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일제고사라고 하는 진단평가가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임실의 기적' 후폭풍이 채 가시지 않은 터라 학교에서는 여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교감선생님이 어제 교육청 진단평가 관련 회의에 다녀와서 연수물과 내용을 전해주십니다. 교육청에서 모든 교사가 이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직접 다 읽어주셨다고 합니다. 교감선생님도 중요한 내용은 직접 읽어주십니다. 다 듣고 나서 6학년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표에 점심시간이 40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원칙적으로 시간을 준수하여 운영"이라고 진한 글씨에 밑줄까지 쫙 쳐져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 1000명이 넘고 병설유치원까지 있어 급식시간이 11시부터 12시 40분까지 배정되어 있습니다. 시험 시간에 맞추려면 아이들이 채 밥을 다 먹기도 어려운 시간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아이들이 밥은 먹고 시험을 봐야 하니까 시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교감선생님은 시간을 꼭 지키라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교육청에 물어보신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는 점심 시간도 교육활동의 연장이라며 중요하게 봅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반찬을 골고루 받는지, 제대로 먹었는지, 혹 뛰어가는 아이 때문에 부딪치지는 않는지 보느라 점심시간이 수업시간보다 힘이 듭니다. 그런데 시험 보는 날 우리 아이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거나 급하게 먹다 체하게 생겼습니다. 퇴근하면서 알아보니 다른 지역도 다 똑같은 일정표가 나갔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정표를 짠 것일까요?
교육청, 전에는 점심시간 충분히 확보라더니...
먼저 점심시간을 40분으로 잡은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여기에 시험시작 3분 전에 모두 자리에 앉혀 시험 준비하라니 실제로는 37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통 학교에서 점심시간은 50분에서 1시간 정도입니다. 그래야 밥 먹고 소화시키고 이도 닦고 다음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 노는 아이들도 있구요.
점심 시간이 짧으면 아이들이 급하게 먹다 체할 수도 있고, 조는 아이도 많습니다. 그나마 밥 먹는 속도가 느려 급식소에서 시간을 다 보내는 아이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교육청에서 점심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라는 공문도 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전국 모든 초등학교가 점심시간을 40분으로 맞춰야 한다고 하네요. 시험시간이 40분씩이라 점심시간도 그냥 맞춘 것일까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둘째, 학교 현장의 급식 실태를 반영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전국이 모두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대체로 식당에서 모든 학년(병설유치원까지 포함)이 순차적으로 먹거나, 교실로 배달된 음식을 배식하여 먹거나 합니다. 식당에서 먹을 때는 보통 1-3학년이 3교시 끝나고 먹고 4-6학년은 4교시 끝나고 10여분 시간을 정해 순차적으로 갑니다.
11시 30분 1학년
11시 40분 2학년
11시 50분 3학년
12시 20분 4학년
12시 30분 5학년
12시 40분 6학년
물론 31일엔 12시 10분부터 점심시간이니 당겨도 6학년은 12시 30분에 먹어야 합니다. 그럼 불과 20분 아니 17분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날 급식소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어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게 생겼습니다. 평상시에 급식시간 한 번 조절하려 해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시간 자체를 줄이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교실에서 배식하는 학급도 밥 먹는 건 조금 여유가 있지만 급식정리를 해야 할 당번은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5교시 시험이 시작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시험을 제대로 볼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문제 120개 풀고, 허둥지둥 밥 먹고, 영어 듣고...
셋째, 초등학교는 점심이 40분이고 중등은 60분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 차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밥을 더 오래 먹을까요? 게다가 아이들이 4교시까지 시간마다 30개씩 모두 120개의 문제를 풀고 난 뒤라 다른 날보다 에너지 소모도 많고 긴장도 될 것입니다. 다른 날보다 더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나 다음 시험을 위해서나 좋지 않을까요?
서울의 경우 원칙상 시간을 지키되 학교 사정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시문을 보니 영어문제를 방송으로 들을지 CD로 할 것인지만 나와 있는 걸 보니 아이들의 점심이나 학교 급식 상황은 염두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시험감독강화, 관리부실 처벌, 당일 체험학습 무조건 불가 등 압박이 세지니 어느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애들 밥 먹이자고 시간을 달리할 배짱을 부릴 수 있을까요? 달리 "일제고사"가 아닙니다.
점심시간배당 말고도 문제는 많습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는 평가문항이 20-25개씩입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보는 것만 30문제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최대한의 실력 발휘를 위해서는 이런 부분도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5교시 시험은 영어라 긴장되고 듣기 문제는 딱 한 번씩 들려주랍니다.
얼마 전 40분간 1분 30초만에 1문제씩 푸는 것은 영어의 특성이나 인지활동구조상 무리라는 분석 기사가 있었는데 이런 것도 전혀 반영이 안 되었나 봅니다. 또 교차감독이나 학부모 보조감독을 하라는 걸 보면 교사는 못 믿고 시험관리와 채점에만 정신을 쏟나 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더더욱 눈에 보일 리가 없지요. 가뜩이나 급식당번, 교통지도, 자료관리 등으로 불려 다니던 초등 학부모들에게 이젠 이런 짐까지 지우려고 합니다.
개별학생의 교과별 부진한 부분을 파악하고, 보충 지도함으로써 시도 및 학교의 학습부진학생 최소화 지원(2009년 교과학습 진단평가 목적)
아이들 밥은 제대로 먹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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