명령하니 무리한 작전에 동원됐을 뿐이다. 경찰 진압에 무리가 없었다면 왜 그날 오전에 시경 기동대원들이 청장 퇴진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했겠나? 경찰도 학생들과 똑같이 희생자라고 봐야 한다."
- 사망경관 7명 중 추락한 4명의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나?"그 당시에도 고층건물 진압작전을 하는 과정에서 농성자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추락하거나 투신하는 일이 있었다. 진압경찰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매트리스와 안전 그물을 준비해야 했고, 현장 근처에 가져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7층에 화재가 났고, 경찰들이 창틀에 매달려서 '사람 살려달라'고 외치는데도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동료들이 4명이나 사망했다. 20년 전에는 경찰관들의 죽음에 대한 비난으로 진실이 묻혔지만, 요즘이라면 경찰 지휘관들에게 대한 책임 추궁이 충분히 이뤄졌을 것이다.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면 시민사회가 용납하겠나?"
- 7층 도서관에 화재가 생긴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한 학생이 화염병을 바닥에 던진 건 맞는데, 이것이 어떻게 화재로 연결됐는지가 재판의 쟁점이었다. 수사 단계에서는 '석유와 시너를 바닥에 뿌렸다'는 일부 학생의 진술이 나왔지만, 법원에서도 '현장에 시너가 없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학생들이 옥상으로 도망가면서 7층에 내버려둔 화염병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수색과정에서 이것이 깨지거나 넘어져서 안에 있던 유류가 흘러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