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형들과 '평화' 여행을 다녀왔어요.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여유롭게 바람도 쐴겸, 북녘땅을 보고 싶기도 해서 임진각을 목적지로 잡았구요. 공동체에서 같이 타는 투싼을 빌려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동안 여겨저기 들러 알찬 시간을 보냈지요.
수유리에서 내부순환로를 타야했지만,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해 은평구까지 쭈욱 달렸어요. 변산에서 오랜만에 온 용우형이 "이렇게나마 아주 오랜만에 서울 시내 구경하니 좋구먼!"이라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구수하게 돋구었지요.
통일로로 갈까 하다가 여차저차하여 국도를 통해 파주시로 가게 되었고, 가는 길에 헤이리라는 이정표가 보이자, 운전대를 잡은 동언형이 "어~헤이리네? 가볼래?" 했어요. 반대하는 사람이 없자 차는 해이리로 쑤욱 빨려 들어갔지요.
헤이리는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의 집단 부락이었어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모토로, 1997년 발족되었고, 15만 평에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예술공간 및 건물 100여 채가 모여 있었지요. 하나하나가 다 작품이더라구요. 예술적 식견이 없는 제가 봐도 범상한 디자인으로 세련미와 멋스러움이 진득하게 묻어있었죠.
우리는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북카페에 들어가 찬찬히 둘러보며 눈요기를 했어요. "우와, 우와 이쁘다!" 하면서요. 그런데 두세 군데 건물을 더 둘러보았더니, 금세 싫증이 나더군요. 생활공동체를 표방하지만, 정작 각 건물에서 사람 사는 냄새는 맡을 수 없었고, 몸에 맞지 않은 하이힐을 신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었어요. 푸욱 삶고 깊게 우러낸 맛은 나지 않더군요.
나아가 우리가 살고있는 공동체 방, 마을이 더 아름답고, 이쁘다는 마음이 들자, 세련된 디자인이 식상해지기까지 했어요. 안섭형도 그런 마음이었는지, 구경을 짧게 마치고,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더군요. 사진 찍기에 신이 난 서원형을 전화로 독촉하여 신발을 털고 다음 여행지로 떠났어요.
통일전망대를 창문 너머로 멀리 보면서는 작년에 이시우 선생님과 다녀온 추억을 되살렸어요. 한 번 더 가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더랬죠. 더 올라가서 임진각에서 통일을 전망하리 하면서요. 얼마 더 달려가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어요.
마침 한적한 길가에 매운탕 간판이 있어 먹으러 들어갔지요. 그곳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영업하는 곳이었는데, 한쪽벽에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팀 사인이 걸려있었고, 아주머니께서 서글서글하고 음식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우리는 주메뉴인 메기 매운탕을 시켰고, 강력추천하는 감자전도 덤으로 시켜 먹었어요. 매운탕 국물이 걸쭉하니 진했고, 감자전도 적절한 간에 매우 쫄깃쫄깃하니 맛이 일품이었죠. 밥을 먹으며, 각자의 군대 경험담 등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다시 차를 타고 임진각으로 향했어요. 식곤증으로 잠깐 졸았더니, 금방 도착했더랬죠. 공영주차장을 중심으로 왼편은 임진각 관광안내소, 오른편은 평화공원이 눈에 들어왔어요. 입장료를 내야하나 내심 걱정하며 가까이 가 보니, 무슨 코스 관광 사업을 하고 있더군요. 생뚱맞게도 허균 생가를 중간에 끼워 놓은 관광 상품이 버젓이 팔리며, 전용 고속버스까지 여러 대 동원되어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뭐, 다 그러려니 하면 마음 편한데, 돈 벌려고 너무한다 싶어서 마음이 상했어요.
그런 상술에 넘어가지 않고, 우리는 임진각만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고, 자유의 다리에 다다라 호흡을 고르고 구경을 했어요. 통곡의 벽 앞에서 잠시 통일을 위해 기도를 하기도 했구요. 이곳은 재작년에 가본 중국 단동의 북한 국경 지역과 분위기가 비슷했어요. 사진, 리본에 글씨가 어지럽게 걸려있고,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고, 어김없는 기념품 가게,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죠. 중국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는데, 한국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더군요. 재밌었어요. 다들 자기네 나라 관광지는 잘 안 가나봐요. 식상하고 폼 안 나니까.
한창 리모델링 공사 중인 임진각 전망대에 통행금지 바리게이드를 무시하고 넘어 올라갔어요. 강 건너 북녘땅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날씨가 맑아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였어요. 언제쯤 다리로 건너갈 수 있을까 상념에 잠겼을 때, 북쪽에서 새들이 유유히 남쪽으로 날아왔어요. 평화롭고 온유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거침없이 넘나드는 새들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사람도 새와 같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죠.
최근 더욱 경색된 남북 갈등이 이런 평화로운 모습으로 극복되는 바람을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가졌어요. 구름 안개가 심하지 않아서 북녘의 첩첩산중의 장관을 즐길 수 있었어요. 장엄미와 세련미가 아울러 느껴지면서 여느 산맥보다 수려해 보였죠. 직접 밟아보지 못한 땅에 대한 동경과 애착이 더욱 강해지면서요.
충분히 둘러보고 주차장을 건너 평화누리공원에 갔어요. 형형색색 바람개비가 날리고 있었고, 까만 디카를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죠. 포토존으로 유명한 작가 김언경씨의 작품인 '바람의 언덕'이래요. 땅 속에서 점차 언덕으로 올라오는 것 같이 거대한 사람의 형태를 대나무로 엮은 작품도 눈에 띄었어요. 아마 대나무 거인의 눈에는 저 멀리 평양이 내려다보이겠죠.
디카를 못 챙긴 저는 눈꺼풀로 셔터를 누르고, 눈 렌즈로 보다 넓게 풍경을 담아 마음 폴더에 저장을 꾸욱 했답니다. ^^* 대신 서원형이 필카로 사진을 많이 찍었구요. 곧 결혼하는 자욱형 야외 웨딩 촬영은 이곳에서 하면 좋겠지 싶었고, 공원을 만들어 이렇게나마 평화와 통일을 대대적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넉넉해지더군요. 맑은 날씨, 넓은 초원과 적절한 바람 덕분에 더욱요.
다시 차를 타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면 재미없으니 다른 길로 가서 볼 곳 있으면 더 보자는 제안에 만장일치 했지요. 연천으로 향하는 길에 저는 잠시 잠을 잤어요. 눈을 뜨자 태풍 전망대 검문소였어요.
피부가 뽀얀 육군 상병이 "어디 가십니까?", 우리가 "전망대요", 군인이 "출입 안 됩니다. 제한시간이 지났습니다" 하기에 우리가 다시 "언제까진데요?", 군인이 "4시까지입니다", 시계를 보니 4시 5분. "5분밖에 안 지났는데, 어떻게 안 돼요?"하자, 군인이 "안 됩니다"라는 말이 너무나 단호해서 포기를 했지요. 군인이 한 명이었다면 어떻게든 애원해서 들어갔을텐데, 어슬렁거리는 군인들이 10여 명은 족히 넘어서 이내 포기했지요.
매우 아쉽긴 했지만 차를 돌려 다른 목적지로 떠났어요. 생태지평에서 답사 다닌 경험을 쌓고 있는 동언형이 갈대밭 길을 깊이 헤치며 한적한 곳까지 들어갔지요.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조용히 따라오라고만 말하면서요. 갈대를 헤치고 언덕을 넘어가니 정말 평화로운 작은 강이 펼쳐져 있었어요. 작게 새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고요. 자갈을 주워 밑으로 던지면서 튕기는 놀이를 했어요. 팔이 아플 때까지 하다보니 철새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세우며 떼지어 날아갔어요. 전후좌우 간격이 정확하게 일정한 것이 훈련을 많이 받았나 싶을정도였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이 정도 여행이면 참 보람되지 싶기도 하고, 이제 노곤함도 슬슬 올라오고 해서, 서울로 돌아가려고 차머리를 돌렸어요. 연천읍을 지나는데, '재인폭포' 이정표가 보여, 또 동언형이 "어~재인폭포네!" 하기에 마침 고향땅에 가까이 와서 들뜬 서원형이 "갈까요?"하자, 바로 부정적인 자세로 제가 "볼 거 뭐 있나요?"며 쏘아 댔더니, "그럼, 유명하지. 연천 왔으면 꼭 한번 들러봐야 할 곳"이라며 강하게 밀어붙이자, 대화를 듣고 있던 동언형의 손은 좌회전 깜빡이를 바로 켰죠.
5분정도 산골짜기로 들어갔는데, 인적도 드물고, 집들도 허름하고, 빨간 깃발만 외롭게 나불거리고 있었어요. 재인폭포 주차장에도 차가 한두 대 밖에 없어서, 이상하다 하면서도 재인폭포로 내려갔어요. 아뿔사. 물소리가 안 들려서 불안이 증폭되었고, 역시나 폭포수도 뒷산 계곡에서 흐르는 한줄기밖에 없더군요. 아쉬움을 달래며, 그래도 "병풍처럼 둘러진 절벽은 멋있네"하며 안섭형이 흥을 돋구자, 사진이라도 한방 박고 가려고 먼저 온 관광객에게 사진기를 건넸죠.
돌아오는 길, 폭포 입구에 '낙수 없습니다'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더군요. 허탈한 웃음을 누르고, 다시 차에 타서 이제는 진짜 서울로 직행하려고 했어요. 나가는 길에 자세히 보니, 펼침막에 "수물지역주민 열받았다, 한탄강댐 중단하라"고 써있더군요. 아하! 이곳은 수몰 예정 지역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폭포 물도 말랐던 거고요.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안타까웠어요. 수자원공사는 어떻게든 댐을 만들어야 이익을 내는 곳이라는 동언형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요. '댐에 미쳐 날뛰는'이라는 팻말을 보니 지역주민의 한탄이 느껴지더군요. 한탄강댐 건설로 주민들과 지역의 땅이 시름과 한숨으로 한탄을 하겠죠. 지금의 평화로운 환경이 물에 잠기면 다시 볼 수도 없게 되니까 저도 한숨이 나오더군요.
다들 피곤했는지, 말을 아끼며 졸기도 하면서 파주, 동두천, 의정부를 지나 수유로 돌아왔어요. 익숙한 도로를 달리는데, 배에서 신호가 오자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음식 이야기를 했지요. 그렇지만 정한 것 없이 길만 가다가 덕성여대를 지나자 역시 동언형이 "떡볶이나 먹을까?"해서, 모두가 "어, 좋아요"라고 응답했지요.
WBO 한일전 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즉석떡볶이를 4인분을 먹었어요. 더 이상 배고픈 사람 없이 골고루 적당히 먹었어요. 계란 세 개를 쪼개어 각자 나누어 먹으면서, '평화(平和)'라는 한자에는 쌀을 균등하게 나누어 입으로 먹으며, 밥으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만들자는 의미도 있음을 새삼 되새겼지요.
이렇게 평화 여행은 그 대장정을 훈훈하게 마쳤답니다. 함께 한 발걸음과 추억들의 좋은 기운으로 군생활도 유쾌하고 신명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다녀올께요. 안녕! ^^*
2009.03.12 11:1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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