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진화론적 관점에서 지적설계론을 비판하고 있는 동덕여대 장대익 교수(과학철학)의 <다윈의 식탁>(김영사 2008)
김영사
동덕여대 장대익 교수(과학철학)는 <다윈의 식탁>이라는 책을 통해 지적설계론자들이 창조론자들과 유사하게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 마치 진짜 논쟁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지적설계론자들은 공개적으로 진화론을 오해하거나 오용해 놓고는 생물학자들이 마지못해 몇 마디 대꾸하면 마치 논쟁이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진화론 내부의 진짜 논쟁들을 부풀려 마치 진화론이 좌초 직전에 있는 것처럼 꾸며대고 마치 지적설계론만이 올바른 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또 지적설계 운동에는 과학이 없으며 논문 심사 시스템도 없고 혹시라도 학회와 학술지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들 내부에서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프로그램과 성과물이 있을 리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리고 지적설계론의 고객들은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인이거나 과학의 내용과 논리에 익숙하지 않는 대중들이라는 것이다.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은 지난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도시인 도버에서 한판 대결을 벌였다. 이 재판은 1920년대 진화론이 창조론과 대결을 벌인 이른바 '원숭이 재판'에 비견될 만큼 미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재판의 주재한 사람은 존 존스 판사로 창조론을 옹호하는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었다. 재판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7명의 과학자들과 지적설계론을 옹호하는 8명의 지적설계론 학자들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부시가 임명한 존스 판사는 2005년 12월 지적설계론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 ▲지적설계론은 종교적 의도로 만들어졌다. ▲지적설계론을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위헌이다 ▲진화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가설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종교에 바탕을 둔 검증 불가능한 가설을 과학시간에 가르치거나 검증된 가설을 왜곡해서도 안 된다.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의 재탕이지 과학적 가설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천주교는 수용, 불교는 무신론적 입장으로 특별한 의견없어이처럼 진화론 문제를 두고 개신교가 시끌벅적하게 대응하는 것에 비하면 천주교나 불교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천주교는 이미 우주창조와 생물의 진화에 신적 섭리가 개입했다는 것을 전제로 진화론(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천주교도 처음에는 진화론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인간탄생>이라는 교서에서 진화론은 '몰염치하고 분별력이 없으며 자연과학계에서도 증명이 되지 않은데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겁게 이를 수용하는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교황청 과학원의 설득에 따라 진화론과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는지 여부를 신중히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마침내 1996년 요한 바오로2세는 '계시와 진화'라는 메시지를 통해 "종교교육과 진화론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고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중요한 학설"이며 "이미 있던 존재(유인원)에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했으며,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언젠가는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같은 천주교의 유신론적 진화론은 테이야르 디 샤르뎅(1881~1955)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샤르뎅은 예수회 신부로 북경원인 발굴에도 참여하고 고고학 자료를 얻기 위해 몽골, 자바, 북인도 등을 여행했다. 그는 태초에 원물질에서 단세포에서 식물, 동물, 인간이 되었다는 정방향 진화를 통해 종국적으로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마지막 지점(오메가포인트)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샤르뎅은 물질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오메가포인트에 도달하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와 만나면서 신의 구원사역이 완성을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인간현상(1955)>이라는 책을 통해 잘 나타나있다. <인간현상>은 한때 로마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오르고 샤르뎅 자신도 교회에서 축출되었으나 그가 속한 예수회의 적극적인 변호로 유신론적 진화론은 천주교(가톨릭)의 정식교리로 채택되었다.
불교는 진화론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다. 단지 창조론이 없다는 점에서는 진화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명쾌한 것은 아니다. 붓다시대 인도사회는 브라만이라는 절대적 존재(신)가 모든 만물의 근원일 뿐 아니라 각 개별존재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브라만교가 유행하고 있었다.
붓다는 이에 대해 변화하는 세계 뒤에 무언가를 창조하고 불변하는 영원한 실재는 없다고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만 연기에 의해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거짓 실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근원이나 원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어떻게 인간의 해방과 행복이 가능한가라는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불교가 창조론을 부정한다고 해서 확실한 진화론적 교설이나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 자체가 육도윤회(천인, 인간, 축생, 아수라, 아귀, 지옥)의 고(苦)로부터 해탈이라는 순환론적 생명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통 발생적 발달과 유전에 근거한 진화론과는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인간의 의지행위가 업(業)으로 전이된다는 관점에서 유전자적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하지만 이 역시 종교적 교리이지 과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창조론이나 진화론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론에 대한 각 종교의 차이는 신자들의 진화론 수용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10일 EBS가 진화론 특집을 방영하면서 코리아리서치(전국 성인남녀 500명)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신자들이 83%로 진화론을 믿는 정도가 높았다. 불교신자의 경우는 68%로 평균인 62.2%를 상회했고 개신교는 39.6%에 불과했다. 이외에 종교가 없는 사람은 69.7%였다.
또 EBS는 인구의 99%가 무슬림인 터키의 경우는 2006년 조사결과 인구의 75%가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6년 자료). 터키가 이슬람국가 중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근대적인 교육체계를 도입한 것을 감안하면 이슬람근본주의가 강한 국가들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함석헌 선생, 유신론과 진화론, 사회정치사상을 통합한 역사철학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