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헤이리 송년회'자리에서 스타일리쉬한 박돈서교수님
이안수
저는 헤이리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발상이 거침없이 종횡으로 누비는 경계 없는 마을이면서도 '어른이 존경받고 어른의 지혜가 최고로 숭상되는 마을'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을 분들과 함께 헤이리 송년회를 준비하면서 '이사장님 인사'나 '공로자 포상'같은 의례적인 식순으로 일관하는 대신 '헤이리 어르신의 덕담 한마디' 코너를 건의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박 교수님은 현재 헤이리 거주자들 중에서도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시지만 나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젊게 사고하시는 분이며 헤이리 주민들 사이에서 어느 젊은이보다도 인기 있는 분입니다.
박 교수님께서는 제가 아프리카로 가기 전부터 소엽 선생님과 더불어 식사하는 자리를 원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돌아오자 바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셋은 박 교수님의 초대로 헤이리 인근의 '묵집'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묵수제비와 묵밥 등 모두 유기농 묵으로만 상을 차린다는 그 집의 메뉴하나하나를 설명을 곁들여서 권했습니다. 박 교수님과 함께하는 자리는 맛있고 건강한 그 먹거리 메뉴보다도 해학에 버무린 박 교수님의 말씀들이 더욱 귀하고 맛있습니다.
이날 저녁에도 박 교수님의 철학이 담긴 재담에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옛날에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귀한 다섯 가지를 오복이라 했지요. 첫째는 '수'로서 천명을 누리는 장수이고 두 번째는 '부'로서 적당히 풍요로운 재력이며, 세 번째는 '강녕'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며 네 번째는 '유호덕'으로 덕을 쌓는 일이며 다섯 번째는 '고종명'으로 천수를 누리고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을 꼽았습니다. 삼경인 '서경' 1편의 '홍범'에 나오는 말이지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 오복의 의미가 약간 바뀌었답니다. 그 첫째는 '건'으로 건강이며 둘째는 '처'로 같이 해로할 수 있는 배우자, 셋째는 '재'로서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친구들에게 저녁 한 끼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 넷째는 '사'로서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 다섯째는 '붕'으로서 이심전심할 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사람을 위해 저녁을 살 수 있으니 저는 지금 다섯 가지 복 중에서 세 번째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박 교수님은 저녁을 사고도 이렇게 본인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