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은 잔혹하게 진화한다

[서평] 마이클 코넬리의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시인>

등록 2009.03.16 10:45수정 2009.03.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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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장의사처럼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상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슬픈 표정으로 연민의 감정을 표현하고, 혼자 있을 때는 노련한 장인이 된다. 나는 죽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죽음을 다루는 비결이라고 옛날부터 생각했다. 그것이 법칙이다. 죽음의 숨결이 얼굴에 닿을 만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게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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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

ⓒ 랜덤하우스

잭 매커보이는 <로키 마운티 뉴스>의 죽음 담당 기자다. 그의 주장대로 죽음은 그의 생업의 기반이다. 그는 죽음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에 밀착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사는 게 어디 사람의 마음대로 되던가. 죽음이 가까이 오지 않게 경계하면서 살았지만,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죽음은 그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그의 삶을 뒤바꿔 버렸다.

 

시작은 그의 쌍둥이 형 션의 자살이었다. 유능한 경찰인 형이 느닷없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형의 동료들이 전해준 것이다. 형은 여대생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여대생은 몸이 두 동강이 난 상태로 발견되었고, 형은 그 사건에 빠져 있었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나타나지 않았고, 절망상태였던 형이 급기야 권총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잭은 형이 죽은 뒤, 경찰관의 자살과 관련한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잭은 형의 죽음에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형은 자살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 는 가설을 세우게 되는 잭.

 

잭은 자신의 가설을 형의 파트너를 통해서 확인한다. 누군가가 형을 살해한 뒤 교묘하게 자살로 위장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형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잭은 경찰관들의 자살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사건들을 추려내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잭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건의 경찰 자살 사건이 사실은 자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범인에 의해 일어난 연쇄살인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 것은 자살한 경찰들이 남긴 유서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에드가 앨렌 포의 시구를 유서로 남긴 것이다.

 

잭의 의문에서 출발한 이 사건은 FBI가 전담하게 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던진 잭은 빠른 속도로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 FBI 요원들과 결합해서 취재를 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범인을 찾아낼 것이며, 어떤 식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추리소설의 미덕은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잃지 않고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코넬리는 아주 빼어난 감각을 지녔다. 600페이지가 넘는 제법 긴 분량이지만 내용 전개는 아주 빠르면서 박진감이 넘쳐 지루하지 않다. 거기에 곁들여지는 로맨스는 이야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로맨스가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건의 전개와 맞닿아 있는 로맨스이기에 여운을 남기면서 그들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은 추리소설 독자들의 허를 명쾌하게 찔러줄 반전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다. 반전 없는 추리소설은 없겠지만, 독자들에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반전을 들이밀어야 탁월한 추리소설이 된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특히 <시인>은 소아성애자와 아동성폭행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에 대한 위험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소아성애자들의 경우 대상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폭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와 합의(?) 성관계를 갖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은 피해자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이어져 후유증을 길게 앓게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범인 역시 소아성애자의 희생자였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뒤에는 그로 인해 가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꼭 소설에만 등장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 같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들이 놀랍도록 빠르게 진화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인행위가 한 명에 그치는 경우는 이제는 거의 보기 드물게 되었고, 연쇄살인범의 살해행위 역시 날이 갈수록 지능화하면서 잔혹해진다.

 

추리소설의 잔혹함에 길들여진 독자들이 좀 더 강도가 센 범죄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설이 현실의 반영인 것을 감안한다면 현실의 범죄가 그만큼 잔혹해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멀리 미국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렇지 않은가. 얼마 전에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연쇄살인범 강아무개 사건을 보면 그런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 강아무개는 새로운 유형의 연쇄살인범으로 분류되고 있지 않은가.

2009.03.16 10:45ⓒ 2009 OhmyNews

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추리소설 #마이클 코넬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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