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사 1> 표지
미지북스
1990년대 초 대학가에는 '학회'라는 것이 있었다. 이름이야 말 그대로 '배우는 모임'이지만, 그 내용이 혁명의 역사나 각종 변혁이론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사실상 대학 신입생들의 '의식'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모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학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괴이한 조직 하나가 1992년에 등장했으니, 이름하여 '가요사 학회'였다. 어떤 대학 91학번 이아무개가 92학번 신입생 둘을 꼬드겨 만든 '가요사 학회'는 당시 신간으로 나온 <한국 가요사>(박찬호 지음, 안동림 옮김, 현암사)를 교재로 채택하며 기세 좋게 출범했다. 나름 신선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한 학기 만에 요절하고 말았지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09년 3월, 후배 둘과 함께 학회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아무개는, 그 옛날 교재로 채택했던 <한국 가요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 당년의 <한국 가요사>가 <한국 가요사 1>(박찬호 지음, 안동림 옮김, 미지북스)로, 그에 이어지는 새로운 후속편이 <한국 가요사 2>(박찬호 지음, 이준희 편집, 미지북스)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아무개는 곧 이준희, 이 글을 쓰는 나이기도 하다.
<한국 가요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책에 관련된 당사자가 책과 관련된 기사를 쓰자니 참으로 어색하다. 게다가 지은이도 아닌 것이 옮긴이도 아닌 것이, 일은 또 좀 하였으되 '편집'이란 명목이니, 그도 참으로 애매하다. 객관적으로 책을 소개할 처지도 아니요, 주관적으로 책을 자랑할 처지도 아니다. 그렇지만 새로 다듬어져 나온 <한국 가요사>에는 오랜 세월 속에 얽힌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 풀어 보고 싶은 이야깃거리들이 있다.
<한국 가요사>는 당초 1987년에 일본에서 일본어로 먼저 출간되었다.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한국 대중이 향유한 다양한 노래를 조목조목 실증적으로 정리한 내용은, 당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옮긴이 안동림 선생이 도쿄 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2년에 한국어로도 출간되었고, 이후 <한국 가요사>는 한국의 고전 대중음악을 연구하는, 또는 애호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필수적인 자료가 되었다. 그만큼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책이었기에 '가요사 학회'에서도 교재로 채택했던 것이다.
지은이 박찬호의 굴곡진 인생과 만나 완성된 작품그런데, '박찬호 지음'이라 되어 있는 이 책이 일본에서 일본어로 먼저 나왔다 하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인이 쓴 것도 아니고 분명한 한국인의 작품이면서 일본어로 되어 있다는 데에는, 간단치 않은 곡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가요사>의 진정한 가치는 사실 바로 이 문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은이 박찬호 선생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2세이다. 나고야에서 태어났고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에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처음 발을 디뎌 보았고, 한국어는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썩 잘 구사하지 못했다. 그러했기에 <한국 가요사>를 처음에는 일본어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진정한 가치' 운운한 것이 좀 무색할 수도 있다. 모국의 노래를 좋아한 재일교포가 책 하나 낼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은이의 개인사를 조금 더 알고 보면, 사연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모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는 해도,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변함없이 많은 고통이 있었다. 어릴 적 동네 일본인 친구들에게 들었던 욕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서도 일본인 동기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 없는 데에서 느낀 좌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4·19혁명 이후 재일교포 사회에 고양된 민족의식에 공감해 다양한 조직, 단체에서 열정적으로 민족운동에 헌신했던 것도 잠시, 모국의 독재 권력은 재일교포 청년의 열정에 빨간 색을 칠해 버렸고, 오랫동안 그가 모국 땅을 밟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재일교포가 썼기에 더욱 의미 있는 <한국 가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