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탈의실 창문에 커튼도 없네?

[체험기]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보낸 하루

등록 2009.04.01 14:40수정 2009.04.0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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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의 수동휠체어.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우리 사회를 상징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씨의 수동휠체어.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우리 사회를 상징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배성민

2007년 여름, 부산시청 앞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집회가 열렸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중증 장애인이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립생활을 하도록 지원하고 보조하는 서비스로 부산지역에서도 시행되었다. 하지만 한 달에 100시간으로 제한되었고, 100시간 이상 사용할 경우에는 장애인 당사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당시 집회는 이에 반대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월 160시간으로 늘리고 자부담 철폐를 요구했다. 결국, 부산시에서는 지역 장애인 중 무작위로 선발해 시범적으로 120시간을 시행해보겠다고 했다. 요구했던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투쟁이 마무리되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목욕 보조는 성비가 맞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이후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잊고 지냈는데, 얼마 전 한 장애인의 권유로 활동보조인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중증 장애인과 함께 매주 화요일 목욕을 하고 월 1회 야학 이동과 학습 보조이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간이 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씨, 매주 목욕에 야학 공부 등 한 주를 알차게 보내시는 것 같아요. 활동보조인 시간이 200∼300시간 정도 되죠?"
"아뇨. 200∼300시간이면 제가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간 때문에 고민할 일이 줄어들겠죠. 아직도 100시간입니다. 그래서 매달 저는 이 100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이 많아요."

2009년은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제도화된 지 2년이 되는 해이다. 이쯤 되었으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서 활동보조인이 많이 모집되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현수막을 자주 보았어요. 이제 홍보도 많이 되었으니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많이 모집되었지요?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도 괜찮으니깐 말이죠."
"겉으로 보면 활동보조인이 괜찮은 아르바이트 수단으로 비칠 수 있어요. 그런데 의외로 이용자에 비해 활동보조인이 너무 적어요. 심지어 남녀 성별도 맞지 않아서 한 번씩 여자 분이 활동보조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화장실이 급해지면 참 곤란해지죠. 꾹 참고 목적지에 가서 다른 남자 비장애인에게 부탁해서 일을 봐야 하니 말이죠. 그리고 목욕 보조 같은 건 정말 성비가 맞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화요일이었던 어제(3월 31일)는 목욕을 위해 ○○씨와 부산의 한 장애인 복지관으로 향했다. 짐을 풀고 남자 목욕탕으로 들어가려는데 복지관 관계자가 의무실에서 혈압을 재고 목욕을 하라고 했다.


혈압을 재려고 의무실에서 대기하는데 40∼50대로 보이는 복지관 관계자가 지나가다 말고 "애기 몇 살?"이라고 했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복지관 관계자는 장애인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0대가 넘는 성인에게 반말로 애기 다루 듯하는 행동은 너무 심했다.

""○○씨, 기분 안 나쁘세요? 정말 제가 봐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장애인은 언제나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니깐 자기보다 낮게 보죠. 복지관 관계자까지 이런 식으로 차별하니 참 답이 안 나와요."

"에휴, 힘들죠? 장애인이 살기 힘든 사회죠"

 복지관 내 목욕탕 탈의실 창문에 커튼이나 블라인드 같은 가리개가 전혀 없다. 비록 4층에 있는 목욕탕이기는 하지만 일반 목욕탕이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
복지관 내 목욕탕 탈의실 창문에 커튼이나 블라인드 같은 가리개가 전혀 없다. 비록 4층에 있는 목욕탕이기는 하지만 일반 목욕탕이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배성민

혈압을 잰 후 복지관 관계자를 따라갔더니 여탕으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남탕이 비어 있는데 왜 여탕으로 안내하느냐고 항의했다. 그는 남탕이든 여탕이든 두 개 다 가족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했다. 찜찜했지만 ○○씨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목욕할 수 없으니 남탕이든 여탕이든 일단 하자고 했다.

여탕으로 들어가서 또 한 번 놀랐다. 탈의실 정면에 있는 창문에는 커튼이나 블라인드 같은 가리개가 전혀 없었다. 밖에서 보면 목욕하는 사람의 알몸이 다 보일 정도였다. 장애인 복지관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최소한의 배려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장애인과 함께 돌아다니기 힘들죠? 에휴, 장애인이 살기 정말 힘든 사회죠. 처음에는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있으면 삶이 여러모로 나아질 것 같았어요. 더 이상 자원봉사자들에게 미안해 하면서 뭔가 부탁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죠. 그리고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보편화되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거든요. 하지만 반쪽짜리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우리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나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통해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비록 생활비를 위해 시작한 활동이지만 이 일을 통해서 장애인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게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차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부딪혀 나갈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 블로그 뉴스, 프로모테우스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 블로그 뉴스, 프로모테우스에도 송고합니다.
#장애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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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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