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으로 천리 길.
다시 느릿느릿 우보천리(牛步千里) 오체투지 기도의 길을 떠납니다.
생명의 기운으로 천지가 들썩이는 이 봄날,
우리도 추운 겨울 잘 이겨낸 애벌레처럼 다시금 길에 눕습니다.
겨울 넘어 봄으로 오는 길목엔 좋은 소식들 가득하리라 했습니다.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눈물은 씻기고 고통은 위로받으리라, 절망은 희망이 되리라 했습니다. 허나, 그 모든 기대와 소망은 길목마다 여지없이 난도질당하고 용산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야비하고 야만적인 사건까지 더해 새해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이승의 자리를 이어가는 망자들의 고단한 영혼과, 공권력이 가하는 갖은 모욕과 유린 속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 가족들의 피눈물 앞에 이 봄날 꽃 천지는 도리어 기막히고 야박스럽습니다.
비이성적인 개발주의 광풍, 돈에 눈먼 탐욕과 무자비함의 절정이자,
그로 인해 줄지어 파괴되고 죽어가는 모든 존재들의 비극을 대변하고 상징하듯
21세기 이 대명천지에 우리 좀 살려 달라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 애처롭게 외치던 가난한 사람들이 불타 죽었습니다.
가족과 삶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요 애타던 사랑이, 동료의 처지에 대한 절절한 공감과 연대가, 우리와 사회를 향한 마지막 처절했던 호소와 아우성이 그렇게 다 짓밟히고 불태워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엄이 그토록 잔인하고 무지막지하게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졌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찌 이런 일이….
참으로 수치스럽습니다. 참담하고 또 참담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을 보내도 가슴 밑바닥부터 솟아나는 이 아픔과 분노는 조금도 가시어지지 않습니다.
도무지 믿기 힘든 현실, 이런 비탄과 절망의 현실을 빤히 눈뜨고 보면서도
도리어 선을 긋고 침묵하며 고개 돌리고 저 멀리 비켜간다면, 자기 말과 행위의 진정성과 인간애를 진실하게 살피며 새롭게 살기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런 종교는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인간의 양심과 선함은 무엇이고, 사랑과 자비는 또 무엇입니까?
도덕은 무엇이고 지성은 무엇이며, 운동은 무엇이고 진보는 또 무엇입니까?
진리는 무엇이고 수행은 무엇이며, 천국은 무엇이고 정토불국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온몸 낮춰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길을 갑니다.
미안합니다. 참으로 미안합니다.
상처입고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해 온몸 드리어 기도의 길을 갑니다.
기억합니다. 여러분을 끝까지 기억합니다.
가뭅니다. 온통 가뭅니다.
산천초목 강산만 물기 없이 팍팍한 것이 아니라 품위와 자부심도 메마르고, 신뢰와 희망, 신명과 역동성도 말라갑니다. 마음속 온기도 마르고 삶도 마르고, 많은 이들이 정처 없이 생기와 생명력을 잃어갑니다.
이명박 정권이 구조적 정신적으로 가속화시키고 있는 퇴행과 역주행의 정치는 끊임없이 화(火)에 화(火)를 부르며 메마름과 불임의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이들의 뻔뻔함과 사악함, 패악스러움은 앞선 여느 반민주적 독재정권에 못지않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 알기를 사기업 부하 정도로 업신여기며 막 대하는 이 정권은,
이제 자신들 소수 가진 자들의 세상과 체제로 영구재편 할 수 있으리라 믿는 듯합니다. 국민들이야 누르면 누르는 대로 굴복하고 위축되리라 믿는 것 같습니다.
양심과 정의 따위야 이기심과 개인주의 앞에 얼마든지 별 볼일 없게 될 것이고,
연민과 연대의 끈들은 두려움과 비굴함이 자르고 부서주리라 믿는 것 같습니다.
허나 화무십일홍, 그 모든 것은 저들의 헛된 꿈일 뿐입니다.
하물며 하는 일마다 하는 말마다 국민 마음을 얻기는커녕 쾅쾅 대못질을 해대는 정권인바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유신장기집권 독재정권도, 국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군사정권도 모두 물리쳐왔습니다. 민간정부라는 가면을 쓰고 마구잡이로 행해지는 이 정권의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행태 또한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길을 갑니다. 길 위에서 길을 묻고 길을 구합니다.
소걸음처럼 느리고 아스팔트에 나선 애벌레처럼 미욱하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간청합니다.
진리를 탐하고 기도에 정진함은, 서로 귀하게 여기고 공존하며 사랑하고 나눌 줄 아는 세상을 간절히 소망하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가난할수록 존중받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꿈과 권리가 귀하게 대접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외롭고 서러운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고 품어주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입니다. 미래를 구하는 젊은이들에겐 가슴 벅찬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든든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저 먼 자식세대도 이 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한껏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가슴마다 담겨 있는 사랑과 인간애가 햇살처럼 피어나 냉소와 무심함을 따뜻하게 녹여버릴 수 있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번 오체투지 순례길은 북녘 묘향산까지 향합니다.
남과 북이 극단적 불화와 불통, 불신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현 상황이기에 더더욱 가기를 소망합니다.
딱 20년 전 1989년 8월 15일,
당시 북한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학생과 함께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과해 남으로 돌아왔던 때를 돌아봅니다. 남쪽으로 넘어선 순간 총구가 겨눠지고 감옥살이가 수순이었지만, 절대장벽과도 같았던 민족분단선을 허물고 화해와 상생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기쁨에 기꺼이 그 가시밭길을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에서 북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이렇게도 갈 수 있고 저렇게도 올 수 있는 그런 소통과 화해, 상생의 길을 다시 간절하게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통일로 그 길 그저 따라가 마침내 북쪽 문 앞에 멈춰서 문 열어 달라 두드리고 두드리면, 기적처럼 문 활짝 열리고 그 길 안으로 쑤욱 들어서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입니다.
길에서 나시고, 늘 길에 계셨으며, 길에서 죽임을 당하신 그분이십니다.
초라한 행색으로 마찬가지로 초라하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 자리를 잡으시고 품으셨던 그분은 권력자와 행세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겐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사랑과 헌신의 제대 위에 자신을 다 바치는 그분에게 사람들이 온통 마음을 주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새로운 관계의 전형을 보여주시고 이뤄나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온 생명과 모든 존재의 존엄을 위해, 지상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시련과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막막하고 두려워도 기꺼이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감당하기 어려운 수난과 죽음이 곧 부활의 영광과 기쁨이었습니다.
하여, 우리도 꿈꾸고 희망하기를 계속 해야 합니다.
살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그를 향해 나서야 하고, 가고자 하는 길은 가야 합니다.
길을 막아선다고 포기하겠습니까. 그런들 못 가겠습니까.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멈추는 그 자체가 이미 죽은 삶이기에, 우리 자신 산 사람이고자 한다면 이 길을 갈 것입니다.
우리가 용산참사를 보며 아파하고 분노함은 우리의 마음이 살아있으며 양심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미약한 이들에게 가지셨던 연민이고 측은지심입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게 하고,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힘입니다. 거룩한 참회와 회심의 신비로 가득한 이 시기, 우리 모두의 가슴에 연민이 출렁이고 사랑과 헌신으로 삶이 채워지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생명과 평화의 물줄기가 이 메마름과 불임의 시대를 뿌리에 뿌리까지 흠뻑 적실 수 있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온 생명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
스스로 대지에 몸을 누여 썩어가는 씨앗처럼 가렵니다.
스스로 썩어 생명을 틔우고 꽃 피우는 씨앗의 기쁨으로 가렵니다.
느리고 느림 속에 미련함과 바보스러움 속에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구합니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랑하고 헌신하고, 기도하고 희망하는
그 모든 고귀한 삶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기도하고 순례하며 축복과 은총의 길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사랑과 헌신, 그 가슴 저미는 구도의 길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길에 희망을 가득 가득, 심고 풀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습니다.
- 문규현 신부(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
2009.03.28 01:22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공유하기
"추운 겨울 잘 이겨낸 애벌레처럼 다시금 길에 눕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