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욱 시인한테 박경리 선생은 '어머니'다"

시집 <평사리 봄밤> 펴내... 시 "평사리에서 쓰는 반성문" 등 담아

등록 2009.03.24 09:19수정 2009.03.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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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영욱 시인의 시집 <평사리 봄밤> 표지.

최영욱 시인의 시집 <평사리 봄밤> 표지. ⓒ 윤성효

최영욱 시인의 시집 <평사리 봄밤> 표지. ⓒ 윤성효

박경리(1926~2008) 선생과 어머니-아들 사이일 정도로 두텁게 교분을 쌓았던 최영욱(52, 하동 평사리문학관 관장) 시인이 시집 <평사리 봄밤>(고요아침 간)을 펴냈다.

 

자신한테는 어머니요 문학의 스승이었던 박경리 선생과 관련한 시편들이 담겨 있다. 봄꽃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평사리와 섬진강의 풍경을 시에 담아 옮겨 놓았다.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사람이 아무리 잘 나도 지리산에 박혀 있는 돌 하나 못하다"고 했다. 최영욱 시인은 시 "평사리에서 쓰는 반성문"이란 시에서 '어머니격'이었던 선생이 했던 말을 따와 "그 말씀 대못되어 가슴 쑤시는 아침"이라고 했다.

 

하동 악양면 무딤이들 보리밭도 최 시인한테는 가슴 시린 대상이다. 시 "사향가"에서 그는 "평사리 참판댁 문풍지 사이로/밤새 궁시렁대던 늙은 바람이/무딤이들 보리밭으로 마실 나가면/주갑이 아재의 서런 가락은/보리밭 골골이 아려 허치고(이하 생략)"라고 노래했다. 봄에 무딤이들에는 자운영이 흐드러지게 핀다.

 

시인은 평사리에서 봄밤을 지새며 어떤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었을까? 지리산 빨치산(파르티잔) 이야기도 들었던 모양이다. 무더기로 피는 꽃 같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평사리. 이야기를 다 해주고 나니 시인은 쓸쓸했던 모양이다.

 

"구례 지나 지리산이 뻗어내린 길 위를 파르티잔의 이야기를 들을 들으며 강을 따라 걷다보면 평사리 있다 …//봄이면 평사리엔 꽃들 피는데/그것도 무더기로 피워내는데//서울의 삼십대 노동자 부부에게 한 소쿠리…//햇봄 묵은 정 다 퍼주고선/신이 게으름 피운다는 윤이월 봄밤에/평사리가 참 쓸쓸하다"(시 "평사리 봄밤" 일부).

 

또 시인은 시 "보급투쟁"에서 "살기 위해 뛰는 자에겐 총알도 비껴갔다는 빨치산들도 덮어주고 먹여주던 산에 추위에 눈 내리면 그 한 입 한 입 건사하기도 힘들었다"고 소개한 뒤 "지리산에서 넘어오는 바람에서도 가쁜 숨소리가 묻어 있다/단내가 난다"고 했다.

 

지금 팔십리 하동포구는 어떨까. 하동포구에는 "좀 더디 가도/경적 한번 욕설 한 뭉텅이/날아오지 않는 길이 있다"고, "애틋한 몸짓으로 피워내는 꽃떼들 있어/사람들을 아름답고 순하게 만드는 길이 있다"고, "비워서 왔다가 채워서 가는 그런 넉넉한 길이" 아직 하동에 있다고 그는 시 "꿈꾸는 하동포구"에서 소개했다.

 

a  하동 악양 무딤이들에는 봄이면 자운영이 무성하다.

하동 악양 무딤이들에는 봄이면 자운영이 무성하다. ⓒ 조태용

하동 악양 무딤이들에는 봄이면 자운영이 무성하다. ⓒ 조태용

 

<평사리 봄밤>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평사리의 모든 시공간들을 담았고, 2부에서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성찰했으며, 3부에서는 시인 나름대로의 소박한 깨우침과 치유의 길을 찾았다. 4부에서는 박경리 선생에 얽힌 담화들이 담겨 있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해설에서 "지리산과 평사리, 그리고 섬진강은 그의 시 소재라기보다는 시와 삶이 함께 어울린 존재 형성의 근원이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풍광으로 그의 내부에 들어와 있고, 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가 그 풍광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정일근 시인은 최 시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최형욱 형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시인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악양을 만들었듯 악양이 그의 시를 만들었다. 시인은 그곳에서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숨소리와 섬진강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고.

 

시인은 '서시'에서 스스로 '나쁜 놈'이라고 했다. "나는 늘 나쁜 놈이었다//사람에게도 그랬고/자연에게도 그랬다//받은 상처보다/입힌 상처가 훨씬/많기 때문이다//나는 늘 나쁜 높이었다"고.

 

최형욱 시인은 하동에서 태어나 2001년 <제3의문학>으로 등단했고, 토지문학제 추진위원장과 하동평사리문학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협 하동지부장 등을 지냈다.

#최영욱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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