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3.12 18:24수정 2009.03.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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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찬기운이 남아 있지만 어느새 봄이 성큼 찾아왔습니다. 양지바른 논길에는 일찍부터 푸릇푸릇한 싹들이 돋기 시작했고, 얼어붙었던 땅도 봄비에 촉촉히 젖어 그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너무나 보드라운 흙속에 뿌리를 내린 약쑥과 냉이도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점점 커가고 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위해 밭에 정성껏 뿌려둔 거름은 구수한 고향 냄새를 풍겨댑니다. 그렇게 봄을 맞은 들녘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늑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희 동네(인천 서구 공촌동)에 찾아온 봄은 그리 달갑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각종 막개발을 일삼고 있는 인천시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뒤 주경기장 및 선수촌 신축을, 지난 1월 22일 중앙정부로부터(기존 반대입장, 문학경기장 활용을 뒤엎었다) 승인을 받아낸 뒤부터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난데없는 대형개발사업이 인천 서구 연희동 일대에 확정되면서, 삽시간에 퍼진 그 소식에 동네는 너무나 어수선해졌습니다. 한 마을에서 살던 구의원이라는 이는 연초 마을 좌담회에 확정된 아시안게임 선수촌이 들어설 개발제한구역 위성사진을 들고 갑자기 얼굴을 디밀고, 곳곳에는 '인천시민의 염원으로 주경기장 및 선수촌 신축이 결정되었다' '환영한다'는 황당한 선전용 현수막이 나붙었습니다.
봄 왔지만 논물 대고 볍씨 뿌릴 이는 몇이나??
이 때문에 선수촌 개발예정지에 땅을 가지고 있거나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는 저희 집이나 친척, 마을 사람들은 기다리던 새봄이 와 농삿일을 준비해야 하지만 손을 쉽게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 십년 동안 개발제한구역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땅을 팔 생각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들게 하려고 조상님들이 물려준 땅을 외지인들에게 팔 때는 제 값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돈 되는 일에 훤한 도시 사람들이나 고매한 높은 나리님들이 좋아하는 그 잘난 재산권을 고향에서 땅을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먼 나라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살붙이 같은 땅마저 이제 헐값에 빼앗기고 정든 마을과 논, 밭이 또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동안 택지개발이다 도로 건설(경명로)이다 해서 강제수용과 철거로 옛집이 파괴되고 마을이 동강나고 논-밭이 파묻히고 냇갈과 숲, 산이 조각났는데 말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유명무실한 그린벨트 내 농경지까지 집어삼켜 그 자리에 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단지를 심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그렇듯이 인천시는 지역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선수촌 예정지를 확정하고 이번 달안에 공청회를 하고 5월부터 선수촌 착공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 봄은 봄 같지가 않습니다. 땅을 일구며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래저래 걱정거리로 고달픈 농사아비를 고추모가 애태워 더욱 그러합니다. 두더지를 피하려고 못자리 모판에 아버지가 뿌린 고추모가 변덕스런 날씨와 부주의로 잘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봄은 왔지만 그 봄 때문에 소중한 땅과 마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아 맘이 편치 않습니다. 더 이상 손수 농사 지은 쌀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살기 위해 순박한 농사아비는 하우스 한 편에 씨고구마를 묻습니다. 작은 싹이 돋기 시작한 씨고구마를 좀 더 키워 윗밭에 옮겨 심으려고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3.12 18:2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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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붙이 같은 땅마저 빼앗길 위기 처한 농사아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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