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용죽녹용죽 정식은 죽과 밥 추어탕 불고기 해산물 등이 함께 나온다.
전득렬
강금선(74) 할머니는 대구 중구의 한약재골목으로 유명한 일명 '약전골목'에서 자랐다. 어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약재와 친해졌다는 것.
결혼 후에도 아버지의 일을 도왔는데 할머니는 각종 한약재의 이름과 효능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 갑작스럽게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서 앓아눕자 할머니는 한약재를 선별해 넣고, 장어를 갈아 넣어 '죽'을 만들어 남편에게 먹였다.
"시름 시름 앓던 남편이 '죽'을 더 달라고 하더니 몇 그릇이나 먹었지. 그리고는 며칠 뒤에 거짓말처럼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야. '죽'으로 큰 효험을 본 남편의 소문으로 주위의 아픈 사람들에게 죽 끓여 선물했지. 그게 녹용죽의 시작이야."
녹용죽의 효험이 알려지고 인기를 얻자 할머니는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음식점을 시작했다. 처음 1년간은 죽뿐만아니라 다른 메뉴도 여러 가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메뉴는 안 찾고 '녹용죽'만 찾았다. '죽'만 팔아도 너무 바빠 다른 메뉴는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할머니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동네 욕쟁이 할머니로 소문이 났다. 당시 동네 파출소의 자율방법대원과 동사무소 생활안전자문위원 등을 하면서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꾸짖으면서 '욕'이 시작된 것. 그 욕은 식당으로 옮겨와서 담배 피우는 손님이 있거나, 음식을 남기며 음식 투정을 부리면 어김없이 '욕'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인상 찡그리는 손님들은 없다. 다 잘 되라고, 아들 며느리 손자 같은 이들에게 정겨움을 선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금선 할머니는 '죽'을 팔아 얻은 수익금의 일부를 모아 매년 '연탄'을 구매했다. 수년간 경북 청도의 농가와 인근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보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소문난 '연탄인정'은 죽 만큼이나 유명하고, 음식 맛 만큼이나 아름답다고 단골들이 먼저 알아준다.
욕쟁이 할머니와 그 며느리가 이어받은 비법이 담긴 녹용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