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에릭 메이슬/2008/북노마드북노마드
▲ 책표지 에릭 메이슬/2008/북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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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메이슬은 예술가들을 위한 카운셀러이다. 작가의 저서로는 <예술가의 영혼을 위한 코치> <두려움 없는 창작> <크리에티비티 북> <공연에 대한 불안> <반고흐 블루스> 등등... 그는 예술가들을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저가가 추천하는 파리 여행법은 '창작여행'이다. 이 책의 부제, '창조적 영혼을 위한 파리 감성 여행'을 본래의 책 내용에 가깝게 바꾼다면 '한 달 150만원으로 6개월 동안 파리에서 소설 한편 쓰기'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 가고 싶은데 핑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야 할 이유를 제공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파리'라는 당근을 던져 작업으로 유도한다. 글을 쓰고 싶다면 일단 거금과 단단한 각오로 파리로 떠나라고, 파리에 가고 싶다면 거기에 머물며 예술가로 살아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제안은 '걱정 말고 무조건 써라. 가능하다면 무조건 떠나라' 이다. 저자는 무조건 쓰라는 말로 책을 시작해 무조건 떠나라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 한다. '걱정 말고 무조건 써라'라는 말에서 일단 중요한 것은 '무조건 써라'라는 말이 아니라 그 앞의 '걱정 말고'이다.
걸작은 잊어라!
글을 쓴다는 것은 달콤하지 않다. 어쩌면 인간이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쓸 때,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부닥친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부서지는 경험은 작가에게 절망 그 자체이다. 이럴 경우 파리에서라면 조금은 덜 비참할 수 있다. 파리는 산책하기 좋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플라뇌르(flaneur)는 산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보들레르는 "예술가는 산책을 하며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는 방관자"라고 했다. 파리는 20개 구가 바람개비 모양으로 펼쳐진 지리적으로 작은 도시로, 안쪽에는 루브르, 노트르담, 오르세, 에펠탑 같은 관광지가 있고, 밖으로는 서쪽에는 불로뉴 숲, 동쪽에는 벵센 숲, 북쪽에는 몽마르뜨, 남쪽에는 몽수리 공원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새로운 동네로 가서 산책을 해도 좋고, 안쪽 동네를 한가롭게 거닐다가 작은 카페나 성당에 들어가 쉬어도 좋으며, 그저 광장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소재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방탕한 밤을 보내고 아침에 양파스프를 먹으며 해장했다는 카페에 가 본들 당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영감을 주겠는가? (그 곳은 음식 값도 두 배는 비싸고, 사람들도 두 배는 많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글을 쓰는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아침에 리차-르누아 대로의 벼룩시장으로 과일을 사러 가보자. 탐스런 과일을 생각보다 매우 싼값에 팔고 있다. 그중 싼 과일들은 보기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다. 과일을 주걱으로 퍼담으며 작가는 생각한다.
'글 쓰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 모두들 나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보기만 해도 먹고 싶은 글을 요구하지만, 글이란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 하찮은 글을 받아들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쓸 수 없다. 좋은 글은 다듬어지면서 나올 수도 있지만,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면 다듬을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
작가는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을 자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은 달라 보인다고 한다. "걸작은 잊어라. 그냥 쓸 준비만 해라. 그리고 나쁜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만 하면 된다. 과일 상자 안에는 설익은 과일도 있고, 썩어 문드러진 과일도 있고, 먹음직스런 과일도 있다. 그냥 한 주걱 퍼내라. 당신이라는 캐릭터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라고.
에릭 메이슬은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잔뜩 바람을 넣고 나서는 파리 관광을 위한 작은 팁이나 정보도 잊지 않는다. 첫 번째 팁은 오르세 미술관 관람법.
오르세 미술관을 가려거든 아침 일찍 가야 한다. 오후에는 관광객이 몰려오므로 조용히 그림을 보기 어렵고, 그림을 보아도 깊이 느끼기 어렵다. 가급적 문을 여는 9시 15분에 가서 곧장 고호와 고갱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조용한 미술관에서 고호와 고갱을 만나는 특별한 체험이야말로 파리에서 감성을 충만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고갱과 단 둘이 있다 보면, 타이티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매독으로 죽었다는 사생활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고갱의 순수한 영혼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어를 못한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다. 몇 마디만 알면 그냥 글을 쓰며 머물기에 충분하다. 윈 꼼 사 (un comme sa) 이거 하나 주세요 / 콤비엥?(combien?) 얼마예요? / 주 쉬 데솔레 (ju suis desolee) 죄송합니다 / 주 느 파홀레 파 프랑세(je ne parle pas francais) 전 프랑스어를 잘 못합니다. 이 네 마디면 충분하다. 우린 그저 파리에 머물며 글을 쓰고, 예술가들의 교훈을 되새기고, 풍경을 즐기면 되는 것이므로...
예술의 도시를 예술적으로 즐기는 법
이제 쓸거리도 생겼고, 파리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글을 써보자. 우리는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카페에서 2시간 동안 글을 쓰고, 산책을 하다가 성당에서 글을 쓰고, 다리 위에 주저앉아 글을 쓴다. 이렇게 하면 예술가로의 낭만을 즐기면서 하루 6시간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매일 글쓰기와 산책을 반복한다. 모든 곳이 관광 명소이자 우리의 작업실이다. 하루 여섯 장의 글을 쓴다면 3개월이면 소설 한 편이 나온다. 글이 막힐 때면 플라뇌르...
힘들 때면 파리에서 살았던 예술가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보는 것도 좋다. 파리에서 떠올릴 수 있는 작가는 수도 없이 많다. 보들레르, 사르트르, 헨리밀러와 아나이스 닌, 조르주 심농, 헤밍웨이, 그리고 피카소,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시장인 베르트랑 들라노에... 작가는 그들의 일화를 적재적소에 인용하며 우리를 위로한다.
사르트르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일반인을 위한 플뢰베르> 전기에 10년 동안 집착하며 인생을 낭비했다. 그가 잘 할 수 있었던 실존주의에 관한 연구를 제대로 마무리 하지도 않은 채 결과 없는 글에 10년을 매달렸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을 결코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뭔가 할 얘기가 있다는 믿음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인간을 감동시키는 소박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헨리밀러는 그의 연인 아나이스의 일기를 아꼈다. 그녀의 일기는 10년 뒤 재평가를 받았다.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는 지금 생각나는 것들에 대한 짧은 글을 써도 좋다. 짧은 글은 하루 안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누구나 소설을 써야 할 이유는 없으며, 아나이스처럼 소설이 아닌 다른 글에 당신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예는 조르주 심농이다. 그는 평생 600편의 소설을 썼다. 그는 타인의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타인이 하는 말을 들으며 떠오르는 나의 생각이다"라고.
만약 당신이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목표했던 하루치의 글을 썼다면, 이제 저녁 내내 온 파리가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대도시들은 여행을 즐기기에 만만치 않은 곳이다. 런던, 뉴욕, 취리히, 비엔나, 모스크바, 밀라노... 유명한 관광지나 세계 제일의 대도시는 사실 가난한 여행자들의 적이다. 건너뛰자니 허전하고, 눈에 담자니 살인적인 물가와 쌀쌀한 사람들로 후회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도시는 각자의 방식으로 천천히 즐길 때에만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당신에게 세느강은 더러운 실개천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데 빠져 있는 당신에게 세느강의 풍경은 낭만으로 넘쳐흐를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이 책의 핵심이다.
만약 당신이 창작여행, 예술여행을 떠난다면, 파리의 명소들은 달콤한 휴식의 장소, 낭만적인 사랑의 배경, 영감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바뀌게 된다. 이 책은 가벼운 관광으로는 결코 제대로 느끼지 못할, 지나치기 쉬운 아름다운 장소들을 꼭 가보라고 알려 준다.
글쓰기에 대한 안내와 더불어 파리 곳곳에 있는 영혼의 휴식처를 꼼꼼하게 소개함으로써 여타의 관광 가이드를 뛰는 여행기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 하나의 장소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도록...
여행의 목적
우리는 가끔 목적이 없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저 잠시 이곳을 벗어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에 맴돈다.
하지만 목적 없는 여행은 일단 잘 떠나지지 않는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훌쩍 떠났다고 하더라도, 여행자는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서 이내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라는 막막한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관광을 하면서도 "보기 좋긴 하다만 내가 이걸 봐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고, 현지인들을 만나도 "이거 뭐 내가 돈으로밖에 안 보이는 건가?"하는 생각에 빠져 결국 "남는 건 사진뿐, 사진이나 찍자"의 상태로 돌입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목적은 여행의 첫 번째 단추요, 여행을 지탱하는 연료가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목표는 글쓰기이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건, 여차저차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책을 쓰는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건, 파리로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한 여행을 떠나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파리라면 당신도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최면을 건다.
책을 덮는 순간, 이제 파리도, 파리의 예술가들도, 소설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느낌이다. 만일 떠날 수만 있다면... 이때 작가는 이렇게 충고한다.
"작은 틈을 내서라도 지금부터 글을 써라. 글을 쓰는 만큼 파리는 가까워진다."
2009.03.25 15:5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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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의 파리 - 창조적 영혼을 위한 파리 감성 여행
에릭 메이슬 지음, 노지양 옮김,
북노마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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