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출근길에 염리초등학교 뒷길에서 만난 보도블럭 틈사이의 어린 단풍나무
한명라
학원에 근무하고 있기에 일반 직장과는 달리 오전 늦으막한 시간에 15분 거리를 걸어서 출근하는 저는, 도보로 출근하는 여러 길 중에서 마포 염리초등학교 옆을 걸어가는 출근길을 좋아합니다.
봄에는 초등학교 앞에 길게 선 벚나무의 벚꽃이 아름답고, 여름이면 학교 옆 담가에 나란히 서 있는 일곱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늘여뜨린 서늘한 그늘이 좋고, 가을이면 수북히 쌓인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걷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그 길이 참 좋습니다.
2008년 8월, 그날도 은행나무 그늘을 지나 학교 옆담을 끼고 뒷길로 막 돌아섰을 때 였습니다. 염리초등학교 담과 보도블럭 사이 틈에 이름모를 잡초와 함께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가 몇포기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곳에서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웠는지 어른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단풍나무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짓밟혀서인지, 서너개의 이파리가 찢겨진 모양새였지만, 아무튼 단풍나무는 단풍나무였습니다.
나무라고 부르기에는 웬지 망설여지는 그 단풍나무들을 발견한 순간,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단풍나무를 뽑았습니다. 한 포기 한 포기 뽑다보니 네 포기가 되었습니다.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얻은 양 단풍나무 네 포기를 들고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빈 종이컵을 찾아 들었습니다. 산세베리아가 심겨진 화분 귀퉁이에서 흙을 퍼 종이컵에 담고 단풍나무를 심은 후 촉촉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학원의 선생님 한분이 묻습니다.
"어머 단풍나무 아니예요? 어디서 났어요? 뭐하시게요?" "오늘 출근하면서 길에서 뽑아왔어요. 그대로두면 잡초처럼 뽑혀져 버려지거나 사람 발길에 밟혀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 같아서요. 내가 잡초가 아닌 온전한 나무로 키워 보려구요."지금 생각해보면 보도블럭 틈에서 단풍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어쩌면 저는 지난 가을여행에서 보았던 백양사의 오래된 수령의 빛깔 고운 단풍나무와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 올렸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