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손맛에 '욕'까지 물려받은 며느리

욕쟁이 할머니와 그 며느리의 녹용죽

등록 2009.03.27 14:25수정 2009.03.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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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용식당 입구 30여년 된 녹용식당 전경.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 운치를 더해준다
녹용식당 입구30여년 된 녹용식당 전경.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 운치를 더해준다전득렬
대구MBC 네거리 태평양화학 건물 뒤편에는 '죽' 한 가지 메뉴로 30여 년 간 유명세를 이어 온 '녹용식당(대구 동구 신천동)'이 있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허름한 입구로 들어서면 대청마루와 사랑채, 그리고 고가구들이 나타나며 이내 욕쟁이 할머니와 그 며느리가 손님을 맞는다.

이곳은 1980년 문을 연 이래 녹용과 각종 한약재 등을 넣어 만든 '녹용죽'만으로 유명해진 곳. 몇 해 전 민물장어를 메뉴로 내놓았는데 그것마저도 반응이 좋다.

그러나 손님의 90%가 장어보다는 '녹용죽'을 찾는다. 이유가 뭘까? 죽 전문점이 그렇게 많은데, 이곳에 손님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바로 욕쟁이 할머니의 '비법담긴 손맛'과 그 욕마저 물려받은 정 넘치는 경상도 며느리의 '우악스러움' 때문이라고 단골들은 전한다.

아픈 남편과 이웃들에게 '죽' 끓여 준 게 인연, 음식점으로..

녹용죽 녹용죽 정식은 죽과 밥 추어탕 불고기 해산물 등이 함께 나온다.
녹용죽녹용죽 정식은 죽과 밥 추어탕 불고기 해산물 등이 함께 나온다. 전득렬
강금선(74) 할머니는 대구 중구의 한약재골목으로 유명한 일명 '약전골목'에서 자랐다. 어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약재와 친해졌다는 것.


결혼 후에도 아버지의 일을 도왔는데 할머니는 각종 한약재의 이름과 효능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 갑작스럽게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서 앓아눕자 할머니는 한약재를 선별해 넣고, 장어를 갈아 넣어 '죽'을 만들어 남편에게 먹였다.

"시름 시름 앓던 남편이 '죽'을 더 달라고 하더니 몇 그릇이나 먹었지. 그리고는 며칠 뒤에 거짓말처럼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야. '죽'으로 큰 효험을 본 남편의 소문으로 주위의 아픈 사람들에게 죽 끓여 선물했지. 그게 녹용죽의 시작이야."


녹용죽의 효험이 알려지고 인기를 얻자 할머니는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음식점을 시작했다. 처음 1년간은 죽뿐만아니라 다른 메뉴도 여러 가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메뉴는 안 찾고 '녹용죽'만 찾았다. '죽'만 팔아도 너무 바빠 다른 메뉴는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할머니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동네 욕쟁이 할머니로 소문이 났다. 당시 동네 파출소의 자율방법대원과 동사무소 생활안전자문위원 등을 하면서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꾸짖으면서 '욕'이 시작된 것. 그 욕은 식당으로 옮겨와서 담배 피우는 손님이 있거나, 음식을 남기며 음식 투정을 부리면 어김없이 '욕'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인상 찡그리는 손님들은 없다. 다 잘 되라고, 아들 며느리 손자 같은 이들에게 정겨움을 선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금선 할머니는 '죽'을 팔아 얻은 수익금의 일부를 모아 매년 '연탄'을 구매했다. 수년간 경북 청도의 농가와 인근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보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소문난 '연탄인정'은 죽 만큼이나 유명하고, 음식 맛 만큼이나 아름답다고 단골들이 먼저 알아준다.

욕쟁이 할머니와 그 며느리가 이어받은 비법이 담긴 녹용죽

며느리 윤정희씨 결혼 후 부터 녹용식당 일을 했지만, 녹용죽의 비법은 며느리도 몰랐다.
며느리 윤정희씨결혼 후 부터 녹용식당 일을 했지만, 녹용죽의 비법은 며느리도 몰랐다.전득렬
20년간 몰랐던 '녹용 죽'의 비법을 10여 년 전부터 며느리 윤정희(52)씨가 이어받았다. 며느리가 20여 년간 녹용식당 일을 배웠으니 이제는 비법을 알려줘도 맛에 변함이 없다고 할머니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며느리도 만만치 않다. 시집 온 후부터 녹용식당 밥을 먹은 며느리 윤정희씨는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따라 배웠다. 손님들에게도 거의 반은 반말이다. 욕도 할머니 못지 않게 자주 나온다. 그래도 손님들은 웃어넘긴다. 할머니의 기가 흐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아는 사람이 오면 절대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무엇이든 먹여서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정을 통하는 방법도 죽에 있었다. 녹용죽정식 한상을 내오며 '찬'으로 던지는 한마디도 맛있다.

"힘들다고 죽겠다는 소리하지마. 죽 먹고 죽지 말고, 힘내라. 그런데, 남기면 죽는다!"
 
원기 회복에 그만인 영양 가득한 녹용죽 정식

그 며느리에게 녹용죽의 비법을 살짝 물었다. '녹용죽'은 민물장어를 푹 고아낸 뒤 녹용·밤·대추·인삼·찹쌀·경옥고 등 12가지의 재료를 넣어 죽을 다시 끓인다. 여기에 '비법 담긴 한약재'가 첨가된다.

죽과 함께 나오는 추어탕과 밥 불고기 해산물 돔배기 등의 메뉴는 밥상이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 장어구이 맛은 아주 그냥~ 죽여준다. 몸이 부실하거나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 아빠와 수험생들이 먹으면 몸이 개운해지고 힘이 절로 솟을 정도로 상당히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녹용죽 정식 차림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죽으로 배부를까 하지만 음식을 남길수도 있다.
녹용죽 정식 차림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죽으로 배부를까 하지만 음식을 남길수도 있다.전득렬
"오랜 시간 죽을 끓이면 찹쌀과 밥 알갱이가 뭉개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할머니가 만든 죽 속엔 밥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 있죠. 살아 숨 쉬는 죽에 마지막으로 '생마가루'와 '인삼가루'가 살짝 뿌려져 식탁에 오릅니다."

비싸서 제사 때가 아니면 맛보기가 어려웠던 '돔배기'와 가난했던 시절의 향수어린 음식이었던 '콩비지 찌개'는 기본반찬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메뉴라고 윤씨는 설명한다. 이 맛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고, 또 가족들이 함께 와서 그 맛을 이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집 올 때부터 음식을 함께 만들어온 며느리 윤정희씨의 곁에는 최근 딸이자 할머니의 손녀인 김영주(26)씨가 일손을 돕고 있다. 손님들이 너무 많아 일손이 부족해서 돕기 시작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혹시, 3대를 이어 음식점을 운영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욕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욕'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며 빙그레 웃기만 한다.

후식으로 나오는 한약차까지 먹어야 미각 완성

녹용식당 실내 아늑한 실내가 녹용죽 녹용차를 더 빛나게 해준다.
녹용식당 실내아늑한 실내가 녹용죽 녹용차를 더 빛나게 해준다.전득렬
후식으로 나오는 '한약차' 도 할머니가 개발한 '특별한 차' 다. 육모초·계피·인삼·감초·당귀·송이버섯 등 16가지의 한약재를 섞어 달였다. 이 차 한잔에 세상 모든 시름과 피로를 잊을 수 있다는 게 윤씨의 설명.

'죽을 먹고 욕도 얻어먹어야 배가 부르다' 는 우스갯소리가 녹용식당에서는 통한다. '죽'은 안 먹고 '술'만 먹는 사람에게는 절대 술을 팔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고집도 며느리가 이어받았다.

'술'은 건강상 '밥 반주'로만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할머니는 설명한다. 사진을 한 장 찍자는 제안에 할머니는 "화장을 안 했다"며 극구 사양해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녹용죽 #녹용식당 #녹용한정식 #죽 #죽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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