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1염석주기념사업회 로고(좌)와 노익장을 은빛미디어 로고 (우)
라영수
염석주는 수원 율전리 출신으로 안산 막고지(현재 사동)에 근거지를 두고 국내사업으로는 수원의 신간회를 이끌며 당시 극심했던 소작쟁의를 조정하였고 광주학생운동에 이르는 전국학생운동의 진원지였던 수원학생운동의 후견자였다.
샘골에 온 앳된 처녀 최용신의 강습소가 민족교양학교가 되도록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조성하여 후일 민족의 혼 "상록수"로 피어 오르게 한 가슴이 뜨거운 우리의 큰 어른이었다.
국외사업으로는, 여운형 동지와 협의를 거쳐 만주 독립군제2지대의 후방기지를 현재 흑룡강성 오상시 충하진에 건설한다. "추공농장"은 당시 운영진들만의 암호로, 이 미작농장은 80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미곡생산기지로서 독립군의 식량공급기지이자 신병보충 기지로서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전력을 유지시키는 든든한 보루였다.
만석꾼의 자식으로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자존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쳤으며 1944년 해방을 한해 앞두고 그의 생명까지 마지막으로 바친 민족의 별은, 반역자의 역모로 왜경에 의하여 순국하게 된다. 조국과 민족을 온몸을 불태운 염석주는 반역자들에 의하여 그의 행적이 훼손되고 매도되었을 뿐 아니라 어리석은 후세들에 의하여 잊혀지고 만 것이다.
이를 밝혀내기 위하여 안산의 "은빛둥지" 노인들은 "은빛미디어"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조직하고 2006년부터 장장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염석주의 행적을 재조명하고 만주벌판을 헤매며 "추공농장"의 실체를 밝혀내고, 일련의 과정을 1시간짜리 다큐멘타리로 제작하여 "대지의 진혼곡" 이라는 이름으로 각 TV방송사에 배포하여 방영을 함으로서 구천을 떠도는 염석주 선생의 혼을 진혼한 바 있으며,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안산시는 물론 염석주를 기리는 모든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염석주기념사럽회가 지난 2008년에 결성되었고, 드디어 염석주 선생을 독립운동가로서 당연한 자리매김을 하고자 국가보훈처에 오는 3월 23일에 신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신청에는 각계각층의 시민 1만명이 연명으로 서명하였으며, 만주항일무장투쟁독립운동사의 중심연구기관인 연변대학 "민족연구소"의 "연변대논총"에 실린 고승룡 박사의 노작 "評術韓國獨立運動家廉錫柱的反日鬪爭" 이 자료로 첨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