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58) 학수고대

[우리 말에 마음쓰기 581] '학수고대'와 '목빠지게 기다림'

등록 2009.03.16 12:29수정 2009.03.1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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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학수고대 1

.. 그러나 두려운 것은 너를 무에서 받아들여 내 뱃속에 잡아두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받아들여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지만, 아직 한 번도 나는 너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나는 항상,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꺼리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  《오리아나 팔라치/박동옥 옮김-사과를 따지 않은 이브》(새벽,1978) 23쪽


"두려운 것은"은 "두려운 까닭은"으로 손보고, '무(無)'는 '아무것 없이'로 손봅니다. "마음의 자세(姿勢)"는 '마음'이나 '매무새'로 다듬습니다. '항상(恒常)'은 '늘'로 손질하고, "태어나는 것을"은 "태어나기를"로 손질하며, "의문(疑問)을 가지고 있다"는 "궁금해 하고 있다"로 손질합니다.

 ┌ 학수고대(鶴首苦待) :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빼고 애타게 기다림
 │   - 남편의 출세를 학수고대하다 / 선수단의 승전보를 학수고대했다 /
 │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편지가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
 ├ 학수고대하고 있겠지만
 │→ 목빠지게 기다리겠지만
 │→ 애타게 기다리겠지만
 │→ 몹시 기다리겠지만
 │→ 더없이 기다리겠지만
 └ …

'학수'로 '고대'한다는 네 글자 한자말 '학수고대'입니다. '鶴首'란 "학 목아지"이고, '苦待'는 "몹시 기다림"입니다. 이리하여, "학처럼 목아지를 길게 빼고 몹시 기다린다"는 '학수고대'가 되는데, 이 낱말을 한글로 적거나 한자를 밝혀 주거나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 남편의 출세를 학수고대하다 → 남편이 이름 날리기를 무척 바라다
 ├ 선수단의 승전보를 학수고대했다 → 선수단한테서 이겼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다
 ├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편지가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 편지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니 '목만 길게 빠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빠지게 기다린다'고 이야기합니다. 몹시 기다리기에, 아주 기다리기에, 매우 기다리기에, 참말 기다리기에, 애가 타고 속이 타고 마음이 바쁩니다.


ㄴ. 학수고대 2

.. 어머니는 매일 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에 우리가 그 게임을 할 만큼 나이가 드는 그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  《주디 카라시크(글),폴 카라시크(그림)/권경희(옮김)-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 68쪽


'매일(每日)'은 '날마다'로 고치고, "저녁 식사(食事)"는 '저녁밥'이나 '저녁'으로 고치며, '게임(game)'은 '놀이'로 고쳐 줍니다.

 ┌ 그날만을 학수고대하고
 │
 │→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 그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 그날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 그날만을 기다리고
 └ …

어머니는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아이들이 나이가 어려서 함께 하기는 어렵답니다. 몇 해 더 기다려야 할 테지요. 어쩌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꿈 하나 품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꽤 오래 기다리셨을 테니, 하루를 꼽고 이틀을 꼽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 테군요. '손꼽으며' 기다리는 나날입니다. '눈 빠지게' 바라면서 기다리는 하루하루입니다.

ㄷ. 학수고대 3

.. 요즘 박씨는 보훈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학수고대한다. 그의 마음엔 기대와 두려움이 엇갈린다 ..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삼인,2008) 116쪽

'결과(結果)'는 그대로 두어도 되는데,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로 손볼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엔"은 "박씨 마음엔"으로 다듬고, '기대(期待)'는 '설레임'으로 다듬어 줍니다.

 ┌ 학수고대한다
 │
 │→ 애타게 기다린다
 │→ 가슴 졸이며 기다린다
 │→ 가슴 졸이고 있다
 │→ 조마조마하다
 │→ 두근거린다
 └ …

네 글자 한자말 '학수고대'를 쓰는 분들은, 사람들이 이 낱말을 어떻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할는지 궁금합니다. 잘 알아듣겠거니 생각할는지, 알아듣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널리 쓸 만하다고 여기면서 이 낱말을 쓰는지, 널리 쓸 만하지 않더라도 자기 지식에 따라서 쓰는 낱말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말뜻 그대로 손쉽게 "애타게 기다린다"고 적으면 됩니다. "목을 뽑으며 기다린다"고 적어도 됩니다. 이렇게 적을 때에는 아무런 말썽거리가 없습니다. 이런 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학수고대'라 적어 놓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고, 느낌으로는 알아들어도 꼼꼼하게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모르는 채 이냥저냥 쓰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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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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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사자성어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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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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